따스한 봄날이 올까 (2회)

죽으나사나 | 2023.12.05 19:55:57 댓글: 2 조회: 408 추천: 4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4525544

(2회) - 13살의 선택, 그리고 현재

서울역에 도착한 현우는 사실 막막했다. 미성년자라 숙박 시설을 찾을 수도 없고 아는 지인도 없었으니… 또 제일 중요했던 건 몸에 갖고 있는 돈이 너무 적다는 거다. 아빠 생전에 줬던 마지막 용돈만 챙겨서 나왔으니… 작은 아버지네는 용돈은커녕 밥도 주기 싫어했고 말이다.

[오빠. 우리 이제 작은 엄마 집에서 안 사는 거야?]

[오빠. 엄마 아빠는 어디 있어?]

천진난만한 지아는 그 앵두 같은 입으로 재잘재잘 말이 많았다.

[오빠. 우리 어디…]

[아 좀!!! 그만 불러!! 그만하라고!!]

앞에서 말없이 걸어가던 현우는 뒤따라오면서 재잘재잘 말 많은 지아한테 홱 돌아서며 소리 질렀다.

지아는 깜짝 놀란 토끼 눈이 되어 금방이라도 눈물을 터뜨릴 표정을 지었다.

[오빠…]

그런 지아의 얼굴을 본 현우는 더 이상 화를 낼 순 없었다.

[미안해. 그냥 가자.]

현우는 시무룩해서 축 처진 지아의 어깨를 감싸고 같이 서울역 안으로 들어갔다.

**

너무 추워서 잠이 안 온다.

노숙자들 근처에서 신문지를 깔고 앉은 현우는 깊은 밤인데도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옆엔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쌔근쌔근 잠든 지아가 좀 추운지 자꾸 몸을 웅크린다. 현우는 자기가 입던 외투를 지아한테 씌워주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서울역 밖으로 나왔다.

현우는 먹구름에 가려 별 하나 없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엄마, 아빠, 왜 우리를 두고 그렇게 일찍 갔어요.
저렇게 어린 동생까지 나한테 떠넘기고
왜 그렇게 무책임하게 먼저 갔냐고요!!
그날도 안 나갔으면 했다고요. 그깟 새우가 뭐라고…
이게 다 지아 때문이야. 새우는 지아가 좋아하는 거니까…

눈물이 앞을 가렸다. 현우는 달리기 시작했다. 이 쓰라린 맘과 추위를 달래려면 정신없이 뛰어야만 했다.

현우 나이도 고작 13살. 이 모든 걸 감당하기엔 너무 어렸다.

“털썩.”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다리에 힘이 풀려 넘어진 현우는 그 자리에 한참 누워 있었다.

엄마 아빠가 미웠다. 자기한테 도움 하나도 안되는 지아도 미웠다. 이대로 없어졌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날은 점점 밝아오고 길을 잘 모르는 현우는 한참을 걸려서 서울역에 다시 도착했다.

[여기 왜 이렇게 어수선해? 야밤에 무슨 일이 있었대?]

[새벽에 글쎄 애가 차도에 뛰어 들어서 사고가 났대.]

[어머. 그래? 어린 애래? 새벽에 왜 애가 밖에 있어?]

[어~ 대여섯 살 돼 보이는 아이라나 봐. 애가 작아서 운전자가 아예 못 보고 크게 쳤나 봐. 그 자리에서 죽었대.]

[…!!!]

아침 장사를 위해 준비 중인 가게 상인들의 대화에 현우는 별안간 불안감이 휩쓸었다.

설마.. 설마!

현우는 미친 듯이 어제 그 자리로 뛰어갔다.

아닐 거야. 아닐 거야..!

현우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없다. 있어야 할 그 자리에 지아가 없다.

새벽에 잠에서 깬 지아가 아마 현우를 찾아서 밖에 나갔다가…

더 상상하기 힘들었다.

현우는 넋을 잃은 얼굴로 다시 밖으로 나왔다.

얼마나 걸었는지 모른다. 얇은 옷자락에 차디찬 바람이 현우의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현우는 정처 없이 걷다가 스멀스멀 올라온 아침 햇살 쪽을 바라보았다. 높은 다리 위에 멈춰 선 현우는 아래쪽에 시선을 옮겼다. 한참을 바라보았다.

