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碧血剑 1-5

3학년2반 | 2022.01.14 08:09:02 댓글: 0 조회: 28 추천: 0
분류무협소설 https://file.moyiza.kr/fiction/4342211

* 제 1 권 *

- 5 - 원수의 사랑

온남양(溫南楊)이 말했다.
[근 20년 전의 일이니까 내가 26살 때였어. 아버지께서는 나에게 양주로 가서 여섯째 숙부님을 도와주라고 하셨지.]
원승지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석량 온씨의 다섯 사부는 원래 여섯 형제였구나, 라고 생각했다. 온남양의 말이 이어지고 있었다.
[내가 양주로 갔었지만, 여섯째 숙부님은 만날 수가 없었지. 그런데 어느 날 밤 사건이 일어났단다.]
온의(溫義)가 냉담하게 물었다.
[무슨 사건이었는데요?]
그 물음에 온남양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사내 대장부가 감출 것이 뭐 있겠느냐? 나는 어떤 집의 아름다운 아가씨가 밤에 뜰에서 꽃을 꺾는 것을 보았지. 그런데 그녀는 다시 꽃을 꺾지 않았어.
내가 죽였기 때문이야. 그녀는 막 숨이 끊어지면서 비명을 질렀는데, 그 비명을 듣고 솜씨 좋은 무사들이 달려나와 나를 현장에서 붙잡고 말았었지.] 원승지는 그가 하는 말을 들으면서, 그는 조금도 뉘우치는 빛이 없다고 느꼈다.
온남양이 계속했다.
[그들은 나를 관청의 감옥에 가두어 버렸었지. 그러나 무섭지는 않았어. 이 일은 작은 일이 아니었으므로 세상에 점점 소문이 퍼지면, 여섯째 숙부님도 소식을 들으실 것이고, 그러면 나를 감옥에서 구해 줄 것이라고 믿었었어. 그러나 10여일이 지나도 숙부님은 오시지 않았었지. 관청에서는 나를 단칼에 베어 버리라는 명령이 떨어졌었고, 그때 나는 너무나 놀랐었지.] 청청이 경멸하듯 말했다.
[지금도 두려워하는 것 같지 않은데요?]
온남양이 그녀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계속했다.
[3일이 지난 후에 감옥 안으로 술과 고기가 들여보냈었어. 나는 내일 죽음을 당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 나는 오래 행복하게 살지 못하는 것을 애석하게 생각하고 술과 고기를 깨끗이 치우고 곧 잠이 들었었어. 한참 자고 있을 때 갑자기 어떤 사람이 나를 흔들더군. 내가 벌떡 일어나 앉자 그 사람이 내 귀에 대고 말했어. <조용히 하시오! 당신을 구하러 왔소!> 그러면서 내 손위의 수갑을 끊고 감옥 밖으로 데리고 나갔어. 그 사람은 날렵하였고, 힘도 세어 보였어. 두 사람은 성 밖으로 나와 다 쓰러져가는 사당에서 잠시 머물렀지. 그리고 그는 제단에 초와 향불을 밝혀 놓았어. 나는 그제서야 그를 똑똑히 볼 수 있었는데, 그는 키가 크고 준수한 청년이었어. 나이는 나보다 몇 살 적어 보였으나 그는 정말 미남이었어.]
여기까지 말하고 나서 그는 온의와 청청을 천천히 응시했다. 그리고 계속 말을 했다.
[나는 그 사람에게 고맙다가 인사를 했어. 그런데 그 사람은 오만하게도 인사도 받지 않고 말했어. <나는 하(夏)가라는 사람이오. 당신은 석량파의 온씨지요?> 나는 그렇다고 말하면서 그의 허리에 걸려있는 무기를 보았는데 그것은 구불구불한 것 같기도 하였으나 머리 부분이 둘로 갈라져 있는 모양이 매우 괴상하더군.]
원승지는 그것이 금사검(金蛇劍)이라는 것을 곧 알아차렸으나 내색하지는 않았다. 온남양이 계속 이야기했다.
[내가 그에게 다시 이름을 묻자 그는 여전히 냉랭한 태도로 <당신은 알 필요 없소. 그리고 앞으로는 감사할 이유도 없을 거요> 하더군. 그 당시 나는 그가 아주 이상하고 불쾌했었지만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라 그저 고맙다고 여겼었지. 그런데 그 사람이 말했어. <나는 단지 너의 여섯째 숙부 온방록(溫方錄)을 위해서 너를 구해 주었을 뿐이오. 나와 함께 갑시다!> 나는 그와 함께 강으로 가서 배를 탔어. 그는 사공에게 남사로 가자고 명령하더군. 배가 양주를 떠나 10여리쯤 갔을 때야 비로나 나는 관군이 여기까지는 쫓아오지 않은 것이라는 것을 알고 긴장을 풀었었지. 내가 그에게 말을 붙여도 그는 대답을 하지 않고 냉정하게 있다가 갑자기 속옷 주머니에게 아미검(我眉劍)을 꺼내는 거였어. 그것은 여섯째 숙부님의 것으로, 항상 몸에 지니고 있었던 것인데 어떻게 그것을 손에 쥐어졌는지 정말 이상하게 느껴졌어. 그때 그 사람이 얼굴에 살기를 띄는 것이었지. 그래서 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어. 그런데 그가 말했어. <이 상자를 가지고 너는 집으로 돌아가거라.> 그러면서 배 안의 큰 상자를 가리켰던 거야. 그것은 강철로 매우 튼튼하게 만든 것으로, 밧줄로 여러 번 감겨져 있었어. 그는 또 <길에서 머뭇거리지 말고 빨리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 상자는 반드시 너의 큰아버지가 직접 열어 봐야 한다.>라고 덧붙이는 것이었어요. 내가 알았다고 대답하자 그는 <한 달 안에 내가 너의 집을 방문할 것이니 어른들께 기다리시라고 전해라>고 까지 했어. 나는 그의 말이 믿어지지가 않았으나 그냥 알았다고 했었지 그런 말이 비치고 나서 쩔렁쩔렁 소리를 내며 4개월의 닻을 모두 내리게 거였어.]
