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마음속에 내가 산다면 13~14

단차 | 2023.11.18 08:38:42 댓글: 0 조회: 211 추천: 2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4518567
13. 스치는 너의 향기는


하은이 먼저 코인 노래방의 유리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 뒤를 따라 서연이 문을 잡고 들어서자 룸에서 새어 나오는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노란색을 메인으로 인테리어 된 내부는 조명과 더불어 더 밝고 즐거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카페처럼 인테리어 된 입구 바로 옆에 감성적인 배경의 포토존까지 있었다. 

하은은 지키는 사람 없이 마이크 커버와 여러 색상의 탬버린이 놓여 진 카운터에서 마이크 커버를 챙겼다.

복도 벽에 걸린 타공판에는 감각적인 디자인의 액자가 걸려 있었다.

서연은 하은의 뒤를 따라 대형룸에 들어섰다.

진한 갈색의 디귿 모양의 기다란 소파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방안은 네 명이 더 와도 될 만큼 널찍했다. 바닥에는 버터색의 벽면과 대비되는 진회색의 카펫이 깔려 있었다.

서연의 시선이 벽면에 붙은 화려한 앨범 포스터에 잠시 머물렀다.

큰 화면의 모니터가 벽에 걸려져 있었다. 
그 아래 테이블에 붙어있는 결제기를 본 서연이 카드를 꺼냈다.

모니터 우측 상단에 60분이 충전된 것을 본 서연은 옆에 놓인 리모컨을 들고 소파에 가서 앉았다. 하은이 마이크를 들고 서연의 옆자리에 와서 앉더니 커버를 씌우고 내려놓았다.

핸드백에서 핸드폰을 꺼낸 하은이 어딘가로 문자를 보냈다.

“재현이한테 대형 1번 방으로 오라고 했어.”

서연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소파에 편히 기댔다.

코인노래방의 위치를 알려준 재현은 정작 지민과 잠시 어디 들른다고 같이 올라오지 않았다.

“먼저 목 좀 풀어야겠어.”

하은이 테이블에 놓여 진 리모컨을 들더니 노래를 검색했다. 화면에 선택한 노래 제목이 뜨자, 하은이 마이크를 들었다.

평소보다 조금 더 높은 톤의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 하은이 1절이 끝나자, 취소버튼을 눌렀다.

“이 노래는 1절까지가 딱 적당해. 언니도 한 곡 부를래?”

서연이 미소 짓고는 하은에게서 리모컨을 건네받았다.

늘 부르던 노래를 끝마친 서연은 화면에 뜬 점수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기대했던 것보다 점수가 상당히 짰다.

약간은 정적이 흐르고 서연이 피식 웃자, 하은이 따라서 작게 웃었다.

“언니, 기계가 고장 났나 봐. 차라리 점수 나오는 걸 없애야겠어.”

하은이 말하면서 점수제거 버튼을 꾹 눌렀다.

“뭐, 내 목소리가 작아서 원래 점수가 잘 안 나오긴 해.”

서연은 들어오면서 본 음료수 자판기가 떠올랐다.

“너 뭐 좀 마실래? 아까 보니까 너 좋아하는 아이스티도 있던데.”
“좋아. 같이 가 언니.”

투명한 유리문 너머로 여러 종의 음료수가 보였다.
서연이 리더기에 카드를 꽂아 넣고 아이스티와 물을 선택하자 드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음료수가 굴러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머지 두 사람 건 어떡하지?”
“무난하게 물을 사면 되지 않아?”

하은이 음료수를 꺼내며 답했다.

“재현이 마실 건 제가 살게요.”

문득 들려온 소리에 돌아보니 언제 왔는지 모를 지민이 서 있는 게 보였다.

“제가 사도 되는데요.”
“괜찮아요, 그냥 제가 살게요.”

지민이 서연의 말을 단호히 자르고 옆으로 성큼 걸어왔다. 서연이 움찔하며 뒤로 물러났다.

잠시나마 스친 지민에게서 시트러스 계열의 향기와 더불어 담배 연기가 옅게 느껴졌다.

