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마켓

碧血剑 1-3

3학년2반 | 2022.01.14 08:06:08 댓글: 0 조회: 24 추천: 0
분류무협소설 https://file.moyiza.kr/fiction/4342209

* 제 1 권 *

- 3 - 사부와 사부의 친구

안부인과 원승지는 내실로 들어가 침대에 나란히 걸터앉았다.
[승지야, 나는 너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네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내 친아들과 다름없이 대했지. 그런데 오늘 네가 생명을 돌보지 않고 소혜를 구했다 하니 나는 영원히 너를 잊을 수 없을 거야. 그런데 오늘 밤 나는 아주 먼 곳으로 가야만 한단다. 그러니 너는 벙어리 백부님을 따라가거라.] 원승지는 어느새 울먹였다.
[싫어요. 나는 숙모님과 함께 가겠어요!]
안부인은 미소를 지으면서 달랬다.
[나도 너하고 헤어지는 건 서운하구나. 그래서 벙어리 백부님더러 널 데리고 어떤 사람에게로 가라고 했다. 그 사람은 최숙부의 사부님이시다. 최숙부는 그 사람에게 두 달 동안 무예를 배웠을 뿐인데도 그렇듯 훌륭하시단다. 그 노인의 무공은 천하에 둘도 없다니, 나는 네가 그분에게 가서 배우기를 바란단다.]
원승지는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그는 평생을 통해 두 명의 전정한 제자를 받아들였는데, 그것도 아주 오래된 일이라 그가 다시 제자를 받으려고 할지 어떨지는 나도 걱정이다. 그러나 넌 자격이 충분한데다 마음씨도 고우니, 내 생각으로는 그 역시 널 분명히 좋아할 것이다. 벙어리 백부님은 그의 종복이란다. 내가 그에게 부탁해서 널 데리고 가 그에게 청해 보라고 했으니 그리 알고, 만약 그가 너를 받아들이기를 진실로 원하지 않는다면, 그땐 벙어리 백부님이 널 다시 내게로 데리고 올 것이야.]
원승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부인은 한 번 더 다짐했다.
[그 노인은 성질이 괴해서, 네가 말을 듣지 않으면 아주 싫어할 것이다. 그렇다고 또 너무 말을 잘 들으면 어리석고 기개가 없다고 탓할 것이니, 너의 행동에 맡기는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녀는 팔목에서 금팔지 하나를 빼어 원승지의 팔에 걸어 주었다.
[네가 무공을 다 배우고 어른이 되어도 나와 소혜 동생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원승지는 숙연히 고개를 들었다.
[저 역시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만약 그 노인이 저를 받아들이면, 안숙모님께서는 틈이 나시는 대로 소혜 동생을 데리고 와서 지켜보세요.] 안부인은 눈두덩이가 붉어져 있었다.
[그래, 내 언제라도 널 기억하고 있으마.]
안부인은 한 통의 편지를 써서 벙어리에게 주며 노인에게 전해 올리라고 했다. 네 사람은 집을 나서서 그 길로 각기 헤어졌다.
원승지는 안부인과 소혜와 더불어 지낸 날이 비록 길지는 않았다고 하나 두 모녀가 그를 대해 준 지극한 정성과, 대낮의 싸움으로 생사의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고 난 터라, 헤어질 때는 모두가 서운하고 주춤거렸다.
벙어리는 원승지가 상처를 입고 피를 많이 흘린데다 몸이 쇠약해진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팔에 안고 축지법(縮地法)을 써서 나는 듯이 빠른 속도로 걸어갔다. 새벽에 길을 나서서 밤에 숙박하는 식으로, 계속 북쪽으로 북쪽으로 1개월 여를 갔다. 원승지의 상처는 이미 나아 있었다. 왼쪽 눈썹 위에 조그마한 상처를 남긴 채 매일 저녁 벙어리는 먹는 것에 관해서는 어떤 의견도 없이 가져오는 대로 잘도 먹었다. 한끼에 적어도 두 서너 그릇을 먹어 치웠다. 원승지는 손짓으로 우리가 지금 어느 곳으로 가는 것이냐고 물었으나, 그는 턱으로 북쪽만 가리켰다. 또 며칠이 더 가니 깊숙한 산이었다. 걸을수록 더욱 높아져서 나중에는 걸어갈 길조차 없었다. 벙어리는 맨손으로 칡뿌리를 의지하여 높은 산으로 올라갔다. 원승지의 목을 부여잡을 채로.
산세가 어찌나 험준한지, 두 손으로 목숨을 걸고 거머잡아도 한 번 실수하면 뼈도 못 추릴 것만 같았다.
이렇게 등산한지 하루만에 그들은 높은 봉우리에 올라섰다. 봉우리는 하나의 커다란 평지로, 주위에는 소나무가 우뚝우뚝 서 있고, 소나무를 지나고 보니, 눈 앞에는 대여섯간의 돌집 하나가 나타났다. 벙어리는 만면에 웃음을 지었는데, 마치 객이 오랫동안 떠돌아다니다가 고향에 돌아온 모습이었다. 그는 원승지의 손을 이끌고 돌집으로 들어갔다. 실내에는 거미줄이 얽혀 있고 온통 먼지투성이어서 꽤 오랫동안 아무도 살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그는 대빗자루를 찾아내어 안팎으로 깨끗하게 치우고 물을 끓여서 밥까지 했다. 이 험준한 봉우리에 어떻게 식량과 용구가 비치되어 있는지 정말 모를 일이었다. 사흘이 지나자 원승지는 속마음이 급해졌다. 그래서 손짓으로, 사부는 어디에 계시느냐고 물었다. 벙어리는 산 아래를 가리키었다. 원승지는 아래로 내려가겠노라는 뜻을 알렸다. 벙어리는 안된다고 머리를 내저었다. 원승지는 어쩔 수 없이 주저앉고 말았다. 벙어리와는 말이 통하지 않는데다가 험난한 봉우리 위에 외로운 돌집에서의 생활이고 보니 적적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그의 마음은 안부인 모녀와 함께 지내던 따뜻했던 시절로 달려가고 있었다. 날개를 달고 그곳으로 날아갈 수 없는 것이 한스러웠다.
어느 날 저녁이었다. 꿈결처럼 돌연 불빛이 눈을 찌르기에 눈을 비비고 일어나 앉으니, 한 노인이 손에 촛불을 들고 침대 앞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 노인의 머리와 눈썹은 온통 하얗지만 만면에는 붉은 빛이 감돌았고, 소리 없이 웃는 얼굴로 찬찬히 자기를 살펴보고 있었다. 원승지는 얼른 바닥으로 내려와서 그를 향해 네 번 큰 절을 하였다.
[사부님, 오셨군요!]
그러자 노인은 껄껄 호탕하게 웃었다.
[네 이 녀석, 누가 널더러 날 사부라 부르라고 하더냐? 어떻게 내가 너를 제자로 받아들일 것을 아느냐?]
원승지는 그의 말씨로 보아, 그가 자기를 받아들이려 한다는 것을 알고는 몹시 기뻐서 말했다.
[안부인께서 그렇게 일러 주셨습니다.]
[안부인이 나를 귀찮게 하는구나. 좋다, 네 돌아가신 아버지와의 정리(情理)를 생각해서 너를 받아들이겠다!]
원승지는 다시 한 번 더 큰 절을 올리려 했다.
[됐다, 됐어. 내일 다시 얘기하도록 하자!]
다음날 새벽, 날이 밝기도 전에 원승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벙어리 는 노인이 그를 받아들이기로 허락한 것을 알고는 기뻐서 그를 공중으로 던졌다가 다시 손에 받기를 네다섯 차례나 계속했다. 그 노인은 원승지의 기쁜 웃음소리를 듣고는 방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좋다! 어린 나이에 벌써 의협적인 행동을 할 줄이야. 부녀자를 구했다구? 정말 놀라운 일이다. 네가 가진 특기가 있으면 내게 좀 보여주기 바란다.] 그 말을 들은 원승지는 귀까지 빨개지며 몹시 부끄러워했다.
노인은 나직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에게 너의 무공을 보여주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너를 가르치겠느냐?] 원승지는 비로소 사부께서 자기를 놀리려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최추산에게 전수 받은 복호장법(伏虎掌法)을 처음부터 끝까지 연마해 보았다. 그 노인은 한편으로는 보면서 한편으로는 미소했다. 그리고 연습이 끝나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추산이 네가 총명하다고 자랑을 해도 난 믿지 않았는데, 단 며칠을 배우고도 이만한 성과가 있었다니 확실히 훌륭하구나!]
원승지는 최추산의 이름을 듣자 그의 안전을 묻고 싶었으나 노인이 아직도 말을 하고 있어서 감히 그의 말을 가로막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노인이 말을 멈추자 급히 물었다.
[최숙부는 어디에 계십니까? 그는 안전합니까?]
[그는 잘 있다. 이츰장군에게로 돌아가서 싸우고 있다.] 원승지는 그 말을 듣자 매우 흡족했다. 벙어리가 향불을 놓아두는 상을 깔았다. 노인이 한 폭의 그림을 꺼냈는데, 중년서생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기품이 넘쳐 보였다. 노인은 향불을 켜고 그림을 향해 경건하게 절을 하고, 원승지에게 말했다.
[이분은 우리 화산파(華山派)의 시조이시다. 너도 와서 절을 올려라.] 원승지는 화중(畵中)의 인물을 살펴보고는 혼자 소리로 말했다.
[이분은 우리 사부님보다 훨씬 젊으신데, 어떻게 시조가 되시지?] 그는 절을 하려하니 몇 번을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많이 할수록 좋을 것 같아서 노인이 웃으며 그만 하라고 할 때까지 계속 절을 했다. 또 무릎을 꿇고 다시 절을 하려하니 이로써 이제 정식으로 사부에게 예를 올리는 것이었다. 노인은 미소지으며 예를 받았다.
[오늘 이후로 너는 우리 화산파의 제자가 되는 것이다. 나는 오래 전에 단 두 명의 제자를 받아들였는데, 그 이후로는 총명하고 무공을 배우려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여 이 몇 년 동안 전수할 사람이 없었다. 너는 나의 세 번째 제자이자 마지막 제자이다. 너는 부디 잘 배우고 연마해서 날 망신시키지 말아다오.]
원승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이 말했다.
[나의 성은 목(穆)이고 이름은 인청(人淸)이라고 한다. 세상의 친구들은 나를 신검선원(神劍仙遠)이라고 부르니, 기억해 두어라. 후에 사람들이 네 사부의 이름이 무어냐고 물으면, 모른다고 하지 말고.......] 원승지는 <하!>하고 웃으며, 속으로는 안부인이 그의 성격이 괴하다고 한 것이 떠올렸다. 마음속에는 두려움이 있었으나 사실은 그가 몹시 친절하고 온화한 것을 알아내고는 혼자 웃은 것이었다.
신원선검 목인청은 무공이 높아서 당대에 제일인자라 알려졌고, 세상에서 의협적인 행동만을 해 온 탓으로, 근 20년이래 적수를 만나지 못했었다. 그리고 모든 행동의 대부분을 비밀리에 행하고 이름을 남기지 않았으므로, 타인들은 그의 무공을 배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의 명성은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다. 그의 성격이 본래는 몹시 괴하였으나, 이번에 원승지의 외로운 모습을 보고는 측은한 생각이 들고, 그 아버지 원숭환이 조국을 위해 적을 토벌하다 억울하게 죽은 대충신임을 참작, 특별히 그를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목인청은 자식이 없어 검 하나만 가지고 홀로 세상을 떠돌았는데, 노년에 이르러 총명하고 활기찬 소년을 대하니, 마음이 흡족하여 원승지가 훌륭한 사부를 만난 기쁨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는 저절로 흥분이 되었던 것이다.
목인청이 다시 입을 열었다.
[너의 두 분 사형은 모두 너보다 이삼십 세나 위이니, 그들의 제자 역시 다들 너보다 나이가 많을 것이다. 그들이 혹시 나를 탓하여 이제와서 어린 사제를 그들에게 남긴다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니 만일 네가 부지런히 배우지 않으면, 그들의 제자와 비교하여 나 보고 늙은 망령이라고 책할지 모른다.] 원승지가 말했다.
[저는 기필코 부지런히 무공을 닦을 것입니다.]
[최숙부 역시 사부님의 제자였습니까?]
목인청은 눈을 멀리 들었다.
[그는 츰왕과 싸우려고 했기 때문에 나에게서 배울 시간이 없었다. 나는 그에게 복호장법만을 전해 주었으니, 제자라고 할 수 없다. 또 그는 자격면에서도 나의 제자가 될 수 없다.]
그는 벙어리를 가리키며 뒤를 이었다.
[그처럼 매일보고 또 보아, 적지 않은 기예를 익혔다 해도 나의 두 제자와 비교하면 천양지차이다.]
원승지는 벙어리의 손놀림을 두 차례 보고는, 그 빠르기가 번개같아 속으로 감탄해 마지않고 있었는데, 사부의 말을 들으니 자기의 두 사형은 그보다 무공이 훨씬 높다니, 자신이 노력하여 배우면 설사 사형들만큼은 못된다 하여도 적어도 벙어리 정도는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몹시 기뻤다.
