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마음속에 내가 산다면 5~6

단차 | 2023.11.16 15:34:21 댓글: 6 조회: 366 추천: 1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4518073
5. 우리 어디서 본 적 있지 않아요?


달그락 얼음이 녹아 가라앉고 서연은 아까운 마음에 칵테일 잔을 들어서 마셨다. 

아까보다 희석되어 이도 저도 아닌 맛이었다. 

잔에 맺힌 물방울이 묻은 손을 냅킨으로 닦아내고 서연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직 재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블랙 카디건을 걸친 휜칠한 남자가 걸어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분명 천천히 걷고 있음에도 다가오는 속도가 빠르게 느껴졌다.

슬림한 체형에 어울리는 스타일리시한 패션과 자유롭게 흘러내린 헤어스타일은 그에게 더 자유분방한 매력을 더해주고 있었다. 

가까운 곳의 테이블에 앉은 사람이 그를 티 나게 흘끔거리는 게 보였다.

서연은 조용히 숨을 들이마셨다. 그 순간 두근두근 심장 소리가 귀에 들리며 어떤 묘한 기시감에 사로잡혔다.

지금, 이 순간이 기억 속 어딘가에 새겨져 있는 듯한 느낌에 혼란스러운 마음이 일었다.


그가 그녀가 앉은 테이블 앞에까지 걸어왔다. 카디건 안에 입은 연한 블루 색 셔츠를 본 서연은 뒤늦게 그가 무대에서 라이브를 하던 사람임을 알아보았다. 

'무쌍인가? 그런데도 눈이 크고 이쁘네.'

서연은 그제야 그의 얼굴이 시야에 제대로 들어왔다. 생각밖에 마주친 미인을 보자 서연은 내심 놀랐지만 애써 담담한 표정을 유지했다. 살짝 올라간 눈매는 무심한 듯하면서도 도도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그는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자연스럽게 툭 내뱉었다.


"재현이 일행 맞죠? 금방 올 거에요."
"네. 그런데 재현 씨랑은 어떤 사이에요?"

그는 맞은편의 옆좌석 의자를 당겨서 앉았다.

"저는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어차피 곧 갈 거라서."

그의 목소리는 노래 부를 때와 비슷한 듯 달랐다. 
노래를 부를 때에는 감미롭고 부드러웠지만 말할 때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가라앉은 톤이었다.

"아, 그러시구나. "

서연은 어색하게 대꾸하고는 애꿎은 칵테일 잔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다가 문득 그를 슬쩍 쳐다보니 그는 핸드폰 화면을 보고 있었다. 

살짝 내리깐 눈을 보니 무쌍은 아니고, 속쌍꺼풀이었다.

그러다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휙 쓸어올리는 그를 보자 머릿속에서 어떤 장면이 스쳤다.

'이 사람 분명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말해볼까 말까 고민하던 서연은 그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의 눈동자를 마주하니 왠지 모를 용기가 솟구쳤다.

"우리 어디서 본 적 있지 않아요?"

그의 표정 변화가 없는 얼굴에 미세한 무언가가 스쳤다.

"지금, 작업 걸어요?"
"네? 아니요. 정말 어디서 본 것 같아서 그래요."

"그 뻔한 멘트는 뭐지?"

그의 냉정한 반응에 서연은 급격하게 기분이 가라앉았다. 

"오해하진 말아요. 제가 사람 얼굴을 잘 못 알아봐서 혹시라도 아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 싶어서 말해본 거에요."

말을 뱉고 보니 너무 구구절절 늘어놓은 감이 없잖아 있었지만 이미 뱉고 난 뒤였다.

"그럼 그런 거로 하죠."

그는 냉소적으로 대꾸하고는 다시 시선을 핸드폰으로 돌렸다.

서연은 더할 말을 찾지 못하고 시선을 돌렸다. 

그의 태도에 당황한 것도 잠시 이어서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시선이 갈 곳을 잃고 방황하던 중 멀리서 걸어오는 재현이 보였다. 