‘어디 들를 데가 있다는 게 그건가.’

서연은 그의 가벼운 듯 복잡하게 느껴지는 향기에 조금은 가슴이 답답해졌다.
딱 잡아 말하기는 어렵지만 어디선가 맡아 본 향기였다.
향기는 그와 연관된 기억을 불러온다고 한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의식하지도 못하는 사이 망각해 버린 기억에 잠들어 있을지도 모를 복잡미묘한 향기에 대해 생각하던 서연은 작게 숨을 내쉬었다.

묵묵히 자판기에서 주문하는 지민을 보던 서연의 시선이 마침 들어오는 재현에게 옮겨갔다. 

익숙하지 않은 분위기에 눈치를 보던 하은이 먼저 손을 흔들었다.


방에 돌아오자, 하은이 리모컨을 들더니 재현에게 바로 넘겨주었다.

“재현 씨, 늦게 온 벌로 선창의 영광을 주겠어.”
“그게 벌이야? 듣고 싶은 노래가 있으면 말해봐.”

하은이 두리번거리다가 벽에 붙은 인기곡 포스터를 가리켰다.

“그러면 저기 1위에서 5위 사이에서 골라봐.”

재현은 포스터를 보다가 난감한 듯 웃었다.

“어, 미안. 안 되겠는데, 다 모르는 노래야.”
“뭐야, 그럴 거면 왜 물어봤어.”

하은이 실망하며 툴툴거렸다.
재현이 리모컨을 들더니 인기 차트에서 힙합 코너를 선택하고 들어갔다.

“대신 여기서 골라주면 안 될까?”
“아, 재현 씨는 이런 거 부르는구나.”

하은이 살짝 심드렁한 듯하더니 차트를 내리며 훑어보았다.

“혹시 저 노래도 할 수 있어?”
“아, 저건 혼자 부르기 좀 어려운데.”

재현이 조금은 자신 없어 하면서도 일단 선택했다.
음악이 시작되자 그는 가볍게 숨을 내뱉고는 노래를 시작했다.

평소의 부드럽고도 산뜻한 목소리와는 조금 다른 자신감 넘치는 파워풀한 목소리였다. 중간중간 제스처도 자연스럽게 하는 걸 보니 많이 불러본 듯했다.

꽤 준수한 실력으로 부르는 재현에게 하은이 즐겁게 호응했다.

“오~ 재현 씨. 어쩐 일이야? 오늘따라 좀 멋진데!”

노래가 끝나고 자리에 돌아온 재현이 하은의 칭찬에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칭찬 고마워. 가사를 좀 놓치긴 했어.”
“아니야, 내가 보기엔 너 오디션 나가봐도 돼.”

“에이, 그건 좀 너무 갔다. 그 정도는 아니야.”
“이걸 안 속네? 이래서 눈치 빠른 녀석은 싫다니까.”

또다시 시작된 둘의 장난스러운 대화에 서연이 못 참고 웃어버렸다.

대각선으로 보이는 소파에 앉은 지민이 시야에 잠깐 걸렸지만, 서연은 이내 다음 선곡을 고르는 하은에게 시선을 돌렸다.

하은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재현이 서연의 옆으로 와서 앉았다.

“누나, 누나는 노래방에 오면 주로 어떤 노래 불러?”
“그냥 이것저것 부르긴 하는데 발라드를 주로 불러.”

재현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물었다.

“혹시 좋아하는 가수 있어? 노래도 괜찮고.”

서연이 핸드폰을 꺼내서 앱을 켜고 프로필을 켰다.

“내 프로필 음악인데, 이 가수가 하는 노래는 다 좋아해.”
“아, 나도 이 사람 알아. 노래도 좋아서 자주 들었었어.”

“그래? 너는 이런 노래 잘 안 들을 것 같았는데.”
“응? 아니야. 요즘엔 이런 잔잔한 노래도 좋더라고.”

서연의 말에 재현이 급히 부정하고는, 그녀를 보며 싱긋 웃었다.

