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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 -손원평 작 (10)

호수 | 2021.09.16 19:20:27 댓글: 4 조회: 181 추천: 0
분류연재소설 https://file.moyiza.kr/fiction/4304402


30.
키가 작고 깡마른 아이가 두 주먹을 불끈 쥔채 서 있다. 팔과 다리는 작은 몸집에 비해 무척 길었다. 단단한 몸이다. 만화[내일의 조]에 나오는 조와 흡사한 체격이다. 하지만 부지런히 운동을 해서 만들어진 몸과는 달랐다. 다큐멘터리에서 본 제3세계 아이들의 몸 같았다. 종일 쓰레기장을 뒤지거나 관광객을 따라다니며 달러를 구걸하는 아이들 처럼 생존을 위한 움직임으로 다져진 몸, 까무잡잡한 피부에는 윤기가 흐르지 않았다. 그림자처럼 짙은 눈썹 아래로 바둑알처럼 새까맣게 반질거리는 눈동자가 모두를 쏘아보고 있었다. 사람들을 침묵하게 한 건 그 눈빛이었다. 해칠 생각이 없는 사람 앞에서 먼저 이를 드러내고 제 새끼를 죽여 버리는 맹수 같았다.
그 애가 바닥에다 침을 퉤, 뱉었다. 침을 뱉는 게 그 애의 공식적인 인사법인 것 같았다. 얼마 전 그 애를 처음 봤던 날도 그 애는 똑같이 행동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장례식장에서의 대면은 곤이와의 두 번째 만남이었다.

며칠 전 전학생이 왔다. 교실 문을 연 담임 뒤로 체구가 작은 아이가 하나 들어왔다. 그 애가 곤이다. 팔짱을 낀 채 짝다리로 섰다는 건 낯선 아이들 앞에서도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는 뜻일 거다. 담임은 자기가 전학 온 양 쭈뼛거리더니 곤이더러 자기소개를 하라고 했다. 그러자 곤이는 슬쩍 반대편 다리로 무게를 옮기더니
- 그냥 선생님이 해 주시죠.
라고 말했다. 곳곳에서 폭소가 터졌다. 환호 섞인 박수 소리가 들려 오기도 했다.
담임은 붉어진 얼굴에 손바라을 일으켰다.
- 윤이수다. 이제 반 애들한테 인사해야지.
그 말에 곤이는 아, 뭐 ... ... 하며 우두둑 목을 꺾더니 혀로 볼 안쪽을 번갈아 불룩하게 찔렀다. 그러곤 씩 웃음을 짓고 나서 고개를 옆으로 돌려 퉤, 하고 침을 뱉었다.
- 됐죠?
곳곳에서 함성이 길게 터져 나왔다. 하지만 거친 말들도 간간이 섞인 게 조금 전과는 달랐다. 그런 상황에서라면 담임이 주의를 주거나 교무실로 따라오라고 말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웬일인제 담임은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꾹 눌러 삼킨 말이 얼굴로 올라와 붉은 기운을 더했을 뿐이다. 곤이는 소개를 마치고 한 시간 후에 조퇴를 했다.
곧 신상 털기가 시작됐다. 삼십 분도 안 돼서 곤이가 어디서 뭘 하다 온 앤지 반 전체가 알게 됐다. 한 이이가 사촌에게 들은 정보를 몇가지 흘렸다.
그 사촌은 곤이가 소년원을 나와서 여기로 전학 오기 전에 갔던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그 애가 사촌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는 아이들의 요구에 따라 스피커폰으로 생중계됐다. 아이들은 오래만에 단합하여 동그랗게 둘러 앉았다. 잘 들으려고 책상 위로 올라간 아이도 있었다. 나는 멀리 있었지만 이 말만큼은 또렷이 들려왔다.
- 그새끼 완전 깡패야. 살인 빼곤 다 해 봤을걸.
누군가가 내게 장난스럽게 말을 던졌다.
- 야 병신. 어쩌냐. 이제 네 시대는 갔다.