누구도 몰랐다. 아니, 관심이 없었다. 아침 출근길에 정신없이 오가고 있는 어른들은 그 어린 현우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풍덩..!!]

그렇게 현우는 차디찬 강 속으로 뛰어내렸다. 현우는 이 세상에 아무 미련이 없었다…

**

“혁아! 너 이 시간에 웬일이야?”

“아 누나! 지금 안 바쁘지?”

혁이 생글생글 웃으면서 유나의 어깨에 팔을 올린다. 유나는 여기 시내랑 많이 떨어진 한적 한  편의점에서 1년 넘게 일해 온 아르바이트생이다. 여기서 굳이 일하는 이유는 가게가 외진 곳에 있다 보니 원래도 오갈 데가 없는 유나한테 숙식을 제공해 준다는 것이다.

“왜 이 시간에 여기 있냐고~  너 공부 안 해?!“

유나는 그런 혁의 팔을 빼면서 소리 질렀다. 시끄러운 소리에 편의점 앞에 앉아서 눈을 감고 쉬고 있던 도진이가 눈을 떴다.

‘아까 알바생이네.’

유나는 갑자기 찾아오는 혁이 그렇게 반갑지는 않다. 또 무슨 꿍꿍이인지 모르니…

“아 그게.. 나 교재 사야 되는데 그게 좀 비싸네. 나한텐 누나밖에 없으니 여기로 왔지!”

혁은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유나의 손을 잡고 자기 얼굴에 고양이처럼 비벼 댔다.

“얼마 필요한데?”

“한… 50만 원?”

‘뭔 교재 값이 50만이냐… 누가 거기에 속냐…’

“현금으로 줘? 아님 입금해?”

’…!‘

혁을 힐끔 째려보면서 주머니 속에서 지갑 뒤지는 유나를 보고 도진은 어이없어서 헛웃음을 쳤다.

’누가 봐도 삥 뜯는 거잖아.‘

그러나 도진은 자기 일도 아닌데 뭐 하냐는 생각에 그냥 다시 눈을 감았다.

“오예~ 누나 사랑해~ 나 누나밖에 없는 거 알지?“

”에그. 됐어. 나 지금 사장님 오기 전까지 다 진열해야 되니까 빨리 돌아가.“

유나는 옆에서 사탕 발린 소리만 하는 혁을 뒤로 하고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어~ 주리야!! 나 돈 받았지롱~… 응. 네가 저번에 갖고 싶어 하던 지갑 오늘 사줄 수 있다~ 누나? 네 존재는 모르지~ 널 따로 만나는 거 알면 난 저 누나한테 죽어.“

뭐야… 양다리인 거야?

혁이 목소리가 너무 작은 게 아닌지라 전화 통화 소리가 도진한테 고스란히 다 들리는 상황. 도진은 또 한 번 어이가 없어서 혁이를 노려보았다.

그걸 알 리가 없는 혁은 신나는 발걸음으로 도진의 옆으로 지나가려고 했다.

”악.“ 하는 외마디 소리와 함께 바닥에 얼굴을 박은 혁이.

“아놔… 뭐야!!”

혁이는 다친 이마를 만지면서 갑자기 자기 앞에 발을 내밀어 넘어지게 한 도진의 멱살을 잡았다.

“악.”

그에 도진이가 자신의 멱살을 잡았던 혁의 얇고 나팔거리는 팔을 뒤로 홱 비틀어버리자  아픔을 못 참고 비명을 지르는 건 또 혁이였다. 굵직 한 팔과 힘을 가진 도진한테는 어림도 없는 일이였다. 

”남자라는 자식이 알바하는 여자한테서 돈이나 뜯고 창피하지도 않아?“

도진의 목소리는 나지막하지만 날카롭게 혁이의 귀에 꽂혔다.

”아 뭐래는거야. 이거 안 놔?! 니가 뭔데!! 빨리 놔!!”

혁은 팔을 빼달라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지만 도진은 그리 쉽게 놔주지 않았다.