그녀가 재현에게 보여준 프로필 음악은 잔잔한 노래이긴 했지만, 그 가수는 그 곡 외에는 감정의 진폭이 잘 느껴지는 호소력 강한 노래를 주로 발표하고 있었다.

잘 알고 좋아한다고 말한 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서연은 그저 웃어넘겼다.




14. 가까운 듯 먼 사이


어두운 노래방 안에서 여러 색의 조명이 내는 빛들이 교차하며 바깥세상과는 다른 분위기로 물들이고 있었다.

서연은 혼자서 6인조 그룹 음악을 다 소화해 내는 하은을 경이롭게 바라보았다.

파트별로 음역이 다름에도 하은이 자기만의 스타일로 바꾸면서 부르고 있었다.댄스의 대부분은 날리긴 했지만, 포인트 안무는 놓치지 않았다.

하은의 노래가 끝나자, 서연이 미소를 지으며 손뼉을 쳤다.

그에 이어 미리 예약해 놓은 다음 노래가 뜨자 재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연과 눈이 마주친 하은이 즐겁게 웃으며 옆에 와서 앉더니 음료 뚜껑을 비틀어 열었다.

“역시 혼자 다 하기엔 쉽지 않아.”
“잘하던데?”

“아니야, 조금은 벅차. 그런데 언니는 예약 안 해? 나는 다음 곡만 하고 좀 쉬려고.”
“응, 해야지.”

하은이 일어나서 소파 옆에 놓여 진 작은 의자에 가서 앉았다.

서연의 시야에 열정적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재현을 차분한 얼굴을 하고 담담하게 지켜보고 있는 지민이 들어왔다. 

언뜻 무관심해 보일 수도 있었지만, 그는 나름대로 충분히 음악을 느끼며 즐기고 있었다. 

아예 모르는 사이라고 할 수도 없음에도 서연은 아직은 그와의 거리가 멀게 느껴졌다. 그와의 첫 대화가 안 좋게 끝나긴 했지만, 그는 그 이후에는 적당히 예의를 지켜주고 있었다. 

몇 번이나 밥을 같이 먹었어도 여전히 묘하게 선을 긋는 듯한 태도가 느껴져서인지 편하지 않았다.

그에 반해 재현은 몇 번 만나지 않았음에도 하은보다는 아니지만 제법 친근하게 느껴졌다.

오히려 재현과 너무 빨리 가까워진 게 아닐까 생각되었다.

리모컨을 든 서연은 잠깐 망설이기는 했지만, 노래방에 온 이상, 부르고 싶었던 곡은 하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애창곡을 예약했다.

그리고 재현이 부르는 노래를 마음 편히 감상했다. 처음에 부른 노래보다 더 잘 부르는 것 같았다.

이어서 하은이 예약한 노래가 뜨고 하은이 모니터 앞으로 달려갔다.

그런 하은을 못 말린다는 듯 쳐다보고 웃은 재현이 자리에 와서 앉았다.

하은의 선곡은 리듬감 있는 비트에 발랄한 멜로디의 다른 6인조의 아이돌 노래였다.

자리에 돌아온 재현이 지민의 옆에 가서 앉더니 둘이 대화를 짧게 나누었다.

지민이 뭐라고 말하자, 재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일어나서 서연의 옆으로 와서 앉았다.

“누나, 노래 재미있었어?”
“응, 너 잘하더라.”

“진짜? 다음에 오면 누나가 좋아하는 노래를 연습해서 불러줄게.”
“연습까지? 알겠어. 기대할게.”

서연은 그저 조용히 미소 지으며 재현의 말을 받아넘겼다.

그런 그녀의 반응에 재현은 뭔가 더 말하려는 듯하다가 그만두었다.

지민은 그런 둘을 조용히 지켜보다가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한참 뒤에야 돌아왔다.

서연이 한 곡 부르고 자리에 돌아오자, 힘들다던 하은이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 재현과 경쟁적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서연은 뭔가 기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한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흘러갔다.

