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노 다케시의 순수를 찾아

네로 | 2008.03.29 05:17:09 댓글: 0 조회: 1342 추천: 0
지역中国 北京市 朝阳区 분류여행기 https://life.moyiza.kr/travel/1688788


[한겨레] 다른 세계를 타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건 여행의 장점입니다. 우리 또한 영화를 통해 인생과 세계를 바라봅니다. 영화의 눈을 빌려 세계를 여행한 ‘필름의 거리’를 격주로 연재합니다.

“또 아사쿠사야?” 벌써 다섯 번째. 도쿄에 갈 때면 빼먹지 않고 이곳에 들르니 주위에선 지겹다는 반응 일색이다. 하긴, 신주쿠나 하라주쿠 같은 중심가와는 사뭇 동떨어진 전통의 거리 아사쿠사에서 매번 색다름을 찾는 것도 무리일 터다. 이곳의 명물인 천초사(센소사)나 제법 볼거리로 꼽히는 전통 상점 거리 ‘나카미세도리’도 처음엔 마냥 신기하지만 냉정하게 말하자면 곱씹어 간직할 만한 풍광은 아니다. 나 또한 ‘도쿄타워’나 ‘레인보 브리지’처럼 도쿄에 가면 반드시 들러야 할 관광 필수코스 이상으로 이곳을 염두에 두진 않았다.

사정이 바뀐 건 그러니까 기타노 다케시가 감독과 주연을 맡은 영화 <기쿠지로의 여름>을 보고 난 후다. 영화는 집 나간 엄마를 찾아 떠나는 초등학생 마사오, 그리고 이 모험에 우연히 동참하게 된 건달 기쿠지로의 여행담을 그리고 있다. 평소 폭력적인 영화를 찍던 다케시답지 않게 착한 영화를 찍어 주위를 놀라게 한 작품이자, 나에겐 잊을 수 없는 시작과 마무리로 기억되는 영화다. 사실 마사오가 집 떠나기 전, 그리고 험한 여정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게 전부니 그닥 별스럽지도 않은 장면이다. 그런데 히사이시 조의 경쾌한 음악을 배경으로 꼬마가 열심히 달리는 장면을 보노라면 미처 어딨는지 알지도 못했던 삶의 ‘희망’이 샘솟는 기분이 들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중요하건 몇 번이고 다시 본 이 장면이 촬영된 곳이 바로 아사쿠사라는 점이다.

마사오가 달리는 짧은 시간, 에도시대의 정취를 그대로 보존한 아사쿠사 거리가 화면에 고스란히 담긴다. 천초사, 전통 상점거리를 지나 메이지유신 이후 번성한 극장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유원지 ‘하나야시키’, 도쿄의 한강이라 불리는 ‘스미다가와’ …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알려진’ 아사쿠사일 뿐이다. 바쁜 할머니와 단 둘이 사는 마사오에게 아사쿠사는 ‘관광지’가 아닌 외로움을 달래 줄 유일한 놀이터일 뿐이다. 사실 다케시가 다시 없을 것 같은 ‘착한 영화’를 만들면서 출발과 매듭점으로 아사쿠사를 택한 것은 눈여겨 볼 만하다. 마사오에게 이곳이 생활이었던 것처럼 다케시에게 아사쿠사는 청년시절, 가난에 허덕이며 일용직을 전전하던 그를 코미디언으로 키워 준 정신적 고향이었기 때문이다.(아사쿠사는 일본 코미디언의 산실로 정평이 나 있다) 다케시는 이 영화를 찍으면서 “영화를 바꾸면 나라는 사람도 바뀔 것 같다”고 전했다. 결국 자신이 꿈을 키운 곳, 가장 순수했던 시절을 보낸 그곳을 영화에 등장시킴으로써 오래 전 잃어버린 자신과의 만남을 시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곳을 찾을 때면 나는 마사오처럼 한달음에 아사쿠사를 섭렵하는 대신 이 거리를 꼭꼭 되새김질하는 느린 걸음을 택한다. 간식거리로 문어빵을 사들고, 관광객을 위해 마련된 포토패널에 고개도 쏙 밀어넣어 본다. 천초사를 조금만 돌아 나서면 거리는 관광지의 외피를 벗고 서민들의 거리로 탈바꿈한다. 오래된 2층집 창틀에 하얀 이불을 내거는 아주머니, 거리에 늘어선 선술집에서 청주(사케) 한잔에 인생을 풀어놓는 동네 할아버지들, 과연 작동이 될까 싶은 시계를 열심히 손질하는 시계방 아저씨, 뒤죽박죽 쌓여 있는 장난감을 정리하는 완구점 할머니 … 여기에 코가 빨개지도록 낮술을 걸친 취객과 경찰의 실랑이까지 더해지면 이 거리의 풍경이 완성된다. 늘어선 구경꾼들 속, 어린 마사오와 청년 다케시가 자연스레 오버랩 된다. 에도시절부터 전해진 사람 내음, 아사쿠사를 둘러보는 동안 나 역시 잠깐이나마 순수함을 되찾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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