목인청이 계속 말을 했다.
[우리 화산파에는 여러 가지 규율이 있는데, 그건 지금 네게 얘기해도 모를 것이다. 나는 너에게 단 두 가지만 부탁할 것이다. 나의 말을 잘 들을 것이고, 또 나쁜 일을 하지 말아라. 꼭 기억해 두거라.]
원승지가 대답했다.
[반드시 사부님의 말씀을 따르고 또 나쁜일은 하지도 않겠습니다.] [좋다! 이제 우리는 무공을 훈련하자. 네 최숙부가 시간이 촉박하여 너에게 복호장법을 한데 묶어서 전수하였다. 그러나 이 장법은 굉장히 오묘하고 복잡하다. 너는 나이가 어리니 다 배운다 해도 잘 사용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우선 너에게 장권십단금(長拳十段錦)을 가르쳐 주겠다.] [그건 저도 할 수 있습니다. 숙부께서 전에 가르쳐 주셨습니다.] [할 수 있다고? 몇 가지 자세를 배운 것을 배웠다고 할 수 있겠느냐. 네가 만일 정말로 장권십단금의 오묘한 이치를 이해했다면, 세상에서 너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원승지는 얼굴이 빨개져서 다시 더 얘기를 하지 못했다. 목인청은 자세를 갖추고 십단금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원승지는 속으로 신기하게 생각하며 자기가 생각한 것과 이렇게 다를 수 있는가를 의아하게 생각했다.
[너는 사부가 너를 속인하고 생각하겠지? 자, 이제부터 네가 나의 옷을 잡아 보아라. 만약 내 옷자락이 조금이라도 잡히면 네가 훌륭한 것으로 치겠다.] 원승지는 감히 사부의 말에 답변을 하지 못하고 그냥 웃으면서 서 있기만 했다.
목인청이 외쳤다.
[빨리 해라! 이것은 내가 너에게 무공을 가르치는 것이다!] 원승지는 이것이 무공을 가르치는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서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손을 내밀어 사부의 장삼 뒷자락을 잡으려고 했다. 눈에는 곧 잡힐 것 같았는데, 옷자락이 갑자기 줄어들더니 손끝에서 세 자 가량이나 떨어져 있었다. 원승지는 또 손을 내밀어 몇 자 깊이 들어갔다. 그래서 막 옷자락을 잡으려고 할 때였다. 사부가 홀연히 보이지 않고 그의 머리 뒷면만 가볍게 잡혔다. 목인청이 껄껄 웃었다.
[나는 여기 있다.]
원승지는 얼른 몸을 돌려 두 손으로 잡으려고 했다. 사부의 그림자는 또 다시 보이지 않았다. 다시 급히 몸을 돌렸으나, 이번에는 사부님이 이미 두 길이나 먼 곳에 있었다. 그는 몹시 흥미가 있어서 마음속으로 외쳤다.
[꼭 잡고야 말겠어!]
앞으로 가서 그의 소맷자락을 잡았다. 목인청의 소맷자락이 조금 흔들리더니 몸이 손에 닿았다. 원승지는 막 웃으면서 쫓아가서 몸을 돌렸는데 갑자기 벙어리가 손짓으로 그에게 주의하라고 일렀다. 원승지가 마음이 철렁하며 속으로 생각하기를, 사부가 하는 것은 과연 십단금(十段錦)신법이로구나.... 어떻게 그리 빨리 움직일 수 있을까, 했다. 한편으로는 사부의 신법을 주시했다.
그가 연마한 십단금은 매우 숙련되어 있었고 사부의 진퇴법은 특별히 오묘해서 같은 일초일석인데도 사부가 행하니까 더욱 오묘했다. 원승지는 쫓아가면서 몰래 그 비밀을 배우고자 마음먹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사부를 쫓아가는 중에, 어느덧 사부의 종횡이동술을 배울 수 있게 되었다. 과연 오르고 내릴 때의 속도가 굉장히 빨랐다. 목인청은 암암리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 아이는 가르칠 만하다고 몹시 기뻐했다. 이때 원승지가 바싹 쫓아왔으므로 목인청도 급히 피했다. 두 사람의 쫓고 쫓김이 질풍 같아서 넓은 광장에는 두 사람의 그림자만이 보였다. 원승지는 전신을 집중하여 사부를 쫓았다. 갑자기 목인청이 <하하하!> 하고 크게 웃는가 했더니 어느새 한 손에 그를 품고 서 있는 것이었다.
[훌륭한 제자로구나.]
원승지는 이 십단금을 보는 중에 많은 오묘한 것이 있음을 알고는 저절로 놀라고 기뻐했다.
목인청 다시 말했다.
[됐다. 이것은 이미 네가 충분히 연습을 한 것이다.] 그를 아래로 내려놓고, 몇 번 반복하게 하고는 자기는 실내로 들어갔다. 원승지는 이 권법을 처음부터 끝까지 십여 차례나 연습을 했다. 사부의 신법을 암기하는 이외에 또 스스로 몇 가지 묘기를 생각해 내었다. 그는 꿈속에서도 권법을 연습하였다. 다음 날 새벽엔 어제 배운 것을 잊지나 않았을까 걱정이 되어 광장으로 가서 또 연습을 했다. 연습할수록 기운이 났다. 그때 갑자기 등뒤에서 기침 소리가 들렸다. 뒤돌아보니 사부가 웃으면서 그를 지켜보고 서 있었다.
[사부님!]
원승지는 손을 마주 모으며 자세를 바로 잡았다.
[네 스스로 개발한 몇 가지 초식도 훌륭하구나. 그러나 이 초식은 빠르긴 하지만 하단에 틈이 보인다. 적이 무공이 뛰어나 발을 이렇게 걸으면 너는 큰일이다. 그러니 이렇게 해야 한다.]
사부는 바른 자세를 그에게 가르쳤다. 원승지는 몹시 감복을 했다. 이 하룻동안에도 적지 않은 무예를 배웠다. 그렇게 삼 년이 지났다. 원승지도 어느덧 13살이 되었다. 그 삼년 동안, 목인청은 원승지에게 파옥권(破玉拳)과 혼원장(混元掌)을 전수했다. 혼원장은 장법이면서도 내공을 사용하는 것을 연습해야만 했다. 각파가 내공을 연습하는데, 모두 호흡을 중시하여 앉아서 기를 연마했고, 화산파의 내공은 다른 방법을 써서 장법 중에 내공을 연습했다. 이러한 무공은 비록 오랜 시간을 필요로 했으나 그 효과가 아주 컸다. 무예를 익히자 위력 또한 추가되었다. 내외공을 함께 연습하였기 때문에 적을 만났을 때, 일초일식 중에 자연히 합쳐지는 내공력으로 적을 보다 쉽게 제압할 수 있었다.
혼원공을 이룬 뒤엔 어느 장법에도 불리함이 없었고 또 꺾임이 없었다. 원승지가 무예를 연마한 시간이 어느 만큼 흐르자 혼원공이 이루어졌다. 그러는 사이 몸은 더욱 강건해졌고 백 명이 침입해도 문제없을 수준에 이르렀다. 목인청은 문득 하산하여, 한 번 가면 2, 3개월 또는 3, 4개월이나 걸리기도 했다.
또 돌아와서는 무공을 점검하고 그가 부지런히 연마했는가를 시험해 보았다.
속도가 아주 빠르고 정확해서 시험할 때마다 모두 칭찬을 들었다.
그해 단오절이었다.
웅황주(雄黃酒)를 마시던 목인청이 시조의 화상을 꺼내어 놓았다. 자신부터 우선 절을 하더니 원승지에게도 절을 하도록 했다.
[오늘 너에게 시조에게 예를 올리는 것을 가르치겠다. 너는 그 이유를 아느냐?]
[사부님께서 일러주십시오]
목인청은 내실에서 하나의 긴 나무상자를 들고와서 상 위에다 올려놓았다.
뚜껑을 여니, 밝은 빛이 눈을 찔렀다. 상자 안에는 번쩍이는 세 척 장검이 놓여 있었다. 원승지는 사뭇 가슴이 뛰었다.
[사부님, 저에게 검술을 가르쳐 주시렵니까?]
목인청은 고개를 끄덕이며 상자에서 장검을 꺼내었다. 안색이 매우 굳어져 있었다.
[무릎을 꿇고 내 말을 들어라]
원승지가 그 말에 따라 무릎을 꿇었다.
목인청은 다시 말했다.
[검은 백병(百兵)의 시조이다. 가장 배우기 어려운 것이다. 우리 파의 검법은 넓고 심오하다. 시조 때부터 내려오는 검법에 매 일대(一代)가 증보를 했다. 다른 파의 무공은 내가 살펴보니, 일대가 전대에 미치지 못하였고 또 전수되면서 점점 그 정묘한 기예가 점차 적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 파는 그렇지 않고, 제자를 선택할 때 몹시 엄격하고 선택한 후에도 우열을 가려서 전수하였다. 검법으로 말하자면 내 일대가 청출어람(靑出於藍)이었다. 너는 총명하고 부지런하니, 검술을 배우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모든 희망을 너에게 거는 바이니, 이후로 더욱 명예를 빛내거라. 꼭 기억해야 할 것은 검은 이기(利器)이니 선을 행하면 선이 무궁할 것이요, 악을 행하면 그 악 또한 무궁할 것이다. 오늘 나는 너에게 꼭 하나의 맹세를 권하겠다. 일생 동안 절대로, 절대로 한 명이라도 무고한 사람을 살생하지 말아라.] [사부님이 제게 검법을 가르쳐 주시는 것만도 고마우신데 어찌 말씀을 어기겠습니까? 만일, 이후에 제가 한 명이라도 무고한 사람을 해친다면 저 역시 살해당할 것입니다.]
[좋다. 자, 그럼 일어나거라!]
원승지는 비로서 일어나 앉았다.
[나 역시 너의 마음이 온후하여 결코 고의로 무고한 사람을 해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옳고 그름을 따지면, 어떤 때는 몹시 판별하기 어려운 때도 있느니라. 세상의 인심 또한 교묘해서, 좋은 사람이 악인이 될 수도 있고 악인 역시 근본은 좋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다만 네가 관용하는 마음만을 가지고 있다면 잘못을 범하지 않을 것이다.]
원승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목인청이 또 이었다.
[숭정황제가 너의 아버지를 죽였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네 아버지가 나쁜 사람이라고 알고 있느니라. 그러기에 그는 자신이 네 아버지를 살해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것이 큰 잘못이다. 숭정황제는 이 몇 년 사이에 많은 대신과 대장을 죽였다. 어떤 사람은 정말로 나쁜 사람이지만, 좋은 사람도 그에게 죽음을 당했다. 옳고 그름의 기준이 바르지 않게 죽음을 당했다. 옳고 그름의 기준이 바르지 않고 관용의 마음 또한 없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였던 거다.]
원승지는 침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목인청은 왼손으로 칼집을 잡고는 오른손으로 검을 빼내었다. 검은 용처럼 꿈틀대는 듯하였다. 흰빛 같기도 하고 붉은 듯하기도 하였다.
천하에 둘도 없는 검법이 시작되었다. 햇빛 아래서 번쩍이는 장검은 춤을 추는 듯 움직였다. 흰빛만이 번뜩였다. 원승지는 사부에게서 삼년 동안에 걸쳐 검법을 익혔다. 안광이 이미 이전과는 크게 달라 있었다. 그러나 아직은 사부의 검법, 신법을 판단하기에는 부족했다. 아직은 사부의 동작에 비해 빠르기 조차 비교할 수 없었다. 춤을 추는 듯이 멈추어 목인청의 <아!> 하는 구령 소리와 함께 장검은 날아올랐다. 검은 산봉우리가 있는 한 그루의 큰 소나무에 가서 박혔다. 원승지는 소나무가 있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사부의 무검(舞劍)에 넋을 놓고 있다가, 검신이 예고 없이 날아가 솔방울을 맞추고 박히는 것을 보고는, 놀랍고 기이함에 벌린 입을 다물 줄 몰랐다. 그때였다.
[훌륭하다!]
그 뒤에서 그런 소리가 났던 것이다. 원승지는 산상에서 지낸 삼년 동안, 사부의 목소리 이외에는 다른 누구의 목소리도 들은 적이 없었다. 벙어리가 있다고는 하나, 그는 없는 사람이나 같았기 때문이다. 급히 고개를 돌려보니, 한 노인이 웃으면서 이쪽으로 걸어 올라 오는 것이 보였다. 그는 황색의 남루한 도포를 입고 입었다. 얼굴이 누렇게 말라 있었으며 머리카락 또한 희뜩희뜩 백발에 가까웠다. 뒤에는 한 명의 동자가 따르고 있었다.
그는 큰 소리로 외쳤다.
[이 일초식은 천외비룡(天外飛龍)이지? 세상에서 다른 사람은 할 수 없는 것인데, 내가 오늘 보니 그간 네가 검 쓰는 것을 못 본 십년 동안 이렇게 진보해을 줄은 상상 못했다.]