마지막 곡이 끝나자, 하은이 영혼이 탈탈 털린 눈으로 일어섰다.

바깥에 나와보니 아직 밝았다. 저녁 장사가 시작된 골목이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노래방에 들어가기 전보다 목소리가 많이 거칠어진 하은이 입을 열었다.

“좋은 승부였어. 오늘은 이만 집에 가볼게.”
“그래, 덕분에 재밌었어. 다음에 또 가자.”

재현이 시원하게 대답하고는 서연을 보았다.

“누나도 집에 들어갈 거야?”
“응, 출근해야 하니까 일찍 들어가서 쉬려고.”

“아. 내일 월요일이지 참, 오늘 즐거웠어. 다음에 또 봐 우리.” 

재현과 인사를 나눈 서연은 그 옆의 지민을 쳐다보았다.

약간은 침묵이 흐르고 지민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안녕히 가세요. 서연 씨.”
“네. 지민 씨도 안녕히 가세요.”

지민의 간결한 인사에 서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했다.

“지민 오빠, 잘 들어가시고 다음에는 노래 꼭 들려주세요.”
“네. 하은 씨도 안녕히 가세요.”

뒤돌아선 서연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서연은 하은과 같이 전철역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멀어져가는 둘의 모습을 지켜보던 재현이 지민을 돌아보았다.

“형, 같이 밥 먹고 들어갈 거지? 그리고 나 술도 한잔 하고 싶은데.”
“그래, 가까운 곳으로 가자.”

지민과 재현은 둘이 자주 가던 일식 주점에 들어섰다.

따뜻한 빛의 조명이 원목 테이블과 의자에 반사되며 아늑하게 느껴졌다.

메뉴를 주문하고 앉은 재현이 조금은 고민하는 듯하다가 말을 꺼냈다.

“형. 나 요즘 관심 가는 여자가 생겼어.”
“나도 아는 사람이야?”

지민이 관심을 보이자, 재현이 잠시 머뭇거렸다.

“……서연이 누나야.”
“아, 그래. ……너는 어떻게 하고 싶은데?”

어쩌면 예상하였던 지민은 별로 놀라지 않고 말을 이었다.

“더 가까워지고 싶긴 한데,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모르겠어.”
“너는 그런 거 잘하잖아. ”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누나한테는 뭔가 안 통하는 느낌도 들어.”

그런 재현에게 어떤 조언을 해줘야 할지 잠시 고민하던 지민의 입에서 그의 의지와 무관한 말이 흘러나왔다.

“이런 고민은 이르지 않아? 아직 안 지 얼마 안 되기도 했고, 일단은 지금처럼 지내다가 조금 더 친해지면 솔직하게 표현해 봐도 늦지 않잖아.”

재현은 지민의 말을 듣고는 시무룩하게 웃었다.

“형 말이 맞아. 내가 너무 빨리 걱정하는 걸 수도 있어. 위로 고마워.”
“그래, 기회는 앞으로도 많아.”

재현은 지민의 말에 수긍하고는 뒤늦게 민망한 듯 다른 화제로 돌렸다.

시간이 늦어지자, 지민은 대리를 불러서 한동네에 사는 재현과 같이 돌아왔다.

그러나 차를 주차하고 내린 뒤에도 재현은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조금 더 늦은 시간. 지민은 집에 들어섰다.

현관문을 여는 동시에 그의 사랑스러운 고양이가 ‘야옹’ 하며 작은 소리를 냈다. 

가까이 다가서자, 고양이는 그의 다리 주변을 맴돌더니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지민이 몸을 숙여 쓰다듬으려 하자, 고양이는 갑자기 ‘하악’ 소리를 내고는 작은 방으로 후다닥 뛰어갔다. 

“바니야.”

허망하게 고양이가 사라진 방향을 보던 지민이 문득 자기 옷에서 나는 향기를 점검했다.

들어오기 전까지 바깥에서 재현과 오래 같이 서 있다가 들어와서인지 그의 옷에도 담배 연기가 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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