청청이 여기까지 이야기를 듣고나서 못 믿겠다는 듯 비웃고 표정을 짓자, 온남양이 <퉤!> 하고 땅에 가래침을 뱉았다. 청청은 원래 깨끗한 성격의 소유자라, 그런 짓으로 인해 그녀가 손수 가꾼 정원이 더러워지는 것 같아 매우 기분이 나빴다. 원승지가 그대의 이런 마음을 알고 발로 가래침을 비볐다. 청청의 눈에는 그에게 감사하는 빛이 역력했다.
온남양이 계속 말했다.
[그는 나에게 무예를 자랑이라도 하듯 닻을 끌어 배에 집어던지면서 말했어. <만약 네가 내 말을 듣지 않고 몰래 상자를 열어 보물을 가진다면, 너도 이 닻처럼 만들어 버리겠어.>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은전을 꺼내 배 위에 던지면서 말했어. <여비에 쓰시오!>라고. 그리고는 대나무 막대기로 배를 밀어 떠나게 하고는 그는 번개처럼 강 언덕으로 뛰어 올라 한바탕 호탕하게 웃고는 곧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어.]
원승지는 마음속으로 <금사란 분은 호걸이로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청청은 그를 아주 칭찬하였다.
[그분은 정말 영웅호걸이로군요!. 얼마나 위엄있고 기개가 넘쳐요?] 온남양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영웅! 제기랄, 영웅은 무슨 영웅이야? 그때 그는 나를 구해 준 생명의 은인이었지만, 그가 말할때의 흉악한 눈빛은 나를 증오하고 있는 것 같았어. 게다가 그의 이사한 성격은 아무것도 개의치 않는 것 같았어. 강을 건넌 후에 나는 다른 배를 빌어서 집으로 돌아왔어. 상자를 운반하는 사람들이 모두 무겁다고 해서 나는 여섯째 숙부님이 이번에는 재물을 맣이 모으셔서 이 상자 안에 금은보화로 가득채워 놓았을 것이라고 생각했었어. 이렇게 힘들여 집으로 가져왔으니 숙부님들께서 나에게도 한몫 떼어 지시리라고 믿고 기뻐했어.
아버지와 숙부님들께서는 내가 처음 나가서 이런 일을 했으나 나쁘지 않다고 칭찬까지 하셨었지.]
청청이 옆에서 끼어 들었다.
[확실히 나쁘지는 않죠. 대갓집 규수를 죽였어도 큰 상자를 가지고 왔으니.......]
온의가 말했다.
[청청아, 가만히 있거라. 숙부님의 말씀을 계속 들어보자.] 온남양이 말했다.
[이날 밤, 대청에 불을 밝혀 놓았는데 2명의 하인이 상자를 운반해 왔었어.
아버지와 숙부님들은 중간에 앉아 계셨구. 내가 직접 밧줄을 끊고 못을 하나하나 빼냈어. 나는 그때 큰 숙부님께서 웃으시며 <여섯째가 그 집 아가씨에게 반해서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군.......>이라고 말씀하는 것을 들었어. 그리고 모두들 <무슨 보물이 나오는지 어디 보자!>라고 하신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 내가 상자의 뚜껑을 열어 젖히자 종이가 가득 들어 있었고, 종이 위에 편지가 있었어. 편지 겉봉에는 <온씨 형제가 함께 뜯어보시오>라고 적혀 있었어. 그런데 글씨가 여섯째 숙부님의 필체 같지가 않아서 얼른 큰 숙부님에게 보여 드렸어. 그는 편지를 뜯어보지도 않고 상잔에 무엇이 들었는지 보라고만 하셨지. 내가 종이를 들어내고 상자 밑바닥을 보니 큰 보따리가 나왔는데 그것은 가는 줄로 여러 번 동여 매어져 있었어. 그래서 칼로 줄을 끊고 보자기를 풀자 7, 8개의 독화살이 튕겨나온 거야.]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청청은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원승지는 그것이 금사의 평소의 수법이라고 생각했다.
온남양이 말했다.
[ 그 일은 지금 생각해도 간담이 서늘해. 거기에서 튀어나온 독화살은 여섯째 숙모님을 향해 쏘아 댔어. 숙모님은 전신을 붉은 피로 물들이며 한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만 돌아가셨어.]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난 온남양은 노한 눈빛으로 청청을 바라보았다.
[이 모두가 너의 아버지 짓이다!]
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계속 했다.
[여섯째 숙모님이 불시에 죽음을 당하자 대청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모두 일어나 웅성거리기 시작했어. 그런데 다섯째 숙부님은 이 모두가 나와 관계된 것인 줄 알고 나에게 보자기를 마저 풀게 했어. 나는 멀찌감치 서서 긴 장대로 보자기를 열었으나 독화살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어.] 여기까지 말한 온남양은, [청청, 너는 그 안에 무슨 보물이 들어 있으리라고 생각하느냐?] [글쎄요.......]
청청이 어정쩡하게 대답하자, [그 속에는 너의 여섯째 할아버지의 시체가 들어 있었어!] 순간 청청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핏기가 가시는 것이었다. 온의가 얼른 그녀를 안았다.