목인청이 <하하> 하고 크게 웃으며 대답했다.
[무슨 바람이 불어 오셨소. 이거 화산에 오르자마자 나에게 과분한 말만 해대는구먼. 승지야, 이분은 목상도장(木桑道長)이신데 나의 좋은 친구니라. 어서 도장에게 절을 올리거라.]
원승지는 급히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 목상도인이 웃으며 말했다.
[됐다.]
그는 손을 뻗어 원승지를 잡아 일으켰다. 무공을 배우는 사람은 외부의 힘을 받으면 저절로 저항을 하게 된다. 목상도인이 자기를 저지하자 원승지는 자기도 모르게 가벼운 저항을 했다. 이때 혼원공이 이미 어느 정도 이루어졌기 때문이리라. 목상도인은 이미 그의 무공을 알아보았던지 목인청에게, [이 몇 년동안 너를 볼 수 없다 했더니, 이렇게 몰래 숨어서 제자를 키우고 있었구나. 그러고 보면 네 운도 과히 나쁘지는 않아. 이제 곧 관(棺)속에 들어갈 사람이 이렇게 훌륭한 제자를 찾아낸 걸 보면.......] 목인청은 빙긋 웃었다. 자기의 어린 제자를 칭찬하는 것을 듣자 마음이 기뻤던 것이다.
목상도인이 또 입을 열었다.
[오늘 내게는 아무것도 없으니 너의 절을 받고도 공치사만 하고 마는구나.] 목인청은 침묵을 지켰다.
(이 노도인이야말로 무공이 천하에 제일로서, 강호에서는 <천변만겁(千變萬劫)>이라고 부른다. 만약 승지에게 무예를 전수해 줄 수만 있다면 그에게 도움이 적지 않으리라. 다만 이 노인이 제자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으니 방법을 강구해서 그를 설득해 보기로 하자.)
그는 이렇게 마음먹고 입을 열었다.
[승지야, 도장이 너에게 무공을 가르쳐 주신다니 얼른 절하고 인사를 드려라.]
원승지는 사부가 이렇게 권하는 것을 듣고 곧 무릎을 꿇고 절을 올렸다. 목상도인이 껄껄 웃었다.
[좋다! 그 사부에 그 제자로구나. 사부가 체면 없이 뻔뻔스러우니 제자도 알아볼 조다. 얘야, 내 말을 들어라. 사람은 언제나 정정당당해야 하는 것이다.
너의 사부처럼 이렇게 뻔뻔스러워선 안된다. 나까지도 너를 속여서야 되겠느냐? 그럼 이렇게 하자. 오늘은 내가 몹시 기쁘니 너에게 이것을 주마.] 그는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어 그에게 주었다. 원승지는 인사를 하고 공손하게 두 손으로 그것을 받아서 살펴보았다. 검은색의 조끼였다. 손에 들고 보니 묵직하였다. 실로 만든 것도 아니고 가죽으로 만든 것도 아니었다. 무엇으로 만든 것인지 알 수 없어서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목인청이 덧붙였다.
[도형(道兄), 장난은 하지 마십시오. 이런 보물을 어떻게 그에게 줄 수 있겠습니까?]
원승지는 그 말을 듣고나서, 그제서야 그것이 귀중한 보물임을 알고, 두 손으로 받들어 급히 되돌려 주려고 했다.
목상도인은 그대로 선 채 한마디했다.
[난 네 사부처럼 이렇게 옹색하지만은 않다. 한 번 준 물건이니 그대로 받아 잘 간수해 두거라.]
원승지는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사부의 눈치를 보며 그의 지시를 기다렸다.
목인청이 입을 떼었다.
[기왕 주시려는 것이니, 그럼 도장께 감사 말씀 드려라.] 원승지는 무릎을 꿇고 거듭 감사했다. 목인청이 정색을 하며 바라보았다.
[이것은 도장이 무수한 심혈을 기울여 구사일생으로 겨운 얻은 것이다. 몸을 보호하는 조끼이니 한 번 입어 보아라.]
원승지는 그 말에 따라 조끼를 입었다.
[이 조끼는 오금사(烏金絲), 즉 머리카락과 원숭이 털을 섞어 만든 것이다.
어떠한 무서운 병기도 뚫고 들어올 수 없다.]
목인청이 설명하면서 검을 원승지의 가슴을 향해 찔렀다. 검은 더할 수 없이 빨랐으나 원승지 역시 빠르게 피하였다. 놀라서 보니 검 끝이 이미 조끼에 닿아 있었다. 그러나 가볍게 튕겨서 나간 정도였다. 원승지는 몹시 기뻐서 다시 한 번 목상도인에게 큰 절을 했다. 목상도인이 환하게 웃었다.
[네가 처음에는 이 물건이 검은 덩어리에 불과하니까 그다지 기뻐하지도 않으면서 절을 하길래 마음이 꺼림칙하였다. 그런데 이번에야말로 진정으로 기뻐하는구나.]
원승지는 그 말을 듣고서는 그만 얼굴이 붉어졌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에 목인청이 되물었다.
[그 사람은 요즘 소식이 있습니까?]
목상도인은 지금껏 만면에 웃음을 띠고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그 사람이란 이야기가 나오자,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쉬며 얼굴색이 불쾌하게 변하였다.
[솔직히 말한다면, 그는 요즘 어디서 지내고 있는지 나도 모르네. 최근에는 산해관(山海關)에서 출몰한다고 하지만 그를 만나고 싶지가 않아. 그래서 화산으로 온것이니, 말하자면 도망을 온 것일세.]
[도형은 어째서 그의 기개만 높이고 자기의 위풍은 떨어뜨립니까? 그럼 도형의 무공이 그를 상대하지 못한단 말씀입니까?]
목상도인은 신색이 더욱 암울해지면서 말했다.
[그를 상대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 이 몇 해 동안 나는 그와 두 차례나 싸웠네. 첫 번에는 내가 우위에 있었지만 최후에는 동문의 정의를 생각했다네.
사부가 임종시에 나에게 그를 잘 보살피라는 당부의 말씀이 계셔서 내가 여러모로 가르치려 하였으나, 그는 결국 나쁜 길로 들어섰다오. 내 마음에 부끄러움이 있었기에 나는 마지막 일격은 가하지 않았다네. 두 번째 싸움에서는, 그는 어디서 사악한 파의 무공을 배워 왔는지 모르겠지만, 한 점에 나의 가슴을 찔렀지. 다행히 그 조끼나 내 몸을 보호하여 칼날이 들어오지 못했었지만. 그는 놀래서 내가 기묘한 무공을 연마한 것으로 알고 주춤하더군. 그래서 내가 그를 장악하였지. 나는 그를 잘 구슬렀으나 냉소를 하더군. 헤어질 때 말하기를, <이제야 알겠다. 너는 단지 몸을 보호하는 조끼에 의지했던 것이로구나.
다음 번에 만날 때는 정말이지 너의 목을 치고 말겠다! 그때는 어떻게 막겠느냐?> 그러는 거야.]
목인청이 노해서 말했다.
[그가 그처럼 망말을 했더라도 도형은 동문의 정의를 보아 다시 그의 생명을 용서할 것 아니오? 나는 그와 아무런 관련도 없다 이 말씀입니까? 도형이 주저하면 내가 하사을 해서라도 그를 찾겠습니다. 그가 여전히 못된 짓만 골라서 하고 다닌다면 내가 그를 끌고와서 당신 앞에 세우겠소!] [당신의 호의에는 감사하오. 그러나 나는 그가 스스로 잘못을 깨닫고 개과천선(改過遷善)하기를 바라고 있소. 이 몇 년 새에 그의 사악한 무공을 자세하게 겪은 적이 있으므로 다시 싸운다면 그를 반드시 이기지 못할지도 모르지.
내가 화산으로 도망와서 그를 보지 않고 지내니 어느덧 눈이 깨끗해지고 귀로 듣지 않으니 괴로운 것이 없어서 좋소이다. 그가 개과를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 사문(師門)의 복이고, 그렇지 않으면 그가 그렇게 많은 불의를 행했으니 반드시 죽어야만 하겠지.]
그는 한숨을 쉬었다.
[그가 능히 개과를 할 수 있을까? 어려운 일이야. 정말로 어려운 일이야.] [듣기로는 그가 미색을 탐하여 적지 않은 양가 부녀자의 정절을 해치고 근래에는 더욱 포악해졌다더군요. 이러한 무림의 패륜아(悖倫兒)는 다음 번에 도형의 손에 들어오거든, 다시는 옛정을 생각해서는 안되오. 도형이 사문을 깨끗이하여 악을 제가하고 사부의 명예를 지켜야 하며, 사부의 은덕에 보답해야 합니다.]
목상도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목형의 말이 옳아요.]
그는 또 한 번 장탄식을 하였다. 원승지는 그저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어떤 사형제의 품행이 몹시 사악하나 무공만은 높아서 목상도인이 걱정을 하는 것 같았다. 그는 조끼를 들고 목상도인에게로 다가갔다.
[도장께서 그 사악한 사람을 제거하시려면 이 조끼를 입는 것이 역시 온당할 것 같습니다. 그를 제거한 뒤에 다시 저에게 주십시오. 저의 무공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으니, 악인과 싸울 수 없고 또 이 보물을 사용할 수도 없습니다.]
목상도인도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너의 호의는 고맙다. 하지만 이 조끼가 몸을 보호하지 않아도 그가 나를 죽일 수 없으니, 너는 나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 목인청은 그가 우울해 하는 것을 보고 천하에 앞서는 일은 다만 한가지뿐이고 만가지 일이 다 그 뒤에 있는 것을 알았다.
[이일은 더 얘기야 봤자 흥만 깨지겠소. 이제 그만두고 당신의 기예(技藝).......]
목상도인이 <기예>라는 한마디를 듣자, 비로서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순식간에 이십 년은 젊어진 것처럼 보였다.
목인청이 계속해서 말했다.
[이 몇 년 새에 진보가 있었습니까?]
그는 급히 대답했다.
[뭐라고? 나의 무공이 설령 당신에게 미치지 못할지는 몰라도, 비록 두는 일은 당신의 사부가 될 수 있소. 만일 못 믿겠거든 우리.......] 목인청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좋아요. 그럼 우리 천변만겁의 무공을 한 수 가르쳐 주십시오!] 목상도인은 웃으면서 뒷주머니에서 바둑판과 두 주머니의 바둑알을 꺼냈다.
[내가 두려워서 도전을 피하려고 화산에는 바둑판과 바둑알이 없다고 말하려 했다면 그럴 수는 없지. 하하하!]
벙어리가 바둑판을 옮기고 두 사람은 나무 그늘 아래서 대국을 시작했다.
원승지는 바둑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목상도인이 한편으로 바둑을 두면서 한편으로 그에게 설명해 주었다. 동시에 계속해서 자기의 기예가 고상함을 열거하고는 그의 사부의 기예는 그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고 말했다. 목인청은 아무말 없이 미소 할 뿐 그가 자랑하도록 그냥 내버려두었다. 바둑은 쉽게 배울 것 같았으나 정통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규칙에 따라 두어 보니 금방 할 수 있었다. 바둑판을 자세히 보니 정밀한 철로 주조한 것이었다. 또 검은 바둑알은 검은 철로, 흰 바둑알은 백은(白銀)으로 만든 것이었다. 두 사람이 바둑알을 움직일 때마다 쇳소리가 땅땅 귀에 울렸다. 이 일 국은 예상대로 목상도인이 이겼다. 두 오랜 친구는 대낮부터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계속하여 4국이나 두었다. 목상도인이 3승1패를 했다. 그는 계속 더 두자고 했으나 목인청이 고개를 저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못 두겠소.]
목상도인은 그제서야 서운해서 잠자러 갔다. 목상도인은 계속 사흘간을 목인청과 바둑을 두었다. 원승지는 보고 있으려니 저절로 흥미가 생겼다. 넷째 날이 되자 목인청이 말했다.
[오늘 하루 쉽시다. 내가 우선 제자에게 검법을 전수한 다음에 다시 둡시다.]
목상도인이 생각하기를 그것이 정도라 여겨 더 이상 만류하지 못했다. 기다리는 동안 혼자 마음이 급해져서 목인청이 검법을 다 전수해 주기를 기다렸다가 곧 그를 다시 이끌었다.
[자, 이제 다시 삼국을 두세.]
목인청은 반나절 동안 검법을 가르치고 난 후라, 어느 정도 피곤했지만 목상도인이 바둑을 너무너무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만약 거절하면 그가 저녁내내 우울해 할까봐 그와 함께 나무 그늘 아래로 가서 대국을 시작하였다. 원승지는 잠간동안 새로 배운 검법을 연습하는 중인데 갑자기 뒤에서 목상도인이 기뻐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승지야, 빨리 와서 봐라. 네 사부가 큰일났다.]
그래서 급히 달려가 보았다. 목인청이 기력(棋力)이 본래 목상도인에 비할 수 없었다지만, 이때는 더구나 억지로 대국한 것이라 더욱 순조롭지 못했다.