"누나, 미안. 많이 기다렸어?"
"별로 많이 기다린 건 아니야."

서연은 때마침 돌아온 재현이가 어떤 구원처럼 느껴졌다.

재현은 자리에 앉으며 옆에 앉은 의문의 그와 인사를 나누었다.

"아, 참. 두 사람 서로 인사는 했어?"
"그럭저럭?"

그는 잠시 서연에게 시선을 돌리며 답했다. 

"누나, 여기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형이야. 이름은 차지민."
"아, 그래."

재현은 살짝 굳어있는 서연을 눈치채지 못한 채 말을 이어갔다.

"지민이 형, 이분은 오늘 새로 만난 누나 지서연."
"음, 반가워요. 지서연 씨."

그는 천연덕스럽게 인사를 하며 그녀와 시선을 마주쳤다. 

좀전의 냉랭한 표정을 지우고 제법 보기 좋은 미소까지 머금은 그를 보자 서연은 먹은 것도 없이 체할 것 같았다.

"아, 네. 반가워요. 차지민 씨."

재현은 두 사람이 인사를 나누자, 미소를 지었다. 

"나 오늘 누나랑 대화하면서 그 생각 했는데, 두 사람은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는 것 같아."

"대체 어디가 닮았어?"

서연의 손에서 칵테일 잔이 힘없이 미끄러져 내렸다.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잔을 잡은 그녀가 지민을 흘깃 쳐다보았으나 그는 별 반응이 없었다. 

"말하자니 표현이 안 되긴 하는데, 굳이 말하자면 첫인상? 아니다, 어떤 느낌이 그랬다고 해야 하나?"

재현은 말을 하고서도 부족하다 싶었는지 뭔가 더 고민하는 듯했다.

"아무튼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이면 뭔가 비슷한 점이 있겠지?"
"그건 뭐 그럴 수도 있지."

서연이 애써 입꼬리를 올려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 맞다. 누나! 지민이 형 노래 들은 감상이 어땠어?"

서연은 오늘 두 번째, 아니 세 번째로 당황스러운 순간이었다.

'이걸 당사자 앞에서 말하라고?'

"뭐, 좋던데?"
"좋지? 역시 누나도 좋아할 것 같았어."

서연이 어쩔 수 없이 답하자 재현이 신나서 맞장구를 쳤다. 그와 동시에 나지막이 터져 나온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출처는 줄곧 아무 말 없이 둘을 흥미롭게 지켜보던 지민이었다.

서연은 못 견딜 것 같은 기분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 잠깐 화장실 다녀올게."

그럴 리가 없지만 그녀의 뒷모습을 보는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신경 써서 똑바로 걸어보려 했지만 의식할수록 걸음걸이마저 삐걱거리는 것 같았다.

서연은 비상구 표시가 있는 곳에 걸어가서 멈춰 섰다.

갑자기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감각이 느껴졌다.

마시지 않던 술을 마셔서? 아니면 창피를 당한 것 같은 기분 때문에? 그게 아니라면 또 뭘까.

머릿속에서 미처 답을 찾지 못한 질문들이 맴돌았다.

확실한 건 다시 자리로 돌아가기 싫어졌다는 것이다.

서연은 손을 씻고 나서 화장실 거울을 보았다. 그리고 손의 물기를 털어내고 살짝 상기된 볼을 꾹꾹 눌렀다. 

지민의 이중적인 태도가 영 찜찜하고 불쾌했다. 

반면에 몇 초 안 되게 보긴 했어도 그의 분위기 있게 훈훈한 외모가 뇌리에 박혀서 다시 떠올랐다.

'그렇게 쓸 얼굴이면 차라리 나 주지.'

'그 와중에 얼굴이 눈에 들어오다니, 나는 구제 불능이야.'

그녀는 머리를 쥐어박으려고 손을 들었다가 툭 하고 내려놓았다.

발걸음이 떨어지지는 않지만, 시간을 끌수록 이상해질 게 뻔했다.

다시 자리로 돌아갔을 때 다행히도 그는 먼저 돌아가고 없었다.