온남양은 그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눈을 부라렸다.
[그놈이 얼마나 악독한지 알겠지? 사람을 죽였으면 그만이지 시신을 집으로 보내 오다니.......]
온의가 물었다.
[어째서 그가 그런 짓을 했는지 말씀하지 않으셨지요?] [너는 이것이 아주 당연하다고 생각하겠지? 네 정부의 일이니....... 어떻든 네 말이 맞다고 하겠지!]
온의는 멍하니 밤하늘을 응시했다.
[비록 혼례식은 하지 않았어도 그는 내 가슴속에 남아 있는 남편이에요.] 그리고는 청청을 바로 보며, [청청아, 그때 나는 지금의 너보다 더 어렸단다. 무술을 익히는 것을 싫어하였고, 아무것도 알지 못했을 때였지. 숙부님들은 온갖 짓을 일삼아 나는 원래부터 그분들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여섯째 숙부님이 죽었어도 슬퍼하지 않았단다.]
그때 온남양이 이상하게 생각한 것은 여섯째 숙부의 무술은 무척이나 뛰어 났는데 어떻게 살해당했을까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과거 20년 전의 일이었는데도 그날 밤의 상황을 아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으며, 그 편지 속의 말도 아주 상세히 알고 있었다. 큰 숙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편지를 읽는 목소리도 덜덜 떨었음을 기억했다.

석량파 온씨 형제 귀하.
당신들의 동생 온방록의 시체를 보내오니 웃으면서 받아 주시오. 이 사람은 우리 친 여동생을 욕보인 후 죽이고, 그것도 모자라 내 부모 형제 일가족을 몰살시켰소. 나 혼자 겨우 몸을 피해 있다 이렇게 원수를 갚으려고 되돌아 온 것이오. 피의 빚은 배로 갚아야만 내 원한이 풀릴 것 같소. 그러니 장차 당신 가족 50명과 여자들 10명을 죽이거나 욕보일 터이니 주의해서 지켜보시오. 만일 이 숫자가 채워지지 않으면 사람이 아님을 맹세하면서! 금사랑군 하설의 백(白)
온의가 한숨 지으며 온남양에게 말하였다.
[오라버니, 숙부님이 그의 가족 모두를 죽였다는 게 사실이에요?] 온남양이 오만하게 눈을 치켜 떴다.
[사내 대장부가 흑도(黑道)로 들어가 재산과 여자를 훔치며 살인방화하는 일은 보통의 일이다! 여섯째 숙부님이 그놈의 여동생의 아름다움에 반해 그녀를 요구했으나 완강하게 거절당해 분풀이로 칼을 뽑아 살인을 했기로 그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 그래서 숙부님이 그의 가족을 몰살시켰을 거라고 생각한다. 당시 그 놈을 놓쳐 후환을 남게 한 것이 애석할 뿐이지.] 온의는 다시 한숨을 내뱉었다.
[남자들이 바깥에서 그런 못된 짓을 하고 다니는 걸 우리 여자들이 집에서 어떻게 알겠어요?]
온남양은 온의의 말을 무시하고 다시 이야기를 계속했다.
[큰 숙부님은 편지를 다 읽고는 하하! 하고 한바탕 웃으시고는, <이놈이 찾아 온다니 잘 됐구나. 그렇지 않으면 우리들이 찾아 나서야 할 텐데. 그 놈이 어느 구석에 숨어 있는지 알 수가 있었겠느냐?> 하셨지. 하지만 내심 신중을 기하면서 그에 대하여 자세히 알고 싶어하셨어. 그날 밤은 경계가 매우 살벌했고 한편으로는 일곱째 숙부님과 여덟째 숙부님에게 그 일을 알리기 위해 금화와 엄주에 사람을 보내셨단다.]
원승지는 속으로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말했다.
[무슨 형제가 그렇게 많아요?]
청청도 의아했는지, [엄마, 우리 집에 할아버지가 두 분 더 계시나요? 어째서 나만 모르고 있었죠?]
하고 물었다.
[그분들은 너희 할아버지의 사촌 형제들이셔. 본래 여기에서 살고 계시지 안으셨다.]
온의의 말에 온남양이 덧붙였다.
[일곱째 숙부님은 금화에서 사셨고, 여덟째 숙부님은 엄주에 사셨어. 일가이지만 다른 사람은 그리 많이 알지는 못했지. 그런데 금사란 놈이 어찌 알았는지 일곱, 여덟째 숙부님들을 도중에서 살해하고 만거야. 이놈은 신출귀몰하여, 어느 날 우리집 금과 죽수를 훔쳐갔어. 그리고는 우리집 사람들을 죽인 후에 이 죽수를 꽂아 두었지. 결국 50명이 그에게 죽음을 당했어.] 이때 청청이 물었다.
[우리 집 사람들은 백여 명이 넘는데 어째서 막아내지 못 했었나요? 그에게는 몇 사람이나 있었어요?]
[그 놈은 단신이었단다. 하지만 좀체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평소에도 어디에 숨어 있는지 조차 알 수가 없었단다. 오직 우리들 중 혼자 남아 있을 때만 나타났던 거야. 결국 큰 숙부님은 강호에 있는 훌륭한 무사를 초빙하여 하루종일 집에 계시면서 그 놈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렸고, 밖에는 방을 붙여 놈에게 정정당당히 대결하자고 했었지. 그러나 그 놈은 나타나지 않았었어. 이쪽의 사람이 많이 있으면 몸을 도사렸던거야. 한 반년이 지나자 강호의 무사들도 하나 둘씩 흩어져 갔어. 그러자 큰 방의 세 번째와 다섯 번째 방의 아홉째 숙부님이 갑자기 연못에서 익사하셨는데 몸에는 죽수가 꽂혀 있었던 거야.