그래서 중국(中局)도 되지 못해 이미 여러 곳에서 제압을 당하고 있었다. 하나의 흰 돌이 형세가 몹시 위급, 설사 억지로 구한다 하여도 사방이 모두 적으로부터 포위 당할 것이었다. 그는 한 알을 들고는 한숨을 쉬며 시종 놓지 못하고 있었다.
원승지는 한쪽에서 바라보고 있다가 한 곳을 나름대로 짚어 보였다.
[사부님, 이쪽에다 두어 보세요. 목상도인이 반드시 구하려 가실 테니까, 아니 이곳에다 두면 빠져나갈 수가 있을 것 같아요. 저의 말이 옳은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목인청은 제자의 말에 따라, 그곳에 돌을 놓았다. 한 무리의 흰 돌이 곧 돌진해 왔다. 검은 돌은 오히려 조금밖에 죽지 않았다. 이국은 목인청이 본래 크게 지는 것인데, 어렵게 하나하나 두다보니 다섯집만을 졌다. 목상도인은 원승지의 생각이 영특함에 칭찬을 한 뒤, 그에게 아홉 점을 주면서 일국을 두자 했다. 원승지는 비록 옛 사람들의 기법(技法)을 잘 몰랐으나 바둑의 도(道)는 스스로 깨닫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여겨 마주 앉았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20세에 국수(國手)가 되지 못하면 평생을 이루지 못한다>는 뜻이야말로 바둑을 두는 사람이 소년 때에 이름을 날리지 못하면 후에 아무리 노력하여도 결국은 평범에 그칠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소동파처럼 총명한 사람도 경사문장(經史文章)과 서화시사(書畵侍詞)에 정통하지 않은 것이 없었으나, 바둑에 있어선 시종 평범에 그쳤었다. 그의 일생을 통해 유감스럽게 여겨오던 터이다.
그는 일찍이 시를 지어 말하기를 <이겨도 즐겁고 져도 역시 기쁘다>했다. 후인들이 그의 도량이 넓어서 승부에 집착하지 않은 것을 칭찬하기는 했다. 목인청의 청격은 담백하지만, 목상도인도 그와 바둑을 둘 때에는 그렇게 집착하지 않았으나 이번에 원승지와의 대국때는 사정이 달랐다. 원승지는 바둑을 두는 데에 천재성이 있는데다, 어린 마음이지만 몹시 깊어서 백계(百計)의 전술로 이 도인을 이기려고 했다. 이 일국에서 결국은 목상도인이 이기긴 했지만, 중간에 몹시 어려운 가운데 살아나곤 했다. 결과적으로는 이겼다고 할 수가 없었다.
다음날 아침 목상도인은 승지를 다시 바둑판 앞에 끌어 앉혔다. 승지가 연이어 3국을 승리하자 9점을 8점으로 바꾸었다. 그 뒤 한 달이 되지 않아 그의 바둑 실력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목상도인은 그에게 3점만 주고 서로 승패를 가릴 수 있었다. 원승지는 바둑판 위에다 정신을 쏟았으므로 자연히 무술을 연마하는 시간은 줄어들었다. 목인청은 오랜 친구의 정의를 생각해서 뭐라 말하지 못했으나, 나중에는 이 노인과 어린애가 하루종일 침식을 잊고 바둑판 위에서 지내는 것을 보고는 비밀리에 원승지에게 부탁하기를, 매국 일 국씩만 두고 나머지 시간은 무술을 연마하는 데 쓰라고 일렀다. 원승지는 사부의 말을 듣고 문득 깨달았다. 이 며칠 동안 확실히 무공에 소홀했기 때문에 스스로 부끄러워서 서둘러 검법을 연습했다. 목상도인은 그 뒤에도 이틀이나 바둑을 두자고 하였으나, 그는 계속 검법을 연습해야 한다고 말했다.
목상도인이 한가지 제의를 했다.
[네가 와서 나하고 바둑을 두면, 바둑이 끝난 후에 한기지 무예를 가르쳐 주겠다. 그러면 너의 사부도 기뻐하실 것이다.]
[그럼, 제가 가서 사부님께 여쭤 보겠습니다.]
[좋다. 가서 여쭤 보거라.]
원승지는 나는 듯이 달려가서 목상도인의 말을 사부에게 전했다. 목인청은 그 말을 듣고 매우 기뻐했다. 목상도인의 별명은 <천변만겁>이다. 그가 젊었을 때 신법이 변화무쌍하여 강호에서는 그에게 별명을 지어 <천변만화초상비(千變萬化草上飛)>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런 후에는 그는 바둑에 더욱 심취하였던 것이다. 바둑의 도에서는 <집을 빼앗는 것>을 중히 여기는데, 목상도인은 무수한 변화로 집을 빼앗기는 위기에서 살아났다. 목상의 무공이 몹시 높았으나 스스로는 별것이 못된다고 여겼다. 그러나 기예는 스스로 자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별명을 바꾸어 <천변만겁기국수(千變萬劫棋國手)>라고 자처했다.
주위의 사람들이 그의 체면을 보아서 그런지 그 스스로 고친 별명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 하여 탓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의 기예와 국수의 경지는 확실히 차이가 있었으므로, 그것을 절충하고 줄여서 천변만겁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이 네 글자는 사실, 그의 무공이 천변만화하고 적을 죽임에 만겁불복(萬劫不復)하는 것을 존중하여 말한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그에게 대고 이렇게 얘기한다면, 목상은 크게 화를 내었다. 이 별명은 그의 기예를 가리켜서 정한 것이라는 뜻을 인정하라고 했던 것이다. 목인청은 그의 무공이 실제로 독특한 경지에 있다는 것을 감복하고 있었으나, 그가 종래 제자에게 전수하기를 원치 않았기에 묻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그가 원승지에게 그 무공을 전수하겠다고 하였다니 반가운 일이었다. 그는 원승지의 손을 이끌고 목상도인에게로 갔다.
[이 아이에게 무공을 전수하시겠다니, 내가 우선 감사드리고 싶소!] 그러더니 원승지에게는 목상도인에게 절을 하여 사부로서 예를 갖추도록 하였다. 원승지가 무릎을 꿇자 목상도인이 일어나서 두 손을 흔들며 말했다.
[나는 제자로서는 받아들이지 않겠소. 그가 나에게 무공을 배우고 싶다면 스스로 나를 이겨야 하니까]
목인청이 이상한 듯 물었다.
[이 어린것이 무엇으로 당신을 이길 수 있겠소?]
[검법은 당신이 천하무적이고 이 아이가 당신의 무예를 이삼일만에 이룰 수 있었으니, 강호에서 이미 적수를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어. 그러나 경공(輕功)과 암기(暗器)로 말하면 내가 역시 한 수 위일 것이야] 목인청이 대답했다.
[누가 당신의 신기한 재주를 모르겠소!]
목상이 웃으며 말했다.
[천변만겁은 나의 기예가 천하무적이라는 것이지, 무공의 높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니 혼동하지 마시오. 당신이 한 파의 종사(宗師)로서 모든 일에 정정당당함과 기개가 높음을 더욱 중시했기 때문에 경공.암기는 오히려 많이 연마하려 하지 않았소. 그래서 내가 경공.암기에 뚜렷하게 잘 할 수 있었던 것이고 이러니 당신이 승지로 하여금 나와 매일 두 판의 바둑을 두게 하면 내가 그에게 세 점을 주고 그래서 내가 이기면 그것은 내가 소일하는 것을 도와주는 승지의 기특함이라 할 것이고 만약 그가 일 국을 이기면, 내가 그에게 일초식의 경공을 가르쳐 주고, 연속해서 두국을 이기면 경공외에 다시 혼초의 암기를 가르쳐 주겠다는 것이오. 이렇게하면 공평하지 않겠소?] 목인청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 노인은 정말로 우습구나!)
[좋소이다. 그럼, 그렇게 합시다. 본래 나는 승지가 바둑을 두는데 시간을 빼앗겨 무공을 연마하는 것에 소홀히 할까 두려웠던 것인데, 이제 이렇게 큰 이득이 생길 것 같으면 둘이 매일 열 국을 두던 여덟 국을 두던 이젠 더 상관치 않겠소!]
목상과 원승지는 그 말을 듣자 몹시 기뻐했다. 목상과의 대국은 1승 1패로 끝났다.
[오늘 너에게 일초의 경공을 가르쳐 주겠다. 비록 단 일초지만 네가 주의를 기울여 연마하면 종신토록 쓸모가 많을 것이니 자세히 보아 두어라!]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다리를 구부린 자세에서 나무 위로 뛰어 올랐다. 그리고 다시 또 그의 면전에 나타났다. 원승지는 눈을 둥그렇게 뜨고 입을 벌린 채로 박수를 치며 훌륭하다고 연발했다. 목상도인은 이 일초 <반운승룡(攀雲乘龍)>의 경공을 그에게 가르쳐 주었다. 원승지는 두 국을 연속해서 패했으므로 소득이 없었다. 그 다음날 원승지가 두 국을 모두 이겼는데, 목상이 끝내 굴복할 의사를 표하지 않아서 결국은 다시 두 국을 더 두었다. 이번에는 1승 1패였다. 결산해 두 초의 경공을 가르치고, 그가 기억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너는 내가 적수에 대해 무슨 병기를 사용하는지 아느냐?] 원승지가 고개를 흔들었다. 목상도인은 바둑판을 보이고는 웃으면서 말했다.
[원래 나도 검을 사용했으나, 근년에 들어서는 이것을 사용한다.] 원승지는 벌써부터 그 바둑판의 정교한 철로 주조된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바둑을 좋아하여 늘 몸에 지니고 다니자니, 바둑판이 훼손될까봐 특별히 주조한 것으로 알았는데, 오늘 알고 보니 그것이 바로 대적하는 병기였다니.......
목상은 또 바둑알을 집어들고서 웃으면서 덧붙였다.
[이것도 나의 비밀 무기지.]
그는 열 몇 알의 바둑알을 하늘로 날렸다. 바둑알이 떨어지길 기다렸다가 목상이 바둑판을 들어 올려서 다시 받으니 <땅땅!> 하는 큰 소리가 들렸다.
열 몇 개의 바둑알이 동시에 바둑판 위에 떨어졌다. 원승지는 혀를 내밀었으나 너무 놀라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원래 열 몇 개의 바둑알을 하늘로 던졌는데 떨어질 때에는 선후가 정해져 있어서 철돌과 은돌이 바둑판에 부딪쳐서 <땅땅!> 하는 소리를 내었던 것이다. 열 몇 개의 바둑알을 쥐고 공중을 향해 던질 때의 손 힘의 평균이 확실히 놀라웠다. 더욱 신기한 것은 열 몇 개의 바둑알이 바둑판에 떨어질 때 한 알도 땅으로 튕겨 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의 오른손에 힘이 조금 가해지자, 바둑알이 떨어질 때의 힘은 이미 없어지고 한알 한알이 모두 손으로 바둑 판 위에 올려놓은 것처럼 자리를 잡았다.
목상이 웃으며 말했다.
[비밀 무기를 사용하려면 우선 힘을 단련해야 하고, 다시 목표를 훈련하여 던질 때의 경중에 자신이 있으면 다시 정확한지를 얘기할 수 있다.] 이것저것 설명하면서 바둑알을 던지는 비법을 그에게 전수하였다. 목상이 화산의 꼭대기에 머무른지 반년이 되었다. 매일매일 승지와 대국하느라, 돌아갈 것도 잊고 즐거워했다. 그들은 피곤도 잊은 채 바둑두는 법을 이 반년 사이에 남김없이 전수해 주었다.
어느덧 한여름이 왔다. 원승지는 오전에 검법을 연습하고 오후에는 목상과 나무 그늘에서 대국을 하였다. 이때에 그의 기력은 이미 목상보다 한 걸음 앞서 있었다. 그러나 목상이 이기기 좋도록 매번 그에게 먼저하게 하고 많이지고 적게 이겼다. <천변만겁>이 변화무쌍하다 하나 역시 패함을 면치 못했다.
패하는 횟수가 점점 많아지자, 무궁을 전수하는 횟수도 점점 많아졌다. 그의 기예상의 변화는 제한되어 있었으나, 무공은 오히려 광대하였다. 바둑을 지는 예가 비록 많아졌으나 무궁한 초식을 가르침으로써 그것을 갚았다. 오늘 가르친 것은 암기의 <만천화우(萬天化雨)>의 수법(手法)이었다. 한 손에 동시에 일곱알을 던져서 한알 한알이 모두 적의 급소를 적중시키는 무예였다. 이러한 무공은 하루아침에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원승지는 이 무공을 배우는데 이미 두달이나 시간을 들였다. 그러나 아직도 동시에 서너 개의 바둑을 던져서 매회 한두개만 적중시킬 수 있을 뿐이었다. 목상은 과녁을 만들고 사람의 모습을 그려 넣었다. 그리고는 벙어리더러 그 과녁을 들고 뛰어 다니도록 했다.
목상이 소리쳤다.
[천종(天宗), 견정(肩貞), 옥침(玉枕)!]