다음 날 곤이가 교실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아이들은 일제히 조용해졌다. 곤이는 말없이 자리로 향했다. 아이들은 슬슬 눈길을 거두거나 괜히 책에 고개를 묻는 척했다. 얌전히 앉는가 싶던 곤이가 냅다 책가방을 던졌다.
- 누구냐?
어제의 소란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 내 신상 턴 새끼 누구냐고. 알어서 일어나는 게 좋을 거다.
공기가 조용히 진동했다. 최초의 정보 제공자가 몸을 떨며 일어났다.
- 아, 아니 ... ... 내 사촌이 널 안다고 해서 ... ...
아이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곤이는 또 혀로 볼 안쪽을 몇 차레 찌르더니 입을 열었다.
- 고맙다. 네 덕분에 소개할 필요 없어졌네. 나 그런 애다. 곤이가 자리에 풀썩 앉았다.

아줌마의 부고를 전해 들은 날 , 곤이는 학교에 오지 않았다. 가족이 죽었다고 했다. 그런데도 나는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곤이가 그 애라는 걸. 나를 아들로 착각하고 죽어 버린 아줌마의 진짜 아들이라는 걸.

31.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곤이가 제 엄마의 영정 앞에 절을 했다. 별다른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윤 교수의 인도에 따라 향을 피우고 술잔을 올리고 절을 하는 것까지 순식간에 끝냈다. 모든 동작이 너무 빨랐고 절은 한 번만 하고는 벌떡 일어서서 건성으로 고개를 까딱했다. 윤 교수는 한 번 더 하는 거라고 곤이의 등을 밀었다. 하지만 그 애는 몸으로 그 손길을 밀치고는어디론가 사라졌다. 밥을 먹고 가라는 윤 교수의 권유로 나는 상 앞에 앉았다. 명절 때 엄마가 하던 음식과 종류가 비슷했다. 뜨거운 국과전. 꿀이 든 떡이며 과일들. 나도 몰랐는데 배가 고팠는지 밥이 빨리 넘어갔다.
사람들은 남 얘기를 할 때 자기 목소리가 얼마나 큰지 자주 잊어버린다. 말하는 사람은 작게 말한다고 생각해도, 그말들은 대부분 여과 없이 다른 사람의 귀로 들어간다. 밥으 먹는 내내 곤이에 대한 얘기가 공중에 떠다녔다. 장례 이틀째가 돼서야 나타난 이유는 그 애가 오기를 거부해서였다는 둥, 시설에서 나오자마자 사고를 쳤다는 둥, 전학을 시키는데 돈이 얼마나 들었다는 둥, 아들 역할을 한 아이가 따로 있다는 둥, 여러 말들이 어지럽게 오갔다. 나는 구석에서 사람들을 등지고 앉아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잘은 몰랐지만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밤이 되고 조문객이 어느정도 빠질 때쯤 곤이가 다시 나타났다. 곤이의 눈이 지목하듯 내게 꽂혔고 시선을 떼지 않은 채 그 애는 내 앞으로 와 앉았다. 아무 말 없이 육개장을 두 그릇이나 후루룩 비운 곤이는, 마침내 얼굴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
- 너였냐. 나 대신 아들 노릇 한 새끼가.
답할 필요가 없었다. 이어진 말도 곤이의 차지였기 때문이다.
- 이제 골치 아플 줄 알아라. 뭐, 재미있을지도 모르고.
곤이가 씩 웃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다음 날 부터 진정한 시작이, 시작됐다.