그 놈은 인내심도 대단한 놈이였다. 조용히 반년을 기다린 후 때를 맞춰 이런 일을 저지른 거였어! 계속해서 십일 동안 사람들은 죽어갔어. 석량진의 관을 만드는 가게에서는 손이 모자라 구주에 가서 관을 사 가지고 와야 할 정도였어. 동네 사람들에게는 집안에 전염병이 돌아 죽었다고 했지. 온의야, 너는 이러한 악몽의 날들을 기억하고 있겠지?]
온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석량진의 모든 사람들은 벌벌 떨었고, 아버지와 숙부님들은 번갈아 순찰을 도셨지요. 그리고 여자들과 어린아이들은 모두 가운데 방에 모여 그림자만 얼씬거려도 소리를 지르곤 했었죠.]
[온남양이 몸서리를 치며 이를 갈았다.
[더 잔인한 일은 네 번째 방의 숙모님 두 분이 한밤중에 체포되어 간 일이야. 당시 우리들은 숙모님들이 잡혀간 후 살해당한 줄만 알았는데 한 달쯤 지나 두 숙모님이 양주에서 소식을 보내 왔더군. 그 놈이 술집에 숙모님들을 팔아 넘긴 거야. 숙모님들은 한달 동안 손님들을 접대했지. 넷째 숙부님은 화가 나서 그 두 여인들은 이제 필요 없다고 하시며 사람들을 시켜 그 술집과 기녀, 낭자 등을 모두 불에 태워 죽여 버렸어. 이 불로 양주의 술집 여덟 채가 불에 타 버렸지.]
원승지는 모골이 오싹해짐을 느끼며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금사랑군이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그렇게까지 했을까? 하지만 너무 심했어. 그건 그렇고 온방록은 어째서 온 집안을 쑥밭으로 만들 일을 저질렀을까? 자기의 두 며느리까지도 죽게 하다니.......)
원승지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고개를 내저었다.
온남양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게다가 사람을 더욱 미치게 하는 것은 단오절이나 추석, 설날에 편지를 보내어 아직도 몇 사람이 부족하며 여자 몇 명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었지. 석량파가 강남에서 몇 십 년을 살아오면서 그저 놈을 찢어 죽여도 분이 안 풀릴 거야. 그러나 그 놈의 솜씨가 어찌나 뛰어난지 아버지와 숙부님들은 번번이 놈을 놓치고 말았어. 우리들이 철저하게 방어하자 그 놈은 몇 개월 동안 오지 않다가 조금만 마음을 놓으면 어김없이 일이 벌어지곤 했어. 모두 어쩔 도리가 없었어. 2년 동안 놈한테 살해당한 사람이 무려 38명이었어. 청청아, 어디 한 번 말해 봐라. 우리들이 그 놈을 증오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를.......]
청청이 힘없이 말했다.
[그 후에는 어떻게 됐어요?]
[너의 어머니한테 말씀해 보라고 해라!]
그러자 온의가 원승지를 바라보며 초연하게 말했다.
[그의 시신을 원상공이 묻었지요. 그러니 그때의 상황을 우리 모녀에게 이야기 해 주세요. 우리 두 모녀가 알아듣도록. 그럼.......] 그녀는 목이 메이는지 한동안 말을 하지 못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때 나는 그를 왜 그렇게 증오했는지 알 수가 없었고 상상할 수도 없었다. 아버지는 우리들이 대문 밖으로 나가는 것을 절대로 허락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나는 매일 정원에서 놀 수 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그나마 오라버니들이 없으면 정원에도 못 나가게 하셨단다. 대낮에도 말이야. 그런데 춘삼월 어느 날, 유채화 향기가 창문 틈을 비집고 들어와 진동을 하는 바람에 나는 산 언덕으로 꽃을 보러가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지 뭐냐. 하지만 금사랑군 때문에 꼼짝할 수가 없었어. 금사랑군은 그렇듯 좋은 날씨에 우리를 방안에 가두어 놓았단다. 나는 혼자서라도 빠져 나갈까 했었지만 아버지의 무서운 얼굴이 떠올라 감히 나갈 수 없었단다. 그날 오후, 나와 두 번째방의 셋째 여동생과 다섯째 숙모와 남양오라버니와 천패오라버니, 이렇게 우리 다섯 명은 정원에 나와 놀았었지. 그때 나는 그네를 뛰고 있었단다. 점점 높이 올라가면서 멀리 담장 밖을 바라보니 연한 버드나무와 만발한 살구꽃이 나를 기쁘게 하더구나.
그때 천패오라버니가 이상한 소릴를 지르며 쓰러지자, 나는 깜짝 놀라 뒤돌아 보니 그의 흉부에 그 사람의 금사추가 꽂혀 있었어. 천패오라버니는 금세 죽어버렸단다. 그리고 내 기억에 남양오라버니는 금방 방으로 뛰어들어가 몸을 피하고 우리들 세 명의 여자들만 바깥에 남겨 두었었지.] 온남양은 얼굴을 붉히며 변명했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그를 대적할 수 없었기 때문에 원병을 청하러 간 거였어.]