6. 이어지는 시간 속에서(1)


서연은 기가 탈탈 털린 얼굴을 하고 집 문을 열고 들어섰다.

불 꺼진 방에 들어서는 일은 익숙해서 별 감상은 없지만, 살짝 떠들썩한 곳에 있다가 들어와서 그런지 어딘가 더 적막하게 느껴졌다.

“너무 오래 밖에 있었어.”

털썩 바닥에 주저앉은 그녀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익숙한 공간에 들어서자, 긴장이 풀리면서 힘이 쭉 빠졌다. 

살짝 올랐던 취기는 어느새 조금씩 가시고 있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하은이와 카페에 갔다가 서점에 들러 미리 봐 둔 책을 사서 집에 일찍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랬다면 지금쯤 그녀는 씻고 누워 즐겁게 영상 시청을 하거나 했을 것이었다.

‘역시 밖은 위험해.’

알림 소리에 핸드폰을 확인 해보니 재현에게서 온 문자였다.

지민이 먼저 돌아가고 둘은 바에서 한 시간 정도 더 이야기를 했다. 

그것도 재현의 1인 토크가 주였지만. 서연은 재현에 대한 A TO Z까지 알아버린 기분이 들었다.

헤어지기 전에서야 재현은 급하게 연락처를 물어왔다. 

재밌고 좋은 사람이긴 한데 살짝 감당이 안 되는 스타일이었다. 

말이 많고 재미없는 사람이 있기는 했지만, 재현은 다행히 재미는 있는 편이었다.

어떤 면에서는 살짝 눈치가 없는 것 같은데 상대방을 배려하려고 노력하는 게 보였다.

솔직히 그에게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많이 사회화된 편이지만 원래는 내향적인 그녀가 감당하기에 벅찰 뿐.

물론 그녀와 가장 가깝게 지내는 하은이도 밝고 에너지가 있는 편이지만 재현은 그런 면에서는 끝판왕 같았다.

그녀는 상단에 뜬 미리보기 알림만 확인하고 잠시 고민하다가 핸드폰을 침대에 던져두고 씻으러 들어갔다.

뒤늦게 문자에 답장하니 바로 빠른 답이 왔다.

‘오늘 누나 만나서 진짜 재밌었어.’
‘늦게 들어가게 해서 미안.’

‘아, 그리고 아까 깜빡하고 못 물어봤는데 우리 SNS맞팔할래?’

답장을 채 보내기 전에 빠르게 연달아 날아온 답장에 서연은 썼던 문자를 다시 지웠다.

‘응, 주소 보내주면 친구 추가 할게.’

재현이 거의 복붙해서 보낸 것처럼 빠르게 답장을 보내왔다.

서연은 노트북을 켜고 그가 보내준 SNS 주소를 입력했다.

‘일반인이 무슨 팔로워가 이렇게 많아?’

재현의 피드는 화려하고 다채로웠다. 심지어 언제 찍었는지도 모를 라이브 바의 사진도 올라와 있었다.
태그 여러 개 하고 쓴 소개 글에서 재현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옆으로 넘기던 서연의 손이 멈췄다. 그녀가 자리를 뜬 사이 찍은 건지 지민과 함께 찍은 사진도 올라와 있었다. 

재현이보다 작게 찍히긴 했지만, 시선이 자연스레 그에게 갔다. 

사진을 보니 기억 속에 그 얼굴과는 또 다르게 보였다. 

예쁘게 미소 짓는 재현의 옆에 있어서 그런지 더 대비되는 무심한 듯한 표정이었다. 

다시 봐도 분명 어딘 가에서 본 듯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어디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 정도의 비주얼이라면 쉽게 잊을 리가 없을 텐데.

서연은 자기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고 있었다. 

문득 몇 주 전에 미술관에서 본 그림 앞에 오래 서 있던 남자가 떠올랐다. 

비슷한 느낌이긴 했지만, 그 남자는 지민보다 머리카락이 좀 더 길었었다.

어떻게 생겼었는지 떠올려 보려 했지만, 인상이 점점 흐릿해져 가기만 했다.

