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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 -손원평 작 (20)

호수 | 2021.10.07 07:32:55 댓글: 0 조회: 121 추천: 0
분류연재소설 https://file.moyiza.kr/fiction/4311464


62.
저녁에 곤이가 책방으로 찾아왔다. 빈 서가를 할일없이 텅텅 쳐 대며 말들을 늘어놓았다.
- 너 재주 좋더라. 로봇 주제에 연애질도 할 줄알고, 편들어 주는 계집애까지 생기고, 걔가 꺼지라는데 존나 당황했잖아. 새끼, 느끼지도 못할 거 많이 받아서 좋겠다.
말문이 막혔다. 곤이는 쫄지 마, 쫄지마, 우리 사이에, 하며 별거 아니라는 듯 손사래를 쳤다.
- 근데 말이야. 한 가지만 묻자.
곤이가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 너도 나라고 생각해?
마침내 곤이가 용건을 꺼냈다.
- 난 여행을 가지도 않았어.
- 대답만 해. 나라고 생각하냐고.
- 가능성을 묻는거야?
- 그래, 가능성. 내가 했을 가능성.
- 거기 있던 모든 애들에게 가능성이 있지.
- 그중에서도 내가 월등히 더 높은 거고?
곤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생글거렸다.
- 솔직해 말하라면,
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 다들 너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하는 게 이상하진 않아. 넌 그렇게 생각할 만한 요소가 많으니까. 너 말곤 그럴 만한 사람이 잘 안 떠오르는 거야.
- 그렇구나. 그럴 것 같았어. 그래서 고집 안 피웠어. 한번 말했거든, 내가 한 거 아니라고, 근데 소용없더라고, 입 아플 거 같아서 가만 있었는데, 아빠라는 작자는 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돈을 바로 갚아 버리데, 몇십만 원은 됐을 텐데 , 그런 아빠 둔 거 자랑스러워 해야 되냐?
나느 ㄴ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곤이도 한동안 입을 꾹 다물었다.
- 근데 나 안 그랬다.
말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잠시 시간이 흘렀다.
- 나 말이야, 그냥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생각하는 대로 살아보려고 해, 사실 그게 내가 제일 잘 아는 거기도 하고,
- 무슨 말이야?
- 말했잖아. 난 강해지고 싶다고, 고민 많이 했어. 어떻게 하면 강해질 수 있는지. 공부를 많이 하거나 몸을 키워서 강해지는 법도 있겠지. 근데 그런 건 나한텐 안 어울리잖아? 너무 늦었거든, 난 너무 , 늙어 버렸으니까.
- 늙었다고?
내가 되물었다. 늙었다. 그 단어를 말하며 곤이를 보는 순간,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응, 늙어 버렸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 그래서?
내가 물었다.
- 그래서, 강해질 거야. 내가 살아온 인생답게, 나한테 제일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이기고 싶어, 상처받는 걸 멈출 수 없다면 차라리 상처를 줄 거야.
- 어떻게?
- 몰라, 하지만 어렵지 않을걸. 그게 나랑 가까운 세계니까.
곤이가 피식 웃었다. 무언가 말하려는데 곤이는 벌써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그 애는 갑자기 휙 돌리더니 이런 말을 남겼다.
- 앞으로는 볼 일 없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자, 작별의 뽀뽀 대신 이거.
곤이가 눈을 찡긋하더니 가운뎃 손가락을 슬그머니 올렸다. 부드러운 미소였다. 그 애의 얼굴에서 그런 웃음을 본건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렇게 그 애는 사라졌다.
그리고 비극이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4부

63.
도난 사건의 범인은 다른 아이로 밝혀졌다. 학기 초에 아이들 앞에서 내게 할머니가 죽는 걸 본 기분이 어떠냐고 큰소리로 물었던 아이. 그 애가 담임을 찾아가 자신이 계획적으로 일을 꾸면다고 말했다. 목적은 돈이 아니라 누명을 씌우고 사람들의 반응을 보는 거였다. 왜 그랬느냐는 담임의 물음에. 그 애는 " 재밋있을 것 같아서. " 라고 답했다.
그렇다고 해서 곤이에게 미안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랬거나 말거나, 가만히 뒀어도 어차피 윤이수가 일냈을 듯, 따위의 말들이 어깨너머로 본 아이들의 휴대폰 단톡방에 떠 있었다.