[나는 그때까지도 무슨 일인지 알지 못했단다. 단지 담에서 어떤 사람이 뛰어 내려와 그네가 있는 곳에 서더니 그걸 멈추게 하고 내 허리를 안으려 하길래 발버둥을 쳤단다. 그는 한 손으로 나를 안고 다른 손으로는 담장 밖에 있는 나뭇가지를 잡아 당겨 가볍게 나를 담 밖에 내려놓았단다. 나는 너무 널라 그의 얼굴을 마구 때렸지. 그는 한동안 얻어맞고 있다가 갑자기 내 어깨를 꼬옥 잡았어. 그러자 온몸의 힘이 쭉 빠져 조금도 움질일 수가 없었단다. 단지 뒤에서 많은 사람들이 외치며 따라오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어. 그런데 그 소리는 점점 멀어질 뿐이었어. 그는 나에게 음흉한 미소를 짓더군. 그때 나는 두 숙모님이 생각나서 수모를 당하느니 깨끗이 죽어야겠다고 결심하고 바위에 머리를 부딪쳤어. 그런데 그가 내 등을 잡는 바람에 죽을 수도 없었단다.] 이렇게 말하면서 온의는 이마를 가리켰다. 원승지는 머리에 가려져 있는 상처를 보면서 당시 상당한 중상을 입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온의가 긴 한숨을 몰아쉬면서 계속했다.
[만일 그때 나를 죽게 내버려뒀으면 그 사람도 그 지경은 되지 않았을 거야. 그 일이 그에게 해를 입힐 줄 누가 알았겠니? 한참 후에 깨어나 보니 내 몸에 담요가 덮여 있었어. 소스라쳐 담요를 걷어 보니 옷이 그대로 입혀져 있길래 다소 마음을 놓았단다. 내가 죽으려 하니까 그가 선심을 발휘한 거라고 생각이 들더구나. 나는 두 눈을 꼭 감고는 그대로 누워 있기로 했단다. 그는 내가 다시 죽으려고 할까 봐 이틀 밤낮을 나를 지켜보고 있었단다. 그리고 간간이 말을 걸더구나. 하지만 나는 대답도 하지 않았어. 그는 음식을 가져와 나에게 먹이려고 했으나 나는 울기만 했을 뿐 아무것도 먹지 않았단다. 나흘째 되는 날, 그는 개가 굶어 죽을 것 같았는지 고기죽을 끓여 와 나에게 먹어 보라고 하더군. 내가 거들떠보지도 않자, 갑자기 내 코를 비틀어 붙잡고 억지로 내 입속에 국물을 넣었단다. 이렇게 강제로 반쯤 먹이고 있을 때 그의 손이 가벼워진 점을 느낀 나는 입에 물고 있던 뜨거운 국물을 그의 얼굴에 뱉아 버렸어. 일부러 그를 화나게하여 빨리 죽이도록 하고 싶었던 심정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는 화를 내기는 커녕 오히려 웃으면서 옷소매로 얼굴의 국물을 닦았단다. 그리고는 멍청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다가 길게 한숨을 짓더군.] 원승지와 청청은 서로 바라보다가 그녀가 먼저 고개를 돌렸다. 온의의 말이 이어졌다.
[그날 밤, 그는 동굴 입구에 기대어 앉아 내게 말을 걸어왔다. <내가 노래 한 곡 불러 줄까?> 그러나 내가 <듣고 싶지 않아요>라고 하자 그는 벌떡 일어나 내게 다가오더군. 그리고는 <나는 네가 벙어린 줄 알았는데 말을 할 줄 아는군> 하지 않겠니? 그래서 내가 <누가 벙어리야? 살인마와 말을 하고 싶지 않을 뿐이지!> 하며 욕설을 퍼부었단다. 그러자 그는 아무말 않고 동굴 입구로 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더군. 그는 달이 떠오를 때까지 끊임없이 노래를 불러 댔어.]
이때 온남양이 큰소리로 빈정거렸다.
[너는 그를 두려워하면서도 한편으로 그의 노래를 경청했겠군. 누가 너의 그런 뻔뻔스러운 이야기를 들어줄까봐?]
온남양은 몸을 돌려 성큼성큼 정자 밖으로 걸어 나갔다.
[엄마, 계속하세요.]
청청의 말에 온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나는 비몽사몽간에 잠을 잤단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일어나 보니 그가 보이지 않기에 얼른 동굴 밖으로 나왔단다. 그런데 그 동굴은 산 꼭대기 가파른 곳에 있는데다 길도 없고 험하여 경공이 뛰어난 사람만이 겨우 내려갈 수 있는 곳이었어. 정오쯤 되었을 때, 그가 돌아와 나에게 비녀며 연지 등을 주더구나. 나는 그런 것들을 골짜기에다 몽땅 던져 버렸단다. 하지만 그는 그전처럼 화도 내지 않았고, 밤에는 또다시 노래를 불러 주었단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병아리새끼, 고양이, 거북이 등을 가지고 왔더군. 그는 내가 감히 살아있는 동물들을 버리고 도망가지는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는, 하루종일 고양이를 어루만지고 병아리에게 먹이를 주면서 저녁에는 계속 노래를 들려 주었어. 나는 동굴에서 잠을 잤고 그는 한발자국도 동굴 속으로 들어오지 않았단다. 나는 그가 나를 범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마음을 놓고 겨우 음식을 먹었었지. 거의 한달이 넘도록 나와 그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데도 그는 시종 나에게 부드럽게 대해 주었어. 부모님도 나를 그렇게까지 잘 대해 준 적은 없었단다. 다시 며칠이 지난 어느날 그가 갑자기 엄악한 얼굴로 나를 쳐다 보더군. 나는 무서워서 그만 울어 버렸어. 한동안 나를 쳐다보던 그는 측은했던지 나를 달래더구나. 그날 밤 나는 그의 울음소리를 들었단다. 아주 슬프게 흐느껴 울더군. 얼마 후, 비가 오기 시작했는데도 그는 여전히 동굴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단다. 나는 할 수 없이 그 사람에게 동굴 안으로 들어와 비를 피하라고 했단다. 그러나 그는 들은 체도 하지 않더군. 나는 그에게 왜 우느냐고 물었지. 그러자 그가, <내일이 아버님과 어머님 그리고 형님 동생의 제사야. 내 가족이 너의 집 사람한테 살해당한 날이란 말이야. 내일 나는 너의 집 식구 한 사람을 죽여 원수를 갚아야 하는데 경계가 너무 엄하단 말이야. 그들은 공동파의 이졸 도사와 십방사의 청명선사를 불러와 도움을 청하고 있어. 그 두 사람은 무예가 뛰어나지. 그러나 나는 여기서 물러나진 않을거야>
하고는 이를 악물고 비를 맞아가며 산 아래로 내려갔단다. 다음날 저녁이 되어도 그는 돌아오지 않더군. 나는 걱정이 되어 은근히 그가 무사하게 돌아오기를 기다렸단다.]
