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마켓

아몬드 -손원평 작 (21)

호수 | 2021.10.07 08:25:49 댓글: 0 조회: 59 추천: 0
분류연재소설 https://file.moyiza.kr/fiction/4311470

64.
곤이를 찾아야 했다. 그러려면 찐빵이라는 녀석부터 반나 봐야 할 것 같았다. 찐빵이 다니는 학교는 유흥가의 중심에 위치해 있었다. 어떻게 그런 곳에 학교를 지을 생각을 했는지 의아한 곳이었다. 학교를 짓고 나서 그런 환경이 조성 됐는지도 모르겠지만 여하튼 그랬다. 오후 햇살이 누렇게 늘어져 있었고 전혀 학생으로 보이지 않는 애들이 운종장 주변에서 담배를 피워 댔다.
학교 앞을 어슬렁거리던 애들 중 몇몇이 내 몸을 툭툭 건드렸다. 나는 찐빵을 보러 왔다고 했다. 곤이가 어디로 향했을지 몰어볼 만한 사람은 걔가 유일했다. 찐빵이라면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곤이를 반기고 손짓해 줄 만한 곳이 어디인지.
멀리서 찐빵이 천천히 걸어왔다. 마른 몸에 그림자는 더욱 쇠꼬챙이 같았다. 가까이서 보니 손과 발, 얼굴이 무척 커서 가지에 달린 열매처럼 느껴졌다. 찐빵이 고갯짓을 하자 그 애들이 내 옆구리를 번갈아 쿡쿡 찌르거나 주머니를 뒤졌다. 기대보다 내가 영양가가 없다는 걸 깨닫자 찐빵이 물었다.
- 이렇게 얌전하게 생긴 학생이 나한테 무슨 볼일일까?
- 곤이가 없어졌어. 너는 걔가 어디 있는지 알 것 같아서. 걱장은 하지마. 네가 무슨 말을 하든 어른들한테 알릴 생각은 없으니까.
예상 밖으로 찐빵은 어렵지 않게 답을 내놓았다.
- 철사 형.
찐빵은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좌우로 두어 번 꺾었다. 뚜둑, 하는 소리가 요란했다.
- 곤이 자식, 철사 형한테 찾아간 것 같더라, 미리 말하는데, 나랑은 아무 상관없는 거다, 나한테도 철사 형은 너무 버거운 존재라서, 이래 봬도 난 학생이잖냐.
찐빵은 몸을 틀어 자신이 메고 있는 배낭을 툭툭 쳐 보였다.
- 어디에 있는데?
철사라는 이름이 입에 붙지 않아 그렇게만 물었다. 찐빵이 뺨을 씰룩댔다.
- 가 보게? 별로 추천하고 싶진 않다만.
- 응.
짧게 답했다. 얘랑 노닥거릴 시간이 없었다. 찐빵은 잠깐 쯥쯥 소릴 내며 뜸을 들였다. 그러곤 여기서 멀지 않은 항구도시의 이름을 댔다.
- 거기 시장 골목 끄트머리에 오래된 구두 가게가 있어. 춤출 때 신는 구두를 파는 덴데 나도 가 본 적은 없어서 더는 모르겠다. 행운을 빈다. 아마 소용없겠지만.
찐빵은 손가락을 총 모양으로 만들어 내 머리에 빵, 쏘는 시늉을 하고 건들거리며 시야에서 사라졌다.

65.
곤이에게 찾아가기 전 도라가 들렀다. 한참 조용히 있더니 미안하다는 말로 입을 열었다.
- 걔가 너랑 친한 줄 몰랐어. 알았다면 그렇게 말하진 않았을 거야. 그래도, 누군가는 막아야 했어.
작게 시작한 목소리였지만 말이 끝날 때쯤에 힘이 실려 있었다.
- 정말 의문이다. 네가 어떻게 그런 애랑 친하게 지낸 건지 ... ...
도라가 중얼거렸다.
그런 애, 그래. 다들 그렇게 생각할 거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언젠가 심 박사에게 했던 얘기를 도라에게 들려줬다. 곤이에 대해 알게 되면 할멈과 엄마에게 일어난 일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고. 그렇게 해서랃 세상의 비밀을 한 가지쯤 알고 싶었다고.
- 그래서 알게 됐어?
고개를 저었다.
- 그 대신 다른 걸 얻었어.
- 뭔데.
- 곤이.
도라는 어깨를 으쓱하더는 고개를 저었다.
- 그런데 왜 네가 걔를 찾으러 가야 해?
마지막으로 그 애가 물었다.
- 그 앤 내 친구니까.
그게 내 답이었다.