원승지는 세 알을 던졌다. 천종과 옥침의 두 급소에는 적중했으나, 견정에는 빗나갔다.
목상이 다시 외쳤다.
[관원(關元), 신봉(神封), 중정(中庭)!]
벙어리는 한편으로 뛰고 한편으로는 나무 과녁을 흔들어 대었다. 원승지가 경공을 하여 쫓아가며 재빨리 손을 휘둘렀다. 목상이 또 외쳤다.
[관원은 명중하지 못했다!]
다시 그가 소리치려 할 때였다. 원승지가 뭔가에 놀라서 소리치며 급히 내달아 벙어리를 한 손에 잡고 뒤로 확 끌어 당겼다. 벙어리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커다란 승냥이 한 마리가 그의 뒤에 서 있었다. 몹시 사나운 모습으로 긴 이빨과 발톱을 세워 그를 공격하려 하고 있었다. 벙어리는 나무 과녁을 들어 승냥이를 막는 중인데, 돌연 왼쪽 어깨가 잡히는가 싶더니 목상에 의해서 이끌려 갔다.
[승지야, 네가 해치워라!]
원승지는 목상 사부가 자신의 무공을 시험하려는 것으로 알고 곧바로 가볍게 날아서 승냥이 앞으로 다가갔다. 승냥이는 그가 몹시 빠른 속도로 오는 것을 보고 몸을 돌리려 했으나, 원승지는 벌서 두손으로써 그의 등을 내리쳤다.
승냥이는 고통으로 인하여 짖어 대며 몸을 홱 돌리더니 발을 휘둘러 승지를 잡으려 했다. 순간, 원승지는 땅을 차고 뛰어 올라 틈을 살폈다. 그때 그는 몸뒤에서 바람이 이는 것을 느꼈다. 적이 공격을 하는 것 같았다. 아직 공중으로 뛰어 올라서 땅에 떨어지기 전인데 그를 습격해 오는 것은 또 한 마리의 승냥이였다. 산에 오른 이래로 이 몇 년동안 무공을 연마했지만, 단지 사부와 연습을 했을 뿐 다른 사람과 대적해 보지는 않았었다. 더구나 두 마리의 승냥이와 겨루기는 처음이었다. 그는 조금도 두렵게 여기지 않고, 초장법으로 두 마리의 짐승과 싸우기 시작했다. 장법은 굉장히 힘이 들어 있었다. 전에 표범과 싸웠을 때와는 이미 다른 힘이었다. 목인청이 뛰어나와서 원승지가 두 마리의 짐승과 싸우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원승지의 손이 닿을 때마다 승냥이는 아파서 괴로운 소리를 질렀다. 그는 마음속으로 몹시 기뻐하는 얼굴이었다.
(심혈을 기울일 만한 아이야.......)
두 마리의 승냥이는 입 쓴맛을 보고, 다시 감히 접근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피하기만 했다. 목인청은 원승지의 장법이 두 마리의 짐승을 가히 제압할 수 있다고 판단, 다시 그의 검법을 보고 싶어서 장검을 가지고 나와 외쳤다.
[검을 받아라!]
원승지는 몸을 일으켜 오른손으로 칼을 잡고, 날아 오를 때는 호랑이가 날개를 단 것처럼 한 자세였는데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천침인선(穿針引線)>의 일초로써 승냥이 한 마리의 어깨에 검을 찔렀다. 그 승냥이는 기겁을 하여 물러섰다. 원승지는 다시 힘을 다해 뛰어 올랐다. 검광(劍光)속에 두 마리의 승냥이가 갇히었다.
목상이 말했다.
[승지야, 그들의 생명을 해치지는 말아라!]
원승지는 알았다는 표시를 하고는 장검을 더욱 빨리 내둘렀다. 그가 이때 승냥이를 살해하려 했다면 그것은 매우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마리의 승냥이는 눈 깜짝할 사이에 어깨, 다리, 머리 모두를 검에 찔렸으나, 그가 시종 죽이지 않으려 했으므로 매번 가벼운 상처만 입고 있었다. 승냥이는 매우 영특했다. 처음에는 애써 도망하려 하였으나 나중에는 검을 피해 가며 정지해 서 있었다. 살생 할 의사가 없음을 알았는지, 동시에 몇 번을 짖더니, 바닥에 꿇어 엎드려 두 발로 머리를 감싸는 시늉을 했다. 눈을 기운없이 움직이며 원승지를 바라보는 모양이 꼭 애원하는 모습이었다. 벙어리는 원승지가 두 마리의 짐승을 굴복시키는 것을 보고 기뻐서 박수를 치며 달려 들어갔다. 그리고는 한단의 끈을 가지고 나와 두 마리의 승냥이를 차례로 묶었다. 두 마리의 승냥이는 처음에는 이빨을 드러내며 포효했으나, 벙어리가 힘주어 누르자 살과 뼈가 이미 많이 다친 승냥이는 반항도 못하고 짖어대기만 했다. 목상과 목인청은 모두 원승지의 무공이 근래에 크게 진보했음을 칭찬하고, 그에게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원승지는 약을 가져다 승냥이의 상처들을 치료해 주었다.
또 과일을 따가가 먹이기도 했다. 7, 8일을 이렇게 기르자 승냥이의 야수성이 점점 사라져서 포박을 풀은 후에도 도망가지를 않았다. 원승지는 수컷에게는 <대위(大威)>라 하고, 암컷에게는 <소괴(小乖)>라고 이름했다. 목인청과 목상은 암컷이 이렇게 털이 많은 짐승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예쁜 이름을 지어준 것을 보고 실소름 금치 못했다. 대위와 소괴는 기를수록 훈련이 잘되어 원승지가 한 번 명령하면 두 마리가 즉시 행하여 어기는 바가 없었다. 하루는 두 마리 승냥이에게 봉우리의 서쪽 절벽에 가서 과실을 따오게 하였다 이 절벽은 한 면은 비교적 경사가 완만해서 붙잡을 수 있는 곳이 있었으나, 다른 한 면은 직각으로 세운 벽과 같아서 수족을 놀릴 수 조차 없었다. 두 마리의 승냥이가 과일을 따들고 장난을 치다 그만 소괴가 갑자기 실족하여 나무에서 떨어져 곧장 절벽으로 미끄러졌다.
이 절벽은 땅에서 사십여 길이나 떨어져 있어, 한 번 떨어지면 몸이 산산이 부서진다. 대위가 혼비백산하여 산꼭대기에 올라서 보니 소괴가 다행히 떨어지지 않고 두발로 산 벽의 동굴에 매달려 있는 것이 보였다. 이 동굴은 아주 오래된 것으로, 원래 진흙으로 막혀 있었는데 소괴가 떨어질 때 산 벽이 파헤쳐 져서 진흙이 부서지는 바람에 겨우 동굴에 발을 디딜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몸의 반이 공중에 떠 있어서 위로 올라갈 수도, 아래로 내려갈 수도 없게 되어 몹시 낭패스러운 지경이었다. 대위로서는 구할 방법이 없다고 여겼는지 빠른 속도로 산을 내려와 구원을 요청했다. 원승지는 마침 권법을 연마하고 있었는데 그의 온몸이 가시에 찔려 점점이 핏자국이 난데다가 몹시 당황하여 뛰어오는 것이 컹컹 짖는 것을 보고는, 소괴에게 무슨 변이 생긴 것을 알았다.
그리고 급히 벙어리를 불러서 함께 대위를 따라갔다. 대위는 절벽을 가리키며 마구 짖어 대었다. 원승지가 벙어리와 함께 달려가 보니, 소괴가 허공에 매달려 있었다. 원승지는 석실로 돌아와 긴 끈을 몇 가닥 가지고 벙어리와 대위와 함께 절벽으로 기어올라가 세 줄의 긴 끈을 이어서 그쪽으로 떨어뜨렸다. 소괴는 이미 많이 지쳐 있었으나 끈을 보자 네발로 사력을 다해 잡아 당겼다.
벙어리와 대위는 힘껏 그를 끌어 올렸다. 소괴의 몸에는 절벽의 돌에 부딪쳐 여러 군데 다쳐 있었지만 상처가 깊지는 않았다. 그러나 한참을 울부짖다가 그만 앞발을 원승지의 면전에다 쭉 뻗었다. 원승지가 보니, 그의 발에는 두 개의 기형 암기가 박혀 있었다. 그것은 철로 만든 작은 뱀모양이었다. 손을 내어 뽑으려 했으나 쉽게 뽑아지지 않았다. 소괴는 괴로워서 허우적거렸다. 암기 밑에 무슨 가시가 있는 것을 알았다.
(설마 적이 왔단 말인가?)
그는 손짓으로 소괴에게 이 암기는 누가 던진 것이냐고 물었다. 소괴는 손짓 발짓으로, 발을 동굴을 팔 때 찔린 것이라는 표시를 했다. 원승지는 매우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 절벽의 동굴은 모양을 드러내지 않고 산꼭대기에 있는데다, 지면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데 어떻게 그곳에 박혀 있을 수 있는가?) 그는 목상도인을 찾아갔다. 두 사람은 그의 설명을 듣자 달려와 소괴의 발바닥에 박힌 암기를 살펴보았다.
그들 역시 이상하다고 말했다.
[나는 전부터 암기를 사용하는 걸 좋아하여 강호의 각가(各家), 각문(各門)의 암기는 거의 다 보았는데 이 뱀모양의 암기는 오늘 처음 보겠는데? 목형, 내가 조사 좀 해보아야겠소.]
목인청도 정말 수상쩍게 생각하고 말했다.
[그것을 꺼낸 후에 다시 얘기합시다.]
목상은 방으로 돌아와서 약상자에서 하나의 날카로운 단도를 가지고 왔다.
소괴의 발바닥 살을 가르자 두 개의 암기가 나왔다. 소괴는 치료하는 것을 알았는지, 조금도 반항하지 않아다. 목상은 찬찬히 약을 바르고 상처를 천으로 묶어 주었다.
소괴는 이렇게 큰 위험을 겪더니 훨씬 더 양순해졌다. 대위는 그에게 이를 잡아 주며 위로해 주었다. 그 두 개의 암기는 약 두치 팔푼 정도의 길이에, 고개를 들어 혀를 내민 뱀모양을 하고 있었다. 뱀의 혀는 날카롭게 둘로 갈라져 있었다. 뱀의 몸은 검은색인데 청태가 끼어 있었다. 목상이 들고와서 자세히 닦아내고 작은 칼로 몸의 각 부분에 묻은 오물을 털어 내고 보니 뱀의 몸이 점점 빛을 띠는데 황금으로 주조된 것이었다.
[어쩐지 이렇게 작은 암기가 무겁다더니, 금으로 만든 것이었구나! 이 암기를 만든 사람도 대단하지.... 한 번 던지면 몇 돈의 금이 날아가는 것이니 말야.]
[이것은 필시 금사랑군(金蛇郞君)의 것이야!]
목상이 의아해 하며 되물었다.
[금사랑군? 당신은 그럼 하설의(夏雪宜)를 말하는 것이오? 내가 듣기로, 이 사람은 수십 년 전에 죽었다고 하던데?]
그러더니 그는 또 갑자기 비명처럼 외쳤다.
[맞다. 바로 그자야!]
단도로 뱀의 배 부분을 긁어보니 <설(雪)>자가 분명히 나타났다. 다른 하나의 암기에도 같은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원승지가 호기심에 찬 얼굴로 물었다.
[사부님, 금사랑군이란 대체 누구입니까?]
목인청이 대답했다.
[그 일은 좀 있다가 다시 얘기하자. 그렇데 도형, 그의 암기가 어떻게 이 동굴에 숨겨져 있었을까요?]
목상은 깊은 생각에 빠져 말이 없었다. 원승지는 사부와 목상도사의 안색이 굳어짐을 보고 감히 다시 묻질 못했다. 저녁식사 후, 목인청과 목상은 촛불 앞에 마주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원승지는 거의 이해하지 못할 얘기들이었으나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가 모두 복수니, 살해니 하는 등의 내용이란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목상이 언성을 높였다.
[그러면 당신은 금사랑군이 보복을 피해 이리로 왔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목인청이 대답했다.
[그는 무공이 아주 훌륭하니, 구태여 강남에서 이곳 멀리까지 와서 산중에 숨을 필요가 없을 것 같소.]
[설마, 그 사람이 아직 죽지 않은 것은 아니겠지]
[그 사람의 행동이 본래 기이하고 신출귀몰했지만, 우리도 강호에서 그의 명성만 들었을 뿐 사실 그를 본 적은 없었소. 사람들은 그가 죽었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누구도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를 모르오.]
목상이 탄식하여 대답했다.
[그 사람의 행동은 정말 괴팍하지요. 어떤 때에는 몹시 흉폭하고, 어떤 때에는 또 의협적인 행동을 좋아해서 좋은지 나쁜지 조차 사람들은 판별하기 어려웠고, 나도 몇 차례나 그를 만나려고 했지만 끝내 찾을 수 없었소.] [우리도 그냥 추측만 할 것이 아니라 내일 그 동굴에 한 번 가 봅시다.] 다음날 아침, 목인청과 목상, 원승지, 벙어리 이렇게 네 사람은 밧줄과 검을 가지고 절벽 꼭대기로 기어올라갔다.