여기까지 듣고 청청은 몰래 원승지의 눈을 쳐다보며 그에게 경멸하는 기색이 있는지 없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는 아주 공손하게 앉아 정신을 집중시켜 듣고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나는 몇 번이나 산 아래를 내려다 보았단다. 그때 한쪽 산봉우리에서 네 명의 그림자가 서로 몸을 날리며 다가오는 모습이 보이더군.
나는 자세히 눈여겨 보았었지. 제일 먼저 오는 사람이 바로 그였고 뒤에 쫓아오는 사람은 도사였으며, 나머지 한사람은 스님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사람은 아버지였단다. 그의 손에는 금사검이 들려 있었는데, 한편으로는 치며 한편으로는 피하면서 한참을 싸우다 스님의 지팡이가 획하고 옆을 스치자 그는 피할 방법이 없었는지 몹시 당황해 했어. 시급한 마음에 내가 큰 소리를 지르자, 그는 그 틈에 금사검으로 스님의 지팡이를 두동강을 내버렸어. 아버지는 내 소리를 듣고는 곧 나에게 뛰어 올라오셨단다. 그러자 그는 양검으로 스님과 도사를 비키게 하고 아버지를 추격하더군. 이렇게하여 아버지는 내 앞으로 달려오고 그는 중간에, 도사와 스님은 뒤에서 쫓아 왔어. 그는 아버지를 추격하면서 그나 내 앞으로 오지 못하게 하더군. 몇 차례 서로 싸우는 사이에 도사와 스님이 도착했고 아버지는 틈을 내어 나를 향해 기어 올라오셨단다. 이윽고 네 사람이 모두 내가 서 있는 산봉우리에 도착, 나는 너무나 기뻐서 큰소리로, <아버지, 빨리 오세요!>
라고 외쳤단다. 이때 그는 미친 듯이 칼을 휘두르며 아버지를 계속 물러서게 하더군. 아버지가 대항하지 못하고 쩔쩔맬 때 스님과 도사고 왔었지. 아버지가 소리치면서, <얘야, 너 괜찮니?>
하고 물으셨단다. 그래서 나는, <저는 괜찮아요. 아버지, 염려 마세요>
하고 소리쳤단다. 그러자 아버지가, <그래 먼저 이놈을 처치하고 난 다음에 보자꾸나>
하셨어. 세 사람은 다시 그를 에워싸더군. 그중 도사가 말하기를, <우리들 공동파와 너와는 아무런 원한도 없다. 그러나 네가 무례하기 때문에 이렇게 화해시키러 왔다. 나는 누구도 돕지 않으며 만일 네가 이 시간 이후에 온씨 일가를 괴롭히지 않겠다고 약속한다면 즉시 돌아갈 것이다.> 그가 외쳤단다.
<부모와 형제의 원수는 이대로 놔두란 말이냐!>
라고 하기에 스님이 다시 말했단다.
<너는 이미 많은 사람을 죽였으니 그걸로서 충분하지 않으냐? 이제 우리 두 사람의 체면을 봐서라도 여기서 그만둬라!>
그런데 갑자기 스님을 향해 칼을 휘두르는 바람에 네 사람은 다시 싸우기 시작했단다. 도사의 병도는 약간 이상했지만 무공은 뛰어나더라. 그런데 스님이 지팡이를 휙! 하며 무서운 소리를 내더군. 그는 점점 힘이 빠지고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갑자기 비틀거려 쓰러질 번했단다. 스님의 지팡이가 그의 옆구리를 치자 그는 비키면서 내 얼굴을 보더군. 그가 나중에 말하기를 그때 그는 이미 온 힘이 다 빠져 지쳐 버렸대. 그런데 내가 그에 대한 관심있는 얼굴을 보고는 힘이 생겨서인지 검은 점점 빨라지더군. 시간이 흘러 산골짜기에서는 안개가 피어오르고 안개 속에서 그는 반짝이는 검이 보이더군. 그때 그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 왔었지.
<온아가씨, 두려워하지 말고 나를 보세요!>
하더구나. 이어 스님의 비명 소리가 들리면서 산 아래로 굴러가는데 머리엔 금사추가 꽂혀 있었다. 아버지와 도사가 깜짝 놀라는 순간, 그는 다시 아버지를 향해 칼을 휘두르더군. 도사가 틈을 타 그 뒤를 공격하니, 그는 갑자기 큰 소리를 내며 왼손가락 두 개로 도사의 눈을 공격했어. 도사가 머리를 낮추며 피하자 그의 검은 도사의 머리를 두동강 내고 말더군.
이때 청청이 <아!>하고 소리를 질렀다.
온의가 말했다.