66.
그곳의 바닷바람은 짜고 비릿한 내가 났다. 계절도 방향도 지워 버리는 냄새였다. 나는 바람에 내몰리듯이 시장 안으로 숨어들었다. 유명하다는 닭강정 가게 앞에 사람이 줄지어 서 있었다.
찐빵은 별로 훌륭한 안내자는 아니었다. 춤출 때 신는 신발을 파는 곳 따위는 물어봐도 찾을수가 없었다. 헤매고 헤매다가 미로 같은 골목에 들어섰다. 길이 어지럽게 엉켜 있었고 나는 그저 발길이 닿는 대로 몸을 옮겼다.
겨울의 어둠은 쉽게 찾아왔다. 어둑해지나 싶더니 곧 한방중이 된 것처럼 주위가 온통 새까맸다.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원가가 삐꺽대는 소리 같기도 했고 갓 태어난 강아지의 울음 소리 같기도 했다. 그 사이로 몇 개의 음성과 웃음 소리가 섞여 있었다. 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어두운 건물의 입구가 반쯤 열려 있는게 보였다. 허술한 철제문이 건들거리며 바람곁에 움직였다. 시시덕거리는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갑자기 묘한 기운이 몸을 타고 흘렀다. 그것의 정체가 뭔지. 그걸 뜻하는 단어가 뭔지 기억하려 애썼다. 전에도 본 것 같은 풍경이었다. 하지만 그 단어를 쉽게 떠올릴 수 없었다.
그때였다. 끼익하고 문이 열리더니 한 무리의 아이들이 우르르 나왔다. 나는 급히 벽에 붙어 몸을 숨겼다. 내 또래이거나 나보다 두세살 가량 많아 보이는 아이들이 낄낄대며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또다시 익숙한 기운이 엄습했다. 문뜩 입구에 놓여 있는 뾰족한 구두 한 짝이 눈에 들어왔다. 금빛 가루가 곱게 뿌려진 화려한 구두였다. 가까이 다가가 구두를 뒤집자 밑창이 부드러운 가죽으로 덧대어진게 보였다. 라틴 댄스를 출 때 신는 신발 같았다. 신발이 방향을 알려 주듯, 그 아래로 계단의 끄트머리엔 박스가 잔뜩 쌓여 있었고 그 뒤로 육중한 철제문이 또 하나 있었다.
문 앞으로 다가섰다. 기다란 철 막대가 흠 안에 걸려 있었다. 내 쪽에서 열수 있게 되어 있었지만 녹이 슬어 빼내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간신히 막대를 빼고 문을 밀었다. 너저분한 풍경이 펼쳐졌다. 더럽고 낡은 방 안에 이런저런 물건들이 두서없이 쌓여 있었다. 모종의 비밀스러운 아지트 같은 느낌이었지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는 짐작하기 힘들었다.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우리의 눈이 마주쳤다. 곤이가 무릎을 껴안은 채 바닥에 웅크리고 있었다. 작고 초라한 곤이가. 그렇게 혼자, 더 남루해진 모습으로 기시감, 내가 찾고 있던 단어는 그거였다. 머리속에 [ 가족오락관] 이 스쳐 지나갔다. 가게 아저씨의 절규. 길을 잃었던 어린 나. 경찰서에 들이닥친 엄마가 나를 끌어안던 순간. 그리고 시간을 건너뛰어, 두 여자가 내 눈앞에서 쓰러지던 모습까지도 ... ...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은 그런 걸 떠 올릴 때가 아니다. 내 눈앞에 있는 건 죽어 버린 슈퍼 아저씨의 아들이 아니라 아직 살아 잇는 곤이였으니까.