[내가 내려가겠소.]
목상의 말에 목인청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조심하시오.]
밧줄에 허리를 묶고 나자 벙어리와 두 사람은 밧줄을 꽉움켜쥐고 그를 천천히 내려보냈다. 목상은 한 손에 바둑판을 들고 한 손에는 세 개의 바둑알을 쥔 채 동굴로 내려갔다. 아래를 쳐다보니, 발밑에는 안개가 바람을 따라 피어 오르고 있었다. 지면은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그는 비록 경공을 익혔으나 험준한 봉우리 위에 있는 데다, 평지와 같지 안으므로 이때에는 자신도 모르게 긴장이 되었다. 고개를 돌려 동굴을 바라보니,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다. 다만 동굴이 몹시 깊은 것만을 한눈으로 느낄 수 있었다. 동구의 입구는 너무 작아서 뚫고 들어갈 수 없었다. 손을 천으로 묶고 살그머니 동굴 안을 살펴보니, 몇 개의 날카로운 물건이 만져졌다. 동굴 입구에 꽂혀져 있던 것이었다.
만져보니 금뱀인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하나씩 가볍게 끄집어내니, 모두 열 개나 되었다. 다신 손을 내밀어 더듬어 보았으나 손끝은 동굴 입구에 닿을 뿐 다른 것은 찾을 수 없었다.
그는 목청을 높여 크게 외쳤다.
[나를 끌어 올려 다오!]
목인청이 천천히 밧줄을 잡아당겨 그를 다시 끌어 올렸다.
꼭대기로부터 두 길이 넘게 잡아 당겼을 때, 목상의 오른 발이 절벽 위에 보였다. 바둑판에 한 무더기의 황금뱀이 담겨져 있었다.
목상이 빙긋 웃었다.
[목형, 우린 이제 큰 부자가 되었소. 이렇게 많은 금을 얻었으니 말이오.] 목인청의 얼굴색이 심각하게 변하더니 두 눈썹을 문득 찡그렸다.
[그 사람이 이렇게 많은 물건을 여기에 두었다니, 대체 무슨 뜻인지 모르겠소. 동굴 안에 또 무엇이 있던가요? 내가 내려가서 좀 보아야겠소.] [당신이 내려가도 헛수고요. 동굴 입구나 너무 작아서 들어갈 수조차 없소!]
목인청은 여러 가지 생각으로 고개를 숙이고 말이 없었다.
원승지가 갑자기 끼어 들었다.
[목상도사님, 그렇다면 저는 들어갈 수 있을까요?]
목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는 글세....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렇게 높은데 네가 감히 내려갈 수 있겠느냐?]
원승지가 서둘러 대답했다.
[할 수 있어요, 사부님. 제가 내려가도 될까요?]
목인청은 잠시 생각하였다. 이 강호의 기인(奇人)이 그의 몸을 보호하는 보물을 이곳에 둔 데에는 틀림없이 다른 뜻이 있을 것이고, 또 자신이 기거하는 곳이니 조사해 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다만 동굴 안이 위험할 텐데 이 어린것이 홀로 위험을 만날까 걱정이었다.
목인청은 걱정스런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동굴 안에 위험이 있을가 걱정이다.]
원승지가 또 한 번 웃으며 말했다.
[사부님, 제가 조심하면 되겠지요?]
목인청이 그의 기색을 넌지시 살폈다. 내려가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하게 설려 있었다.
[좋다. 너는 횃불을 밝혀 들고 동굴로 가라. 만약 불이 꺼지거든 절대로 들어가지 말아라.]
원승지는 오른손에 검을 잡고, 왼손에는 횃불을 밝혀 든 채 줄에 매달려 내려갔다. 그는 사부의 분부대로 불빛으로 우선 동굴 안을 살펴보았다. 소괴가 동굴 밖의 흙을 파헤쳐 놓은 것이 보였다. 거센 산꼭대기 바람이 저녁내내 불었으나 횃불은 꺼지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한 개의 좁은 통로를 발견했다. 그것은 산 중간의 하나의 균열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십여걸음 더 기어가보니, 통로는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다시 앞으로 좀 더 나가보니 거의 일어설수 있을 정도의 높이였다. 그는 허리를 펴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런데 통로가 갑자기 구불러져서 그는 더이상 어쩌질 못하다가 오른손에 들었던 장검을 품에 꽂고는 두세길을 더 걸어나갔다. 앞이 갑자기 넓어지며 하나의 큰 동굴이 나타났다. 마치 석실처럼 보였다. 횃불을 치켜 들고 보니 놀랍게도 앞의 석벽에는 해골이 하나 비스듬히 기대어 있었다. 몸에 걸친 옷도 이미 다 낡아서 그 해골은 마치 하나의 인형을 보는 것 같았다. 그는 이러한 모습을 보자 심장이 마구 뛰었다. 석실 중간에는 또 다른 공포스러운 것이 있었다. 해골의 앞면은 가로에 일곱 개, 세로에 여덟 개 등열 몇 개의 황금뱀이 꽂혀 있었다. 석실상에는 기백 개의 날카로운 무기로 새긴 조잡한 인형이 있었는데 인형마다 모두 모양이 달랐다. 손을 쳐들고 발을 올린 모습이 마치 무공을 연마하는 것 같았다. 그는 좀더 가까이 다가갔다. 모두 다 도형이었는데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이곳에 무슨 까닭으로 이런걸 새겨넣었는지 알 수 없었다. 도형은 곳곳에 가득차 있었다. 석실의 웃부분에 몇 줄의 글자도 보였다. 역시 날카로운 무기로 새겨넣은 것만 같았다. 가까이 가서 보니, 모두 열여섯 글자였다.
[비술을 숨겨 두니 인연이 있는 자는 이 사문(師門)에 들어와 화를 만나도 원망치 말아라.(중보비술(重寶秘術), 부여유록(付與有錄), 인아문래(人我門來), 우화막원(遇禍莫怨).]
이 열 여섯 자의 옆에는 칼자루가 석실의 벽 위에 돌출해 있었다. 마치 한 자루의 검이 석벽에 끼어 있는 것처럼. 그는 호기심이 일어 칼을 밖으로 빼려 하였으나 꼼짝도 하지 않았다. 돌에 박힌 듯했다. 다시 보려고 생각하고 있는데, 통로 입구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은 목상이 자기의 이름을 부른 것뿐이었다. 그는 큰 소리로 대답하고 기어 나갔다. 목상과 목인청은 산꼭대기에서 밧줄을 잡아당길수록 더욱 길어지는 것을 보고, 오랫동안 기다려도 나오는 것이 보이지 않았다. 마음이 급해진 목상은 줄을 타고 내려가 찾아보기로 한 것이었다. 그는 들어갈 수 없으므로 동굴 입구에서 소리쳐 불렀던 것이다.
원승지가 기어 나와서 목상에게 전했다.
[동굴 안에는 이상한 것들이 많이 있어요!]
밧줄을 잡아당기자 위의 목인청과 벙어리가 서둘러 두 사람을 끌어 올렸다.
원승지는 정신을 가다듬고 동굴 안의 상황을 설명했다.
[그 해골은 금사랑군 하설의가 틀림없어. 그렇다면 일대의 기인이 여기 와서 명을 마쳤구나.]
목상이 되물었다.
[그가 남긴 말의 열 여섯자는 그럼 무슨 뜻이지?]
목인청이 생각에 잠기다가 대답했다.
[보아하니, 그가 동굴 안에 무슨 보물을 숨겨둔 것 같아요. 석벽에 새긴 도형은 그의 무공일 것이야. 이 열여섯자의 유언은 무슨 계책이었을 것이오. 누구든 그의 보물을 얻는 자는 아마 그들의 사문의 사람으로 여길 것이오. 이거 무슨 환난이 있을 것 같은 기분인데요?]
[자의(字意)에 따라 추측하면, 그렇게 되는 것이 당연하겠지. 아무튼 이 기언에 무슨 계책이 있는 것만은 분명해.]
목인청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우리는 그의 보물과 비술을 탐하지 않겠다. 승지야, 너는 내일 다시 들어가서 그 사람의 유골을 묻어 주고 향불을 그의 영전에 켜서 예를 갖추어라.] 다음날 새벽, 원승지는 삽을 든 채 벙어리와 두 사람이 함께 절벽을 기어올라가. 이번에는 목인청과 목상이 동굴안에 위험이 없음을 알았기에 그들과 함께 가지 않았다. 원승지는 마음속으로, 해골을 매장하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이라 생각하고 특별히 세 개의 횃불을 가지고 동굴로 기어 들어갔다. 그는 심으로 지하에 작은 굴을 파고, 횃불을 걸어 놓고 진흙으로 고정시켰다. 그리고 몸을 돌려 그 해골을 바라보았다.
(사부님의 말씀을 들으니, 이 사람은 생전에 기인이었다지. 그런데 왜 이런 산중에서 생을 마쳤을까? 유골도 거두어 묻어 주는 사람이 없었다니....) 그는 마음이 측은하였다. 그래서 해골 앞에 무릎을 꿇고 몇 번이고 절을 하고는 마음 속으로 기도를 했다.
[제자 원승지가 뜻하지 않게 유해를 발견하고 오늘 어른께 장례를 해 드리오니, 부디 지하에서라도 편히 쉬십시오!]
축원하고 있는데 갑자기 찬바람 한줄기가 동굴로 불어와 한기를 느끼게 했다. 모골이 송연해진 그는 더 이상 동굴에서 시간을 지체하지 못하고 삽으로 바닥에 구덩이를 파려 했다. 그런데 바닥이 어찌나 딱딱한지 파이지가 않았다.
암석으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만약 파 내려갈 수 없으면 동굴 밖으로 유골을 가지고 매장하리라 여기고 다시 여기저기 삽으로 찔러 보니 어느 지면은 생각 밖으로 부드러웠다. 그는 서둘러 구멍을 팠다. 계속해서 파고 있는데, 갑자기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횃불을 가까이 가져와 살펴보니, 철로 만든 상자가 묻혀 있는 것이 보였다. 다시 삽으로 몇 번을 더 파고 곁의 진흙을 털어 내었다. 그것은 두척 넓이의 철상자였다. 그는 얼른 철상자를 들어내었다. 높이는 한 척 정도였다. 가볍게 흙을 털어 냈으나 상자 안에는 아무 물건이 들어 있지 않은 것 같았다. 뚜껑을 열자 그 상자에는 이상하리만큼 얕았다. 바닥에서부터 한 자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는 기이하게 여기며 한 척 높이의 상자가 안쪽은 어째서 이렇게 얕을까 생각해 보았다. 분명 이것은 두겹으로 된 것이 틀림없었다. 상자 안에는 편지가 한 통 들어 있었다. 봉투에는 여덟 글자가 쓰여 있었다.
<나의 상자를 얻은 자는 이 편지를 열어 보시오.>
편지를 뜯어보니 안에 흰 편지지가 있었는데, 오래 되었는지 누렇게 변해 있었다.
<상자 안의 물건은 인연이 닿는 사람에게 남겨 주겠다. 상자를 얻는 자는 우선 나를 매장하고 상자를 열어라. 중요한 것이 있다.> 이렇게 쓰여져 있었다. 편지에는 또 두 개의 작은 봉투가 들어 있었다. 하나에는 <상자를 여는 법>, 다른 하나에는 <나의 유골을 묻는 법>이라고 쓰여져 있었다. 원승지는 상자를 들어 흔들어 보았다. 안에는 과연 무엇인가가 들어 있었다.
[내 사부께서 당신의 유골을 매장하라는 것은 황폐한 산중에 있는 것을 가엾게 여긴 것이지, 당신의 물건을 탐해서는 아니였소!] 그래서 <나의 유골을 묻는 법>이라고 쓰여진 봉투를 열고 보니, 안에는 또 흰 종이가 접혀 있다.
<군이 나를 진심으로 정성껏 묻으려면, 아래로 세 척의 굴을 파서 나를 매장하여 지하 깊은 곳에 기거하는 해충의 해를 입지 않게 해주시오> 원승지가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지체없이 당신의 분부를 따라 할 것이오.)
그는 다시 굴을 파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흙이 제법 딱딱해서 수시로 돌이 솟아올랐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이때에 이미 무공이 몸에 익숙해 있었다. 하나, 역시 힘이 들어 온몸이 땀에 젖었다. 세 척의 깊이의 굴을 파고나니 홀연히 <땅!> 하고, 삽 끝이 어떤 물체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진흙을 털어 내고 보니 거기엔 또하나의 철상자가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주 작은 상자였다. 겨우 한척 정도의 넓이였다.
(이 기인은 정말 괴상하구나. 이 상자 안에는 또 무엇이 들어 있을까?) 뚜껑을 열고 보니, 상자 안에는 한 장의 편지가 또 나왔다.