[그는 검을 되돌려 받아 아버지를 찌르려 했지. 아버지는 무공이 뛰어난 두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 겁에 질려 버리고 말았어. 나는 동굴 안에서 뛰어나와 소리치며, <멈춰요, 멈춰요!>
라고 하자, 그는 내 말을 듣고는 공격을 멈추더군. 그래서 내가 말하기를, <이분은 나의 아버지에요>
하자, 그는 아버지를 원망스럽게 쳐다보면서 말하기를, <어서 가십시오. 당신의 생명을 용서해 주겠소!>
하더군. 이 말에 아버지는 뜻밖이라 생각하며 몸을 돌려 뛰어 가셨어. 이런 일이 있고 난 뒤부터 나는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고, 좀전의 싸움으로 놀란데다 아버지를 놓아주는 것을 보고 매우 기뻐 곧 쓰러지고 말았어. 그는 급히 나를 부추겼고, 나는 그의 어깨를 쳐다보았지. 그는 정성껏 내가 상처를 입지 않았는지를 보는 사이 뜻밖에도 아버지가 습격을 해 오셨어.
<조심하세요!>
라고, 나는 황급히 말하자 그는 멍한 상태에서 피하려 했으나 이미 피할 수가 없어 머리와 등에 한 대씩 맞았지. 그는 철봉을 빼들어 산골짜기로 던져 버리고 두 손으로 아버지를 치더군. 아버지는 저항하지 못하고 눈을 감고 죽이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어. 그가 나를 쳐다보며 한숨을 쉬고는 아버지에게 말하였지.
<얼른 가시오! 내가 다시 마음이 변하면 당신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오!> 아버지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산 아래로 내려가셨어. 그의 등은 아버지의 공격을 받고 심한 중상을 입었어. 아버지가 돌아 가신 후, 한 모금의 붉은 선혈을 내 옷에 뱉더군.]
잠잠이 듣고 있던 청청이 <흥!> 하며 말했다.
[할아버지는 참으로 뻔뻔스럽군요. 상대가 도저히 대항할 수 없으니까 등뒤에서 습격을 가하다니!]
온의가 한탄하며 말했다.
[그는 우리 집의 대원수요, 우리집 식구 몇십명을 죽였는데도 그가 포위당하자 나는 그를 도와주었단다. 이것이 전생의 업보가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그는 비틀거리며 동굴로 들어가 주머니 속에서 약을 꺼내 먹고 계속 피를 토해냈어. 나는 놀라서 울 뿐이었어. 그는 비록 상처를 입었어도 얼굴은 오히려 기쁜 표정을 짓고 묻기를, <왜 우시오?>
하길래, 나는 울면서 말하길, <당신이 심하게 상처를 입었잖아요>
하자 그는 웃으며 묻더군.
<그대는 나를 위해 우는거요?>
나는 그 말에 대답도 못하고 아주 슬퍼할 뿐이었단다. 한참 후에 그가, <예전에 우리 가족이 그대 여섯째 숙부에게 살해당한 후 지금까지 한 사람도 나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소. 나는 오늘 그 애의 사촌 오라버니를 죽임으로써 지금까지 모두 40명을 살해했소. 원래는 아직도 열 명을 더 죽여야 하지만 그대의 눈물이 이제 살해를 그만두게 했소.>
이렇게 말하기에, 나는 울기만 할뿐 아무말도 하지 않았었지.
<그대 집 여인들도 이제 그만 해치겠소. 내 상처가 완치되면 그대를 집으로 돌려보내겠소.>
그는 그렇게 말했지. 나는 그 말에 마음은 말 할 수 없는 그 무엇으로 기쁨이 가득 찼고, 단지 그가 앞으로는 살인을 그만하겠다고 결단을 내린 것만으로도 기뻐했었지. 그러나 그의 지치지 않은 객혈로 어떤 때는 거의 죽은 듯이 비몽사몽간에 <엄마>를 부를 뿐이었다. 어느 날 그는 하루종일 기절해 있었는데 저녁 때가 되어도 눈을 뜨지 않자 나는 두 눈이 퉁퉁 부어오르도록 울었다. 그런데 그가 갑지가 눈을 뜨고 웃으면서, <걱정 마시오. 나는 죽지 않습니다.>
그렇게 말하였지. 이틀이 지나자 과연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어. 어느 날 밤, 그는 나에게 말하길, <내가 회복하기 전에 이 막대기로 때려죽이지 않고 나를 치료해 주다니....
정말 고맙소.......>
라고 하자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단다. 그가 죽은 후 나를 생각해 보니 이 높고 험한 산봉우리에서 내려가지도 못하고 나를 구하려는 사람도 그가 무서워 올라오지도 못해 만일 그가 살지 않으면 안되겠다 싶었지. 그는 나를 위해 어떤 방법으로든 살아가겠다고 생각한 거였어.]
청청이 말을 가로챘다.
[엄마! 그가 그처럼 엄마에게 잘해주다니 정말 그는 양심이 있는 사람이군요!]
사납게 원승지를 한 번 바라보며 그녀가 말했다. 원승지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온의가 또 말했다.
[그후, 그의 몸은 점차 회복되어 나에게 그가 어렸을 때 그의 부모 형제자매와 같이 뛰어 놀던 일, 그를 사랑해 주었던 일 등을 이야기 해주었단다. 한 번은 병이 났는데 그의 어머니가 삼일 밤낮을 꼬박 새우며 그의 침상을 지켜 줬다고 그러더구나. 그 날밤 여섯째 숙부가 그들 가족 모두를 살해할 줄 어찌 알았겠니? 그때 내가 생각하기에 그의 손은 비록 흉악무도하지만 그 가족들 이야기를 할 때는 마음이 참으로 착하고 유하다고 생각했단다. 그는 꽃으로 수놓고 붉은 두아([肉+土]兒)를 꺼내어 내게 보여주며 말하길, 그의 돐때 어머니가 수놓은 것이라고 하더라.]