32.
곤이 곁에 두 아이가 따라 다녔다. 말라깽이 같은 한 명은 곤이의 말을 다른 아이들에게 전하는 비서 노릇을 맡았고, 덩치가 좋은 다른 한 명은 한눈에도 새를 과시하는 역할이었다. 셋은 그렇게 친해 보이진 않았다. 친구라기보다는 모종의 계약이나 목적으로 뭉친것 같았다.
어쨌든 곤이는 나를 괴롭히는 걸 새로운 취미로 삼은 듯 했다. 상자를 열면 튀어나오는 인형처럼 불쑥불쑥 내 앞에 나타나곤 했다. 매점 앞에 잠복해 있다가 나를 한 대 치기도 했고 복도 끝에 서 있다가 발을 걸어 넘어뜨리기도 했다. 그런 자잘한 계획이 성공할 때마다 곤이는 대단한 선물이라도 받은 사람처럼 커다랗게 웃었고, 양옆에 서 있던 아이들도 곤이의 눈치를 보며 장단을 맞추듯 따라 웃었다.
나는 시종일관 대응하지 않았다. 곤이를 두려워하고 나를 불쌍하게 여기는 아이들이 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도 선생님에게 말하진 않았다. 후환을 감당하기 힘들 거라는 계산이 한몫했겠지만, 내 반응도 딱히 도움을 요청하는 느낌이 아니어서였을 거다. 둘 다 이상한 놈들이니 구경이나 하자는 게 주된 여론이었다.
곤이가 내게서 어떤 반응을 원하는지는 뻔했다. 초등학교 때도 중학교 때도 그런 아이들이 있었다. 괴롭힘 당하는 아이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고 싶어하는 아이들. 그 애들은 대부분 힘을 써서 자기들이 원하는 걸 얻는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곤이가 원하는 게 내게서 어떤 자그마한 표정의 변화라도 보이는 것이라면 그 애는 영원히 나를 이길수 없으리라는 것을. 그럴수록 힘이 부치는 사람은 곤이 자신이 라는것도.

얼마 가지 않아 곤이는 타깃이 심상찮은 상대라는 걸 깨달은 것 같았다. 나를 건드리는 행동은 계속됐지만 전처럼 당당한 기색이 아니었다. ' 쫀 거 아니야? 완전 초조해 보여' 아이들이 곤이 몰래 속삭였다. 내가 반응하지 않으면 않을수록,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교실 안의 골기는 팽팽해져 갔다.
얼마 뒤, 제풀에 지쳤는지 곤이는 나를 넘어뜨리거나 뒤에서 머리를 치고 가는 대신, 공식적인 결판을 '선언' 했다. 담임이 종례를 마치고 나가자마자, 말라깽이가 칠판 앞으로 쪼르르 달려가 뭐라고 쓰기 시작했다. 칠판에 삐뚤삐뚤 한 글자가 적혔다.


내일 점심 급식 후 , 소각장 앞.