<군은 진실로 인자한 분이오. 나의 유골을 묻어 준 보답으로 보물과 비술을 전해 주겠소. 큰 상자를 열 때 독침이 튀어나올 것이오. 상자 안의 책과 지도는 모두 가짜이고 또 웃부분에는 독이 묻어 있는데 그건 탐욕에 가득찬 나쁜 무리들을 징계하자는 것이오. 진짜는 이 조그만 철상자 안에 있소.> 원승지는 두 개의 철상자를 한쪽에 밀어 놓고 금사랑군의 유골을 순서대로 구덩이에 옮겨 놓고 흙을 덮었다. 향불을 켜서 몇 번 절을 올리고는 철상자를 들고 나왔다. 횃불로 살펴보니, 동굴 입구는 벽돌로 만든 것이었다. 금사랑군이 당시 동굴에 들어온 후에 암석으로 막은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유골을 보건대 몸이 컸던 것 같은데, 어떻게 들어 올 수 있었을까 싶기 때문이다. 다만 시일이 오래 지나면서, 동굴 밖의 흙이 쌓이고 풀이 얽히고 청태가 가득 끼어 잘 보이지 않아 이 동굴이 작은 것으로 보였을 것이었다. 원승지는 돌을 들어내고 동굴 입구를 넓혀 놓았다. 사부와 목상도사도 들어와 조사를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동굴을 나오자 벙어리가 그를 끌어 올렸다. 그는 두 개의 철상자를 사부에게 보였다. 목인청과 목상은 둘이서 바둑을 두고 있었다. 원승지는 그 동안 겪은 일을 이야기했다. 두 사람은 동시에 편지를 읽어보았다. 큰 철상자 중에 쓰여있는 <상자를 여는 법>의 봉투를 열고 보니, 안에는 한 장의 종이에 <철상자의 좌우에는 모두 손잡이가 있소. 두 손으로 상자를 들고 동시에 힘을 주면 상자는 곧 열릴 것이오>라고 쓰여 있었다.
목상은 목인청을 보며 말했다.
[승지의 생명이 오늘 동굴 안에서 끝장날 뻔했구려. 만약 그가 조금이라도 욕심을 부려 우선 그 유골을 매장하기 전에 먼저 상자를 열었다면 분명 독화살을 피할 수 없었을 테니.......]
벙어리를 불러 하나의 커다란 나무상자를 가져오게 한 뒤 나무상자에 두 개의 구멍을 내고, 뚜껑을 열었다. 나무상자 안에 철상자를 넣고 다시 목판으로 통의 입구를 막았다. 그리고 두 개의 작은 막대기를 구멍 속에 넣어서 원승지와 각각 막대기 하나씩을 쥐고 동시에 힘을 내 들어대니, <퉁!> 소리와 함께 철상자의 두 번째 뚜껑이 열렸다. 동시에 <쉬쉬쉭!> 하는 화살 소리가 한동안 끊이지 않고 울렸다. 나무상자가 요동을 쳤다. 원승지는 화살 소리가 멈춘 것을 듣고 목판을 열려고 했다. 그러자 목상이 그를 말리며 조금 더 기다리라고 외쳤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과연 <쉬쉬!> 하는 화살소리가 몇번인가 더 들렸다. 한참이 지나서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자 목상이 목판을 열어 보았다.
과연 목판상의 통에는 수십개의 화살이 박혀 있었다. 혹은 비스듬히 혹은 직각으로 방향이 모두 다르게 목판 내에 깊이 박혀 있었다. 목상은 집게를 가져다 그것을 빼내어 한쪽에 놓았다.
[이 사람은 정말 교묘하게 계책을 세웠군. 화살이 나갈 때 사람이 피할 수 있을까봐 사방에 두 번씩 꽂았군 그래.]
목인청이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누구고 호기심이 동해서, 우선 철상자 안에 어떤 물건이 있나 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인데, 그의 유골을 먼저 매장하지 않으면 모두 죽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으니 이 사람의 마음씀이가 너무 가혹하구나!] 나무상자에서 철상자를 꺼내 아랫칸을 보니 철사로 엮어진 뚜껑이 있었다.
모두 독화살을 쏘는 용수철과 같았다. 목상이 철사를 잘라내고 보니 속에는 한 권의 책이 들어 있었다. 윗부분에 <금사비급(金蛇秘[竹+及]>이라는 글자가 쓰여져 있었다. 집게로 몇 장을 넘겨보니 아주 작은 글자들이었다. 또 여러 가지 그림도 들어 있었다. 어는 것은 지도요, 어떤 것은 무술 자세이고, 병기, 기관의 그림도 여러장 있었다. 다시 작은 상자를 열자 책이 또 한 권 나왔다. 형상이 비슷하였으나, 자세히 살펴보니 책의 내용이 서로 크게 달랐다.
[이 사람은 자기의 유골을 매장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에 대항하여 오랜 시간을 들여 이러한 위조서를 만들었고, 이렇게 많은 독화살을 장치해 놓은 거요.
하지만 사람은 이미 죽었는데 다른 사람이 죽은 사람에 대해서까지 마음 쓰도록 이렇게까지 교활한 꾀를 내야 했던가?]
[이 사람은 생각이 트이지 않았기에 이런 일을 꾸민 것이오. 그러나 이 위조서와 철상자는 둘 다 오래 전에 만들어 놓고 있었던 것 같소. 죽음에 이르러서도 이렇게 사람을 해치는 계책을 세워놓다니.......] 목인청이 고개를 끄덕이며 탄식하였다.
그리고 원승지에게 그 두 철상자를 거두라고 명했다.
[이 사람의 행위도 괴하거니와 책 또한 무익하다. 더욱이 그 위조서상에는 독이 묻어 있다니 건드리지도 말아라.]
그 뒤, 그들은 또 무술을 연마하고 바둑을 두었다. 수년이 또 흘렀다. 목상은 이미 경공과 암기의 비결을 모두 그에게 전수해 주었다. 원승지의 기예는 날이 갈수록 진보하여, 목상과 그가 대국을 하면 오히려 그에게 두 집을 주고도 원승지가 고의로 대국을 양보할 정도였다. 갈수록 힘들어 한 목상으로선 흥미가 줄어들었다. 스스로 <천변만겁기국수>라고 자칭한 별명도 이미 오래전에 부끄러워진 셈이었다. 그는 어느날 원승지에게 크게 패한 후로 바둑판을 들고 산을 내려갔다. 이때는 이미 숭정 16년으로, 원승지의 나이도 20살이 되었다.
이 10년동안 화산파에서 훈련한 원승지는 권법과 내공은 날이 갈수록 오묘하기만 했다. 세상 역시 천변만화를 거듭하였지만 백성들은 여전히 끝도 없는 환란에 시달렸다. 이때에는 해마다 수재, 가뭄등이 계속되었고 백성들은 기아와 추위에 허덕였다. 조정에서는 오히려 세금과 부역을 더욱 호되게 공출하였다. 각지에서는 군의 영웅들이 봉기하였다.
숭정 8년 정원에는 만군이 조반을 일으켜 이자성의 세력을 크게 뒤흔들기도 했다. 다음해에는 <츰왕(闖王)>이라 이름하고 성을 공격하여 관군을 계속 패하게 했다. 그 동안 목인청은 수시로 하산하였고, 다시 오르면 원승지에게 백성의 어려움을 들려 주었다. 어서 무예를 완성하여 백성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라고 격려하기도 했다. 무공을 익히는 주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원승지는 매번 숙연하게 마음을 가다듬고 되새겨 들었다. 원승지는 이미 양파의 무공을 겸비한지라, 드디어 무림에 드문 인물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10년 동안 단 한발자국도 산을 내려간 적이 없었다. 물론 강호에서는 화산파에 이러한 소년 고수가 나타났는지 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다시 시절은 초봄이었다. 원승지는 여전히 무예를 연마하고 있었다. 벙어리가 집에서 나오며 그를 향해 손짓했다. 원승지는 사부가 부르는 것으로 알고 안으로 들어갔다. 사부 곁에는 두 사람의 거한이 서 있었다. 이 화산의 꼭대기에 목상 이외에 아무도 온 적이 없었는지라, 그 두 사람을 보자 원승지는 매우 이상하게 생각했다.
목인청이 말했다.
[이분은 왕형(王兄)이고, 이분은 고형(高兄)이다. 이리와서 인사들 해라.] 원승지는 사부의 친구에게 예를 올렸다.
[왕사숙, 고사숙님.]
그 두 사람은 급히 꿇어앉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원사숙(袁師叔), 일어나십시오!]
원승지는 그들이 오히려 자기더러 사숙이라 부르는 것을 듣고 매우 이상하게 생각했다. 목인청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모두 일어나라!]
원승지가 몸을 일으키고 보니, 두 사람은 모두 농사꾼으로 분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기색은 오히려 영웅 무골의 모습이었다.
목인청이 원승지에게 웃으며 말했다.
[네가 한 번도 나를 따라 하산한 적이 없으니, 자신의 명성이 얼마나 높은지 모르고 있었구나. 너희들은 누구도 누구에게 사숙이라 부르지 말고 모두 생년에 따라 형제라 칭해라. 여기 이 왕씨와 고씨는 사형제간인데 그들의 사부는 목인청을 사숙이라 불렀었다. 하지만 무슨 사문지간(師門之間)은 아니었다.]
다만 이렇게 칭하여 그를 어른으로 존경하는 것일 뿐이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그 두사람은 원승지보다 하위인 것이었다.
목인청이 말했다.
[이 두 형은 선상봉 츰왕의 명을 받고 온 것이다. 나와 한가지 일을 상의하려는 바 있어, 나는 내일 하산할 것이다.]
[사부님, 이번에는 저도 같이 하산하게 해주십시오. 최숙부를 좀 만나고 싶습니다.]
그는 산상 생활이 정말로 무료하였으므로 몇 번이나 사부와 함께 하산하려 하였지만, 매번 허락을 얻지 못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또 허락을 구하는 것이었다. 왕과 고 두사람은 그들의 사형제와 의논할 일이 있다고 하며 물러갔다.
목인청이 비로서 입을 떼었다.
[지금 의군의 세력이 팽장하였으니, 네가 부친의 원수를 갚을 좋은 기회이다. 그동안 너는 몇 차례나 내게 승정황제를 살해하게 해달라고 원했었지만, 나는 시종 허락하지 않았었다. 너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느냐?] 원승지가 대답했다.
[그건 저의 무공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것 역시 하나의 이유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이유가 있으니, 너는 거기 앉아서 내 말을 듣거라.]
원승지가 그 말에 따라 자리에 앉았다.
[이 몇 년새에 관군의 정세가 매우 급박하고 만주인의 야심 또한 만만치 않다. 백계로써 백성들을 약탈하려 한다. 숭정은 의심이 많은 사람이다. 일을 함에도 우유부단(優柔不斷)하다. 그리고 관청에 대항하자면, 전조만력에 비해 어리석은 군주라 해도 받들어야 한다. 만약에 네가 사사로운 복수심에서 그를 살해한다면, 왕위를 이을 태자는 나이가 어리니 권력은 간신들의 손으로 들어가게 된다. 우리 한인(漢人)의 강산이 분단될까 두려운 것이다. 네 아버지가 평생 동안 청나라의 군인들과 대항하고 요동을 정벌하려는 뜻은 하늘이 주신 사명으로 알았다. 그러니 너의 불효 불충을 용서하시겠느냐?] 원승지가 사부의 말씀을 듣고, 부지중에 놀라 식은땀을 흘렸다.
[국가의 일은 크고, 사사로운 복수는 작은 것이다. 내가 너로 하여금 복수하러 가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정세가 다르고 츰왕이 계속 승리하고 1, 2년 내에 북경으로 쳐들어갈 수 있다. 츰왕은 영득하고 우애가 높으니, 그로 하여금 대국을 이끌게 하면 요동 만주인을 두려워하겠느냐?]
원승지는 핏줄이 경직되고 긴장되며 몹시 흥분했다.
목인청은 계속했다.
[보니 너의 무공이 이미 상당한 경지에 이르렀다. 비록 무학은 영원하여 끝이 없으나, 난 아는 것만 할 줄 알아도 이미 너에게 전수해 줄 것이 없다. 이후에 모든 것은 너 스스로의 노력에 달려 있다. 내일 난 산을 내려가 고와 왕과 몇 가지 처리해야 할 일이 있다. 너의 혼원공은 아직 최후의 관문을 남겨 두고 있어 빠르면 십일, 많으면 한 달에 재능이 뜻과 같이 원숙될 것이며, 관통하게 될 것이다. 하산하여선 모든 일에 분심(分心)하여 연마도 산에서처럼 안정됨이 없을 것이다. 혼원 일치하여 전신을 유주하게 되길 기다려도 조금도 지체됨이 없을테니, 너는 산을 내려가 츰왕군으로 다시 와서 나를 찾으라. 도중에 위급한 일을 만나면 반드시 손을 뻗쳐라. 의협심을 행하는 것은 우리의 마땅한 일상이다. 안분의 간난과 위협이라도 이치가 아니면 안 쓸 수 없다!] 원승지는 사부에게 하산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으니 매우 기뻤다. 목인청은 평소에 이미 본문이 규율 및 강호의 제반 금기사항, 정의를 지키는 것, 문파의 연원, 무공가들의 수를 모두 그에게 말해 주었다. 그리고 이때에 또 한가지를 택해 최후로 말했다.