그러고 보니 잘생긴 사람들은 다 비슷비슷하게 잘생겨서 구분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뭐 다시 볼 일이야 있겠어?”

계속 내려도 끝이 안 보이는 스크롤을 내리던 서연이 문득 정신을 차리고 친구 추가를 하자 얼마 안 지나 그도 팔로우를 해왔다.

서연은 재현이 올린 사진 밑의 댓글을 읽어보다가 지민으로 추정되는 프사를 발견하고 누르고 들어갔다. 
아차 싶었지만, 머리보다 손가락이 빨리 움직였다.

무채색의 프로필 사진과 미니멀한 피드가 꼭 그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최근 게시물이 6개월 전이었다.

그러다 누군가 찍어준 것으로 보이는 전신 샷 사진을 보고 손이 멈추었다.

‘대체 나 뭐 하는 거지?’

서연은 문득 손이 미끄러져서 지민의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르는 실수를 하는 망상을 했다. 

‘으악,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야.’

상상만 했을 뿐인데 소름이 돋았다.

그녀는 인터넷 창을 닫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침대로 다이빙했다. 

‘아, 이하은. 정신없어서 잊고 있었네.’

문득 떠오른 생각에 서연은 핸드폰을 들어서 하은에게 문자를 보냈다.

‘사랑하는 이하은, 우리 할 이야기 있지? 연락해~’

서연은 며칠이 훌쩍 지난 뒤에야 일이 있다며 약속을 미루던 하은을 만날 수 있었다.

카페에 들어선 서연은 빠르게 하은의 위치를 스캔했다.

놀랍게도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건 하은 혼자만이 아니었다.

“서연이 누나!”

서연을 보자 반갑게 손을 흔드는 존재가 있었으니 맞팔 하고 나서 별 연락이 없었던 재현이었다.

“하하. 안녕, 재현아.”

예상치 못한 만남에 서연은 당황스러웠지만 티를 안 내고 자리에 앉으며 하은을 쳐다보았다.

“뭐야, 둘이 약속이 있었는데 나오라 한 거야?”
“뭐 겸사겸사?”

하은이 싱긋 웃으며 답하다가 서연과 눈이 마주치자 슬쩍 시선을 피했다.

눈을 도르륵 굴리던 하은이 말을 이었다.

“저번에 먼저 가버린 게 미안하기도 하고 해서 오늘은 셋이 같이 보자고 했어.”
“아, 그랬구나.”

서연은 눈 맞춤을 피하는 하은에게 하려던 말을 삼키고 피식 웃었다.

“아 참. 언니 오기 전에 재현이랑 방 탈출 카페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언니 생각은 어때?”
“갑자기?”

서연은 예상 밖의 일정을 반가워하는 편은 아니었다.




추천 (1) 선물 (0명)
IP: ♡.252.♡.103
뉘썬2뉘썬2 (♡.169.♡.51) - 2023/11/17 06:17:09

박지민 아니고 차지민이네요.재현이랑 러브스토리로 이어지눈줄 알앗는데
제삼자가 등장햇네요.갑자기 남자복이 터진건가요?

단차 (♡.252.♡.103) - 2023/11/17 06:23:15

이름을 박지민에게서 가져온거 맞아요. 지민 생각하면서 썼어요. 성만 다르게 썼죠.
여주인공한테는 복이 와야죠.ㅋㅋ

뉘썬2뉘썬2 (♡.169.♡.51) - 2023/11/17 06:37:48

어쩐지.ㅋㅋ 방탄하면 지민이죠.

단차 (♡.252.♡.103) - 2023/11/17 06:43:27

주인공들 쓰면서 다 각자 마음속으로 모델로 생각한 아이돌이 있어요. ㅋㅋ

뉘썬2뉘썬2 (♡.169.♡.51) - 2023/11/17 06:52:10

연예인을 연구한 보람이 잇네요.이런 모티브가 되여주다니.

단차 (♡.252.♡.103) - 2023/11/17 06:53:46

다 써먹을 데가 있죠.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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