곤이의 목소리가 의기양양하게 울렸다.
- 분명히 예고했다. 그러니까 선택은 네가 해라. 맞기 싫으면 피해. 네가 안 나오면 겁나서 튄 걸로 치고 더 이상 귀찮게 안 할테니까. 그대신 나온다면 각오 좀 하고.
대꾸하지 않고 가방을 둘러메고 일어섰다. 곤이가 내 등에 책을 던졌다.
- 알아듣긴 했냐, 병신아? 맞기 싫으면 피하라고.
곤이가 씩씩댔다. 분을 참지 못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내가 조용히 물었다.
- 내가 왜 널 피해야 되는데? 난 다니던 데로 다닐거야. 거기가 네가 없다면 볼 일이 없을테고, 있다면 만나게 되겠지.
등에 꽂히는 욕설을 뒤로하고 교실을 빠져 나왔다. 곤이가 성가신 짓으로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다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33.
전교생이 곤이와 나의 대결을 알고 있었다. 아침부터 교정이 시끌시끌했고 가끔씩 아이들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들이 점심시간에 있을 일을 암시했다. 누군가 " 설마 선윤재가 진짜 그리고 가겠냐?" 라고 말했다. 누가 이길지를 놓고 내기를 거는 애들도 있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수업에 임했다. 내가 느끼기에 시간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평소처럼 흘렀다. 4교시가 끝나고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렸다. 급식실에서 아무도 내 옆에 앉지 않았다. 거기까진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밥을 다 먹고 자리에서 일어서자 멀리서 몇몇 아이들이 나를 따라 일어서는 게 보였다. 내가 움직이자 아이들의 무리가 점점 커졌다. 입구를 빠져나왔다. 교실로 가려면 소각장을 자나는게 지름길이다. 나는 터벅터벅 걸어갔다. 곤이가 서 있었다. 똘마니들은 보이지 않았고 그애 혼자였다. 곤이는 나무둥치를 발로 툭툭 건드리다가 나를 보고는 동작을 멈췄다. 먼 거리인데도 그 애가 두 주먹을 말아 쥐는 게 보였다. 나와 곤이 사이의 거리가 좁혀질수록 내 뒤를 따르던 아이들이 불필요한 먼지처럼 하나둘 흩어졌다.
고이가 짓고 있는 표정은 조금 복잡했다. 화가 났다고 보기엔 입술을 꽉 물고 있었고, 슬프다고 하기엔 눈꼬리가 너무 위로 뻗어 있었다. 이표정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 쫄았다. 쫄았어. 존나 당황했나 봐, 윤이수 새끼.
누군가 외쳤다.
이제 곤이와 나의 간격은 몇 발짝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일정한 속도로 걸음을 옮겼다. 밥을 먹고 나면 졸렸기 때눔에 얼른 교실로 돌아가 엎드려서 잠을 청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 곤이는 의미 없는 풍경처럼 나를 스쳐 지나갔다. 오, 하는 아이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고 그러자마자 뒤통수가 가볍게 울렸다. 팔이 헛나갔는지 살짝 스쳐을 뿐 아프진 않았다. 하지만 뒤를 돌아보기도 전에 발길질에 몸이 휘청 앞으로 기울었다.
- 분명히, 피하라고 했잖아, 씨발, 이건, 네가. 선택한, 거라고,
한 단어에 한 대씩 규칙적인 발길질이 몸을 울렸다. 횟수가 거듭될수록 강도도 점점 세졌다. 나는 어느새 쓰러져 있었고 입에선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뺨 안쪽에 피가 고였다. 하지만 나는 결코 그애가 원하는 것을 해 줄수가 없었다.
- 너란 놈은 대체 뭐야, 이 병신 새끼야!
곤이가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소리를 질렀다. 지켜보기만 하던 아이들도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저러다 큰일 나겠어. 야, 누가 담임이라도 불러! 웅성거림 속에서 몇개의 또렷한 목솔가 들리자 곤이는 군중에게 얼굴을 돌렸다.
- 누구냐? 뒤에서 지껄이지 말고 나와 봐, 이 개새끼들아, 어?
곤이는 땅에 흩어진 물건들을 눈에 보이는 대로 집에 들어 아이들을 향해 미구 던지기 시작했다. 빈 캔이나 나무토막, 유리병 따위가 공중으로 떠올랐다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이들이 놀라 소리를 지르며 도망쳤다. 그 모습이 낯익었다. 할멈 엄마. 그 일이 일어날 때 거리의 사람들은 지금과 비슷했다. 이제는 막아야 했다. 입 안이 피로 흥건했다. 그래서 침을 한번 모아 뱉은 뒤 말했다.
- 그만둬, 네가 원하는 걸 나는 해 줄 수가 없어.
- 뭐라고?
곤이가 씩씩거렸다.
- 네가 원하는 걸 하려면 나는 연기를 해야 해. 그건 나한테 너무 어려운 거야. 불가능해. 그러니까 이제 그만해. 겉으론 무서운 척해도 속으로 다들 널 비웃고 있을 테니까.
곤이가 주변을 돌아봤다. 순간 멈춘 듯 정적이 흘렀다. 곤이의 등이 적개심을 품은 교양이처럼 위로 솟았다.
- 썅, 다들 죽어버려!
그러더니 곤이는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입에서 나오는 말이 하나같이 욕이었다. 저주, 욕 . 그것만으로 표현할 수 없는 광기.







추천 (0) 선물 (0명)
IP: ♡.179.♡.193
kimabcd (♡.238.♡.57) - 2021/09/17 01:19:59

좋은글 잘 보고 갑니다 ^^

호수 (♡.111.♡.242) - 2021/09/17 08:56:03

감사합니다.^^

토마토국밥 (♡.15.♡.73) - 2021/09/29 16:48:22

잘 보고 갑니다

호수 (♡.179.♡.193) - 2021/09/29 17:18:08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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