[너는 사람됨이 근신 정직하므로 내가 마음을 놓는다. 단지 너의 혈기중에 <색(色)>에 관해선 조심을 해야만 한다. 얼마나 많은 대영웅호걸들이 단지 색에 실족하여 몸을 망치고 명예를 망쳤었는지, 그걸 깨닫고 반드시 기억하여 사부의 이 말을 새겨 두기 바란다.]
원승지는 사무치게 귀중한 가르침을 받았다. 다음날 아침 원승지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벙어리와 밥을 지었다. 그리고 잠시 기다려 사부방에 들어가 인사를 하려고 문을 여니 목인청과 두 분의 손님은 이미 떠나버린 후였다. 원승지는 사부의 빈 침상을 정신 나간 듯 바라보았다. 하산할 것에 생각이 미치지 그는 수화(手話)로 벙어리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벙어리는 추연히 유쾌하지 않은 듯 몸을 돌려 나갔다. 원승지와 그는 서로 같이 지낸지 10여년이다. 이미 친형제와 다름이 없었다. 그는 역시 떨어질 수 없는 정에 마음속으로 슬퍼했다. 홀연 7, 8일이 지났다. 원승지는 여전히 무공을 연습하였다. 이제 곧 산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도 애정이 안가는게 없이 안타까와지기 시작했다. 그는 침대에 누워서도 또 혼원공을 한 번 외워보았다. 체내의 모든 것들의 유주하고 순조로와 매우 기뻤다. 막 불을 끄고 자려는데 벙어리가 방으로 들어와 수화로 산에 낯선 사람이 온 것 같다고 알렸다. 원승지가 바삐 나가 살펴보니, 벙어리가 표시한 바에 대해 전후 조사를 했으나 종적이 보이지 않았다. 원승지가 의아해서 앞뒤를 살펴보았지만 과연 아무 이상도 없었다. 그는 다시 돌아와 잠이 들었다. 한밤중에 이르러, 돌연 밖에서 대위와 소괴가 이리저리 짖어댔다.
원승지가 몸을 뒤척여 일어나 귀 기울여 들으니, 돌연 일진의 달콤한 향내가 코를 자극했다.
[좋지 않아!]
숨을 멈추고 나가려니 다리에 힘이 쭉 빠져 있었다. 그건 좀체로 없었던 일이었다. 방문(房門)이 삐그덕 소리가 나더니, 문이 열렸다. 한 검은 그림자가 살금살금 들어와 어둠 속에서 칼바람을 일으켰다. 원승지는 머릿속이 어지러워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위급한 중에 버텨 보려고 하였지만, 몸이 왼쪽으로 기울어 졌다. 오른손으로 반격을 했으나 맞지 않은 채 그 사람은 다시 칼을 휘둘렀다. 원승지는 돌연 이 괴한에게 손을 찔렀다. 상대방은 그의 소리로만 모습을 짐작할 수 밖에 없었다. 왼손 바닥으로 <팍> 하는 소리를 내며 그 사람의 어깨를 쳤다. 그러나 손에도 힘이 없다. 평소의 공력이 되지 않았다. 몸이 주관대로 나가 주지를 않았다.
밖에서 한 사람이 손을 뻗쳐 잡더니 물었다.
[아직 어린애 아냐?]
원승지는 적을 쫓으려 했으나 돌연 혼란스러워서 땅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깨어 보니 몸이 부드러워져 있었다. 그러나 수족을 움직이려 하니 몹시 불편했다. 살펴보니 전신이 새끼줄에 묶여 있었다. 실내엔 등이 휘황했다. 두 사람이 도처를 뒤지고 있었다. 그는 속으로 힐책했으나 쓸모가 없었다.
(이래 가지고서야 어찌 강호에 나가 부친의 원수를 갚겠는가.) 이때 내공을 운용해 보니 여전히 여의치 못함을 느꼈다. 아직 깨어나지 않은 것처럼 가장하여 실눈을 뜨고 보니, 한 사람은 마른 체구의 40세쯤 되어 보였고 얼굴이 고약하게 생겼다.
다른 한 사람은 대머리인데 체구가 매우 컸다.
(산에 어떤 귀중한 물건이 있길래 그들이 훔치러 왔을까? 여기엔 사부가 남겨 놓은 나의 노자 50냥의 은자뿐인데. 그러나 이 두사람은 결코 일상의 도적이 아냐. 이 대머리는 무공이 결코 약하지 않은 것 같아. 만약 사부를 찾아 보복하려고 왔다면 어째서 날 죽이지 않을까? 그리고 무엇을 찾는 것일까?) 그는 은연중 공력을 운용하여 포승을 풀려고 했다. 그러나 적이 그의 무공이 강한 걸 알고 이미 그의 양손 사이에 대나무를 끼워 주었을 줄이야. 그는 힘을 써 대나무를 먼저 부수었다. 그리고 원승지는 조용히 움직였다. 손을 계속 움직이며 몸을 빼낼 계책을 생각했다.
그 대머리가 갑자기 신나는 듯 소리쳤다.
[여기 있다!]
침상 밑으로부터 커다란 철상자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금사랑군의 유물이었다. 빼빼 역시 얼굴에 희색을 드러내며 대머리와 탁자에 앉아 철로된 상자를 열었다. 그리고 한 권의 책을 꺼내 들었다. 그들은 겉면에 <금사비급>, 네 글자가 쓰여져 있음을 유심히 보았다.
대머리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과연 여기 있구나. 사형, 우리의 18년 노력이 헛되지 않았군요!] 그들은 비급을 열고 책에 그려진 많은 도형과 소글자들을 보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빼빼가 돌연 소리쳤다.
[으응? 저 친구가 도망가려 하는군!]
그는 돌연 원승지를 가리키며 외쳤다. 원승지는 깜짝 놀랐다.
대머리도 고개를 돌렸다. 그때 빼빼가 손목을 뒤집었다. <파악!> 소리가 나더니 비수로써 대머리의 등을 찍었다. 손잡이가 보이지 않게 깊숙이 꽂혔다.
그는 곧 수척을 뛰어 물러나 장검을 빼들고 문을 가로막아 섰다.
대머리는 너무나 경악하여 참담하게 웃었다.
[20명의 사형제가 18년이나 찾아 헤매다 오늘에야 너와 비로서 이 보물을 찾았는데, 네 이놈! 혼자 이익을 차지하려고 나에게 독... 수....... 하하.... 너, 너는 석량파(石樑派)조차도 배반한 거야. 그러나 다섯 분의 선배까지 속인다는 건 쉽지 않지. 내가 너를 지켜보아야 겠다. 하하.......] 정적 속에서의 비명과 웃음소리에 원승지는 전신에 소름이 돋고 명털이 모두 섰다. 대머리는 손을 뒤집어 비수를 뽑았다. 그러나 한 번으로는 충분치 않았다고 여겼는지, 그가 죽지 않았을까봐 그러는지 빼빼는 또 그의 등을 두 번이나 더 검으로 찌르고 코방귀를 뀌며 외쳤다.
[내가 너를 죽인게 아냐. 네가 날 죽일까봐 그런 건데, 무슨 겸손의 말이냐?]
그는 대머리의 시신으로 다가가 힘껏 걷어차며 투덜거렸다.
[네가 다섯의 빌어먹을...... 노선배들을 속일 수 없겠다고 했겠다. 네가 나를 지켜보겠다고?]
그는 원승지가 이미 깨어 있는 것도 모르고 축축하게 두어번 소리내어 웃었다. 그리고는 다시 불을 비추어 비급을 보기 시작했다. 그는 몸을 흔들거리며 만면에 희색을 담고 있다. 그는 몇 줄을 읽더니 몇 줄에 매달려 갸웃거리다가 손가락을 입에 대 침을 묻히곤 책장을 넘겼다. 이렇게 몇 장을 넘길 때였다.
원승지는 돌연 책에 극악한 독이 묻어 있음이 생각났다. 그가 저렇게 책을 읽으면 반드시 중독될 것이다. 부지불식간에 <아!> 하는 소리를 질렀다. 그 빼빼가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원승지의 당황한 기색을 보자 천천히 일어서 대머리 등으로부터 뽑은 비수를 쥐고 두어 걸음 다가섰다.
[너는 나하고 원수진 게 없으나 오늘 내 손에 죽어 줘야겠다!] 그의 눈이 흉악하게 빛나더니, 비수를 들어 냉소하며 덧붙였다.
[이제 너를 죽이는데, 원인도 모르고 죽을까 두렵군. 실은 너에게 말하지만, 나는 절강석량파의 장춘구(張春九)다. 우리 석량파와 금사랑군은 원수간이다.
그는 우리의 자매를 간음하고 도망쳐 어디로 갔는지 몰랐다. 우리는 십여년 동안 도처로 그를 찾았으나, 그의 유물이 이런 꼬마의 손에 있을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금사랑군은 어디있지?]
그의 시선이 창밖을 바라보는데, 그 얼굴이 공포에 질려 있었다. 마치 금사랑군이 돌연 나타날까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원승지가 강호의 경험이 있다면 금방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경험이 없으므로 이렇게 말했다.
[금사랑군은 이미 죽었어요. 그의 시체는 내가 매장했어요] 장춘구는 크게 웃으며 또 물었다.
[금사랑군이 죽었다구?]
원승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장춘구가 물었다.
[그가 어떻게 죽었지?]
원승지가 대답했다.
[난 몰라요. 정말 몰라요!]
장춘구가 냉정한 기색을 되찾더니 표독하게 외쳤다.
[이 어린 나이에 화산에 사는 걸 보면 결코 좋은 놈은 아니야. 금사랑군과 같이 있었다니 죽음을 면할 수 없겠지? 너, 보복을 하려거는 나를 찾아오너라.
나는 장춘구다. 하하, 그러나 나는 영원히 사문으로 돌아가지 않겠다. 네가 귀신이 되어 날 찾지 못할까 걱정스럽구나. 하하...!]
실성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돌연 비틀거렸다. 원승지는 위험이 목전에 당도하자 전신의 힘을 양어깨에 모으고 소리를 질러 포박줄을 끊으려 하였으나 이미 장춘구는 하늘을 향해 쓰러져 있었다. 원승지는 혹시 속임수일까봐 그의 면전에 손을 휘휘 휘두르며 바람을 일으켰다. 그의 몸이 한 번 돌더니 이내 다시 움직이지 않았다. 눈과 코, 귀, 입. 칠공(七孔)에서 검은 피가 흘러나왔다.
비로서 그가 중독으로 죽은 것임을 알았다. 바삐 포박을 풀고 나가 보니 벙어리도 묶여 있었다. 두 눈이 가려진 채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어 서둘러 포박을 풀어 주었다. 대위와 소괴가 땅에 쓰러져 있었다. 놀래서 냉수를 길어다 끼얹어 주었다. 승냥이들은 그제서야 눈을 떴다.
원승지는 수화로써 자세한 설명을 벙어리에게 해주었다. 다음날, 날이 밝기를 기다려 두 구의 시체를 뒷산으로 옮겼다. 원승지는 대철합(大鐵盖)이 사람을 해치는 물건이라 생각하여 구덩이에 던져 넣고 두 구의 시체와 함께 매장했다. 어젯 밤의 일을 생각하니 속으로 놀라웠다.
[이 두사람은 나와 벙어리를 묶고 죽이지 않았는데, 그건 금사랑군의 일을 물으려 했던 것이구나. 만약 그들이 다른 계책이 없었다면 이 구덩이에 나와 벙어리가 매장될 뻔했어.]

- 계속
원제: 벽혈검(碧血劍) / 김용(金庸)

추천 (0) 선물 (0명)
IP: ♡.75.♡.93
22,682 개의 글이 있습니다.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조회
3학년2반
2022-01-16
0
25
3학년2반
2022-01-16
0
16
3학년2반
2022-01-16
0
13
3학년2반
2022-01-16
0
16
3학년2반
2022-01-16
0
15
3학년2반
2022-01-15
0
25
3학년2반
2022-01-15
0
20
3학년2반
2022-01-15
0
19
3학년2반
2022-01-15
0
24
3학년2반
2022-01-15
0
25
3학년2반
2022-01-14
0
27
3학년2반
2022-01-14
0
22
3학년2반
2022-01-14
0
24
3학년2반
2022-01-14
0
24
3학년2반
2022-01-14
0
28
3학년2반
2022-01-13
0
29
3학년2반
2022-01-13
0
35
3학년2반
2022-01-13
0
25
3학년2반
2022-01-13
0
38
3학년2반
2022-01-13
0
27
3학년2반
2022-01-12
0
33
3학년2반
2022-01-12
0
20
3학년2반
2022-01-12
0
40
3학년2반
2022-01-12
0
33
3학년2반
2022-01-12
0
36
3학년2반
2022-01-11
0
39
3학년2반
2022-01-11
0
23
3학년2반
2022-01-11
0
42
3학년2반
2022-01-11
0
43
3학년2반
2022-01-11
0
42
모이자 모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