윤 교수의 얼굴은 며칠간 먹지 못한 듯 야위어 있었다. 벽에 몸을 기댄 그가 말라붙은 입술을 달싹였다.
- 난 태어나서 그 누구도 때린적이 없단다. 폭력으로 누군가르 저지하는 게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어.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두 번이나 이수에게 그랬단다. 그것 말고는 그 애를 막을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거든.
- 한 번은 피자 가게에서 였죠. 유리창 너머로 봤어요.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 피자집 주인과는 합의를 봤어.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고 일은 그럭저럭 마무리 됐지. 그날 그 애를 억지로 차에 태우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 안으로 들어올 때까지 우린 한마디로 하지 않았고 집에 도착해서도 마찬가지였지. 난 곧장 방으로 들어갔으니까.
윤 교수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 그 녀석이 돌아온 뒤로 많은 게 바뀌었단다. 아내의 죽음을 슬퍼할 틈도 주어지지 않았어. 아내는 다 같이 살게 될 날을 꿈꿨지. 하지만 나는 그애가 있는 집이 너무 불편했단다. 책을 읽으면서도 잠자리에 누워서도, 한시도 생각을 멈춘 적이 없다. 왜 저런 모습으로 컸을까. 그게 대체 누구의 잘못인 걸까 ... ...
교수는 한동안 심호흡을 하고 다시 말을 이었다.
- 안타깝고 슬픈 마음이 너무 커지다 보면 말이다. 그리고 거기에 딱히 답이 없을 땐 말이지. 사람들은 나쁜 생각을 하게 된단다. 나도 그랬거든. 차라리 저 녀석이 없었더라면 영영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자주 상상하곤 했다 ... ...
교수가 몸을 들썩이기 시작했다.
- 더 끔찍한 건 뭔지 아니 ... ... 애초에 낳지 않았다면, 처음부터 그 애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 그랬다면 모든 게 지금보다 나았을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는 거야. 그래 끔찍하게도 친아비가 아들에 대해 이런 생각을 했다. 오, 이런 말을 네 앞에서 하다니 믿을 수가 없구나 ... ...
눈물이 교수의 목을 타고 흘러 스웨터 안으로 굴러 들어갔다. 나중에는 울음 소리에 묻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따뜻한 코코아르 한 잔 타서 앞에 내밀었다.
- 너 이수랑 꽤 가까이 지냈다고 하더구나. 우리 집에도 한 번 찾아왔었다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지? 그런 일을 당하고도.
윤 교수가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단순한 답을 내 놓았다.
- 곤이는 착한 애니 까요.
- 그렇게 생각하니?
나는 알고 있다. 곤이가 착한 아이라는 걸. 하지만 구체적으로 곤이에 대해 말하라면 그 애가 나를 때리고 아프게 했다는 것, 나비를 찢어 놓았다는 것, 선생에게 패악질을 부리고 아이들에게 물건을 집어 던졌다는 것 밖에 말할 게 없다. 언어라는 건 그랬다. 이수와 곤이가 같은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거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 그냥, 알아요. 곤이는 좋은 애예요.
내 말에 윤 교수는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삼 초쯤 유지되다가 갑자기 무너졌다. 그가 또다시 울어 버렸기 때문이다.
- 고맙구나, 그렇게 생각해 줘서 말이야.
- 근데 왜 우세요?
-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던 게 미안해서. 그리고 그애를 착하다고 말해 주는 걸 고맙다고 생각하는 내 마음이 얼토당토 않아서 ... ...
윤 교수가 울음에 섞여 뭉개진 발음으로 더듬거렸다. 돌아가기 직전 마지막으로 그는 머뭇거리며 덧붙였다.
- 혹시나 이수에게 연락이 오면 전해 주겠니. 꼭 돌아오라고 ... ...
- 왜 그러길 바라세요?
- 어른씩이나 돼서 이런 말을 하려니 부끄럽지만 말이다. 그동안 너무 많은 일이 쉴새 없이 다가와서 하나씩 돌아보고 보듬지 못했다. 다시 시작해 볼 기회를 얻고 싶구나.
교수가 말했다.
- 네 그렇게 할 게요.
내가 약속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윤 교수는 곤이를 낳지 않는 쪽을 선텍했을까? 그랬더라면 그들 부부는 그 애를 잃어버리지 않았을 거다. 아줌마는 죄책감에 병이 걸리지도 않았을 거고, 회한 속에 죽지도 않았을 거다. 곤이가 저지른 골치 아픈 짓들도 애초에 일어나지 않았을 거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역시 곤이가 태어나지 않는 편이 맞는 것 같다. 왜냐하면, 무엇보다도 그 애가 아무런 고통도 상실도 느낄 필요가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것은 의미를 잃는다. 목적만 남는다. 앙상하게 .

새벽녘이 되도록 의식이 또렸했다. 곤이한테 해야 할 말이 있었다.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 했다. 네 엄마 앞에서 아들인 척 해서. 내게 다른 친구가 생긴 걸 말하지 않아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너는 안 그랬을 거라고, 나는 너를 믿는 다고 말해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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