67.
곤이가 눈을 치켜떴다. 내가 나타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테니 단연하다. 그 애는 거친 목소리로 간신히 말했다.
- 여기까지 왜 왔어. 어떻게 온 거야. 젠장 ... ...
무슨 일인지 곤이의 얼굴은 멍으로 가득했고 곳곳에 상처 자국이 나 있었다. 안색이 파리했다.
- 찐빵한테 갔었어. 미리 알려 두지만 다른 사람한테 말 안 했다. 너희 아빠도 포함해서.
아빠, 라는 단어를 끝맺기도 전에 곤이가 옆에 있던 빈 음료캔을 집어 던졌다. 캔이 허공을 날아가 먼지 쌓은 바닥을 치곤 몇 바퀴 돌았다.
- 너야 말로 어떻게 된거야. 경찰에 신고부터 하자.
- 경찰? 진짜 웃기는 놈이다 너. 존나 집요한 짭새 나셨어. 그렇게 말하더니 곤이가 괴상한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배에 손을 대고 고개와 허리를 뒤로 젖히는, 쓸데없이 요란한 웃음이 었다. 이런다고 고마워 할 줄 알았냐. 따위의 말을 하면서, 나는 그 웃음을 끊었다.
- 그렇게 웃지마. 안 어울려. 웃는 것 같지도 않고.
- 이젠 내가 너한테 어떻게 웃는지 까지 명령질 받아야 되냐?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있고 싶은 데 있겠다는데 왜 여기까지 와서 참견이냐고, 미친놈아, 네가 뭔데? 어, 대체 네가 뭔데 ... ...
곤이의 고함이 잦아들고 있었다. 나는 곤이의 몸이 약하게 떨리는 걸 말없이 바라보았다. 며칠 새 곤이의 얼굴이 많이 변했다. 거칠게 일어난 피부에 검은 그늘이 내려 앉았다. 무언가가 그애를 많이 바꾸어 버렸다.
- 집에 가자.
- 웃기시네. 멋 부리지 마. 잡소리 말고 좋은 말 할 때 꺼져, 더 좆되기 전에 꺼지라고.
곤이가 으르렁 댔다.
- 여기서 뭐 하게. 이런 꼴을 당하고도 여기서 견디는 게 강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건 강한게 아니고 그냥 센 척하는거야
- 아는 척 하지마, 병신아, 네깟 게 뭘 안다고 지랄이야.
곤이가 소리쳤다. 하지만 웬일인지 그 애의 눈은 얼어붙고 있었다. 희미하게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빠른 속도로 가까워져 어느새 문 앞까지 도착했다.
- 빨리 꺼지라고 했잖아.
곤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어서, 그가 들어왔다.

68.
사람이 아니라 거대한 그림자 같았다. 보기에 따라 20대 로도 , 30대 중반을 넘은 것으로도 여겨질 만한 외모였다. 허름하고 두툼한 잠바에 황토색 코르젠 바지를 입고 벙거지 모재를 눌러썼다. 마스크를 하고 있어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희한한 옷차림이었다. 그가 바로 철사였다.
- 누구.
철사가 곤이에게 물었다. 뱀이 말을 한다면 그런 목소리일 것 같았다. 곤이는 입술을 깨물었고 내가 대신 대답했다.
- 친구예요.
철사의 눈썹이 위로 솟았다. 이마에 가로줄이 두세 개쯤 생겨났다.
- 친구가 여길 어떻게 알고 아니, 그보다도 왜 온거지?
- 곤이를 데려가려고요.
철사는 삐걱대는 의자에 천천히 앉았다. 그이 기다란 그림자고 함께 반으로 접혔다.
- 뭔가 착각하고 있는 거 아니야? 네가 무슨 영웅이라도 된다는 착각.
그가 낮게 이죽거렸다. 내용을 주의 깊게 듣지 않으면 언뜻 호의적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을, 부드러운 말투였다.
- 곤이는 아빠가 있어요. 집을 가야해요.
- 닥쳐
곤이가 내게 일갈하더니 철사에게 몇 마디를 건넸다. 철사는 몇차례 고개를 까딱거렸다.
- 아, 네가 그 아이구나. 곤이에게 들은 기억이 있어. 그런 병이 있는지 없는지 나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네 표정에 별 변화가 없다 싶었다. 날 본 사람들은 보통 너같이 반응 하지는 않거든.






추천 (0) 선물 (0명)
IP: ♡.179.♡.193
22,506 개의 글이 있습니다.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조회
호수
2021-10-07
0
89
호수
2021-10-07
0
50
호수
2021-10-07
0
59
호수
2021-10-07
0
123
호수
2021-10-01
0
75
호수
2021-10-01
0
61
호수
2021-09-30
0
64
호수
2021-09-29
0
68
호수
2021-09-29
0
63
호수
2021-09-27
0
98
호수
2021-09-27
0
89
호수
2021-09-17
0
110
호수
2021-09-17
0
81
호수
2021-09-16
0
104
호수
2021-09-16
0
103
호수
2021-09-16
0
114
호수
2021-09-15
0
110
호수
2021-09-14
0
82
호수
2021-09-14
0
85
호수
2021-09-13
0
95
호수
2021-09-13
0
112
호수
2021-09-11
0
139
호수
2021-09-11
1
239
조선의거상
2021-08-09
0
261
조선의거상
2021-08-08
0
287
조선의거상
2021-08-08
0
183
조선의거상
2021-08-08
0
226
제주소설가
2020-11-26
1
1353
제주소설가
2020-09-16
3
1333
금빛봄
2020-06-16
4
2165
모이자 모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