“거기 뭐야!!! 우리 혁이 안 놔요??!“

”아!!“

혁이의 숨 넘어가는 비명 소리에 편의점 안에서 일하던 유나가 어느새 나오더니 뭐라도 해야 되겠다는 마음에 고민 할 새도 없이 도진의 머리를 확 잡아당겼다. 힘이 어찌나 센지 그 큰 도진의 몸이 뒤로 넘어가서 하마터면 넘어질뻔 할 정도 였다.

”아아! 이거 놔요! 아무것도 모르면서!“

도진은 머리가 뜯기는 고통에 소리를 질렀다.

“먼저 우리 혁이 놔요! 그럼 놔줄테니까.”

”아아!“

유나는 그러면서 도진의 머리를 더 뒤로 당겼다. 도진은 사정 없이 처음 뜯기는 머리는 도저히  못 참겠는지라 혁의 비틀었던 팔을 비로소 풀게 되었다. 그제야 유나도 도진의 머리에서 손을 뗐다.

”와아.. 이 여자가.“

그녀한테  따지려고 하는 도진은 쳐다도 안 본 채 유나가 혁을 다그쳤다. 

”혁아. 갑자기 왜 이 사람이랑 실랑이야?“

”아 몰라, 미쳤나봐. 가려는데 일부러 내 발 걸었어!!“

“어디? 크게 다쳤어? 이봐요! 손님. 혁이가 그 쪽한테 뭐 잘못한거라도 있어요? 왜 그래요?!”

유나는 당장이라도 죽일듯한 표정으로 도진을 노려봤다.

“아니, 내가 원래 이런 오지랖이 없는데 아까 보니까 그쪽은 착해 보이는데 이상한 놈을 만나는거 같으니까…”

“유나씨! 하라는 정리는 안 하고 여기서 뭐하는거야!“

도진의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뒤에서 웬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사장님!“

유나는 깜짝 놀라서 그 사장이라 하는 사람 앞으로 급히 뛰어갔다.

”벌써 오셨어요? 저 금방 할게요. 지금 바로 합니다!“

”저번에 얘는 또 왔어? 왜 이번에 또 숙소에 얘까지 재우려고? 휴. 나 진짜 유나씨가 일을 하도 열심히 해서 뭐라 안 할려고 했는데 나 이번에 방 뺄거거든. 방 따로 저절로 찾아서 일하던가, 그만 두던가 해야겠어. 나도 힘드니까.”

”사장님,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사장의 더이상 말하기 싫다는 손사래에 유나는 또 한번 놀라 소리 질렀다.

도진은 이 상황에 자기가 더 얘기해봤자 듣지도 않을거 같으니 아웅다웅 하는 셋을 뒤로 하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착한 애 인줄 알았더니 착한걸 넘어서 그냥 바보네. 저러니 애인한테 돈이나 뜯기지.

도진은 답이 없다는 듯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잡혔었던 뒷머리를 쓰다듬으며 아직도 아픈지 얼굴을 찡그렸다.

’기분 나쁜건 생각 말고 이제 거기로 가 볼까. ‘

오늘은 다른 외부의 영향으로 기분 나쁘고 싶지 않은 날이다. 잠깐 착한 여자인거 같은데 속고 사는거 같아서 오지랖을 떨었지만 괜히 나선거 같았고, 다시는 안 볼 사람인데 똥을 밟았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다잡고 운전대를 잡았다.

10분정도 달렸을까. 도진이가 오래된 주택앞에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렸다.

그 때의 그 파란 대문… 문을 활짝 여니 마치 13살 그때로 돌아간듯하다.

마땅 왼쪽으로는 한 줄로 길게 뻗은 엄마가 좋아하는 보라빛으로 물든 물망초 화단에 , 끝에는 그때는 이렇게까지 안 컸었던 이제 진짜 연륜이 있는 소나무, 그 아래엔 기다란 벤치가 있고 아빠는 자주 거기서 차를 마시면서 신문을 봤었다.

이제 오른쪽으로 쭉 가면 지아의 노란 미끄럼틀, 현우랑 아빠가 자주 이용하던 작은 축구골대가 있다.

다른 사람에 의해 거의 방치 되어 있던 이 집을, 기억을 되찾은 후 다시 매수를 해 21년전 그때랑 똑같이 관리하고 있는 현우네 집 마당이다.

현우는 한번 쭉 만져보고 둘러보더니 소나무아래 벤치에 앉았다. 그때 행복했던 가족들 모습들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마치 지금도 그 자리에 있는것처럼…현우의 눈길이 미끄럼틀에서 멈췄다.

[오빠! 같이 놀자!]

맨날 뭐가 그리 좋은지 깔깔 대던, 유난히도 미끄럼틀을 좋아했던 지아.

지아도 이걸 보면 기억할수 있을까…

어디에 있니. 지아야. 그때 홧김에 작은 아버지 집에서 너의 손을 잡고 안 나왔더라면, 그때 서울역에서 너를 두고 혼자 힘들다고 뛰쳐나가지만 않았더라면, 그때 니가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맘속으로 외치지만 않았다면!!!….

더 생각을 하면 할수록 도진은 괴로운 마음에 양손으로 머리를 꼭 잡고 고개를 떨구었다. 몸은 파르르 떨렸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띠리리리링..”

정실장-브로커한테 걸려 온 전화 벨소리가 조용하던 마당을 휘감쌌다. 

“네.”

“안녕하세요! 김도진사장님. 잘 계시죠? 오랜만에 전화를 드린거 같습니다!”

전화기너머엔 기분이 좋은지 살짝 들뜬 목소리의 정실장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네. 그러네요. 잘 계시죠? 지아 찾기는 어떻게 돼 가고 있나요?“

“아, 그게…”

정실장은 헛기침을 하면서 뜸을 들였다. 아마 일부러 도진의 애간장을 태우려는것 같았다.

“드디어 한발짝 다가간거 같습니다. 동생분이 있었을것으로 파악되는 보육원을 찾았습니다. 이름이 행복보육원이고 지금은 폐업하고 다들 뿔뿔히 흝어진 상태라 그때 당시 있었던 사람들은 조금 더 찾아봐야겠지만 좋은 결과가 나올거 같습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정실장은 어깨를 으쓱하면서 이 말을 전하는걸 느꼈다. 정실장은 자기 일처럼 신이 나서 말을 이었다.

“2년인데 이제 끝을 향해 달리는거 같습니다. 이번엔 기대해도 좋을거 같습니다.”

도진은 그 자리에서 한참동안이나 꼼짝하지 않았다.

지아를 진짜 만나게 되는건가. 

내 동생 지아… 

진짜 보고싶다.
추천 (4) 선물 (0명)
IP: ♡.214.♡.18
타니201310 (♡.163.♡.133) - 2023/12/27 08:59:16

현우가 도진인가여

지아가 살아 있었네여~

죽으나사나 (♡.214.♡.18) - 2023/12/30 10:12:17

맞습니다. 살아있어요

22,943 개의 글이 있습니다.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조회
보라
2006-08-09
33
63052
죽으나사나
2024-01-10
2
355
죽으나사나
2024-01-10
2
506
죽으나사나
2024-01-09
0
266
죽으나사나
2024-01-09
0
208
죽으나사나
2024-01-08
2
282
죽으나사나
2024-01-07
2
259
죽으나사나
2024-01-06
1
246
죽으나사나
2024-01-05
2
320
죽으나사나
2024-01-05
2
240
죽으나사나
2024-01-03
3
356
죽으나사나
2024-01-01
1
372
죽으나사나
2023-12-28
4
400
단밤이
2023-12-25
2
436
죽으나사나
2023-12-24
4
435
죽으나사나
2023-12-23
3
365
죽으나사나
2023-12-23
2
359
죽으나사나
2023-12-22
2
326
죽으나사나
2023-12-22
1
317
죽으나사나
2023-12-21
1
321
죽으나사나
2023-12-21
1
292
죽으나사나
2023-12-20
1
350
죽으나사나
2023-12-20
1
287
죽으나사나
2023-12-19
2
379
죽으나사나
2023-12-19
1
439
봄날의토끼님
2023-12-19
6
1200
원모얼
2023-12-19
5
1013
단차
2023-12-16
4
504
모이자 모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