그녀가 여기까지 말하고 품속에서 어린아이용 두아를 꺼내어 탁자 위에 펴놓았다. 원승지가 빨간 비단에 하얀 비단으로 수 놓아진 발가벗은 어린아이가 파초 잎사귀 위에 있는 모습을 보고 통통한 어린아이의 모습이 귀엽다고 느꼈다. 수놓은 솜씨는 훌륭했고, 그의 어머니가 얼마나 정성껏 수를 놓았는지 가히 상상할 수 있었다. 원승지는 어렸을 때 어머니가 안 계셔서 이 두아를 보며 자기 앞날을 생각하고 씁쓸해 했다. 온의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는 항상 노래를 불러 주었단다. 또한 나무로 조그만 개나 말의 인형을 만들어 주며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여자아이 같다고 하더군. 이후 그의 상처가 깨끗이 나았고, 나는 그가 점점 상심해 하는 것을 보고는 참을 수가 없어 그 원인을 물었었지. 그는 나와 차마 헤이질 수 없다고 말하더군. 그래서 내가 말하길, <그럼 내가 여기서 당신과 함께 살지요. 어때요?>
했더니 그는 아주 기뻐하고 크게 소리치며 산봉우리에 있는 두 그루의 큰 나무에 뛰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더군. 마치 원숭이가 재주를 부르며 좋아했단다. 그가 나에게 말하길 그는 지도 한 장을 얻었는데 큰 보물이 있는 곳을 알 수 있다고 했으며 거기엔 금은보화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고 하더군.
들리는 말에 의하면 옛날 연왕이 왕위를 찬탈할 때 북경에서 남경까지 쳐내려 왔는데 건문환제가 급히 도망하면서 창고안의 보물들을 남경의 어떤 지방에 숨겨 주었다고 하더군. 연왕이 왕위를 이은 뒤, 남경 전체를 다 뒤져도 찾을 수가 없어 그는 삼보태감을 몇 차례 남양에 파견시켰는데, 하나는 건문황제의 흔적을 찾는 것이었고, 둘째는 이 진귀한 보물을 찾기 위해서였다더군.] 원승지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때 금사비급에서 발견된 지도가 바로 보물 지도임에 틀림없었군.) 온의가 계속 말했다.
[성조황제때도 이 지도를 찾지 못했는데, 그로부터 몇 십 년후 뜻밖에도 그가 이 지도를 찾았다는 거였어. 그러면서 그는 보물을 찾으러 떠나면서 나를 집으로 보내 줬단다.]
그녀가 여기까지 말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을 했다.
[그는 나와 헤어질 수가 없었고 내 마음 또한 헤어지기 싫었단다. 그러나....
그러나.... 결국 이렇게 헤어지게 되었단다. 내가 집에 돌아오자 모두 나를 경멸하며 나는 너무 괴롭고 화가 났단다. 그들은 본래 자기의 딸 하나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으면서 내가 청결하게 돌아왔는데도 모두들 오히려 나를 멸시했으니....... 나도 그들과 더 이상 말도 하지 않았단다.] 청청이 말을 받았다.
[엄마, 엄마가 옳아요! 엄마가 뭘 잘못했어요?]
온의가 다시 말을 이었다.
[내가 집에서 삼개월째를 보내던 어느 날 밤, 갑자기 창가에서 노래소리가 들려왔단다. 듣자마자 나는 곧 그가 누구라는 것을 알았지. 급히 창문을 열고 그가 들어오도록 했지. 우리들은 너무 기뻐 어쩔줄 몰라하면서 그와 함께 밤을 세웠단다. 나는 이날 밤, 아이를 가지게 되었단다. 그것은 내가 원하던 바였으며 오늘날까지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은 없단다. 다른 사람들은 그가 강제로 했다고 하지만 그것은 틀린 말이야.]
그러면서 청청이를 쳐다보고는, [청아, 너의 아버지는 나에게 너무 잘해 주셨고, 우리 둘 사이는 은혜와 사랑으로 가득했단다. 그는 시종 나를 존중해 주었고 한 번도 나에게 강제로 요구하진 않았단다.]
원승지가 속으로 그녀의 용기에 탄복하며 그녀의 이야기를 깊이 새겨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처지가 처량함을 금치 못했다.
청청이 갑자기 낮은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남쪽에서 온 한 마리 기러기, 짝을 이룬 것도 있고 홀로 있는 것도 있네.
짝을 이룬 기러기는 세상을 얻은 듯 기뻐하며 지저귀고, 외로운 기러기는 뒤에서 처져 날을 수도 없어라. 짝 이룬 기러기 보지 말고 외로운 기러기만 보면 그대 처량함 나의 신세와 같구나! 그대 외로운 모습 생각하면 나의 신세와 같구나!]
아주 고아하고 슬픔에 가득찬 목소리로 노래를 다 부르자 온의가 청청에게 말했다.
[그것은 너의 아버지가 나에게 불러 주던 노래란다. 이 아이가 어려서 내 뱃속에 있을 때부터 이 노래 가락을 듣더니 어느새 외워 버리고 말았구나.] 원승지가 그때 말했다.
[지금 그 분은 이미 보물을 찾았습니까?]
[그는 아직 찾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이미 그 실마리를 풀었다고 했어요. 나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보물 찾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았었대요. 그가 보물 이야기를 할 때 나도 그냥 건성으로 들었을 뿐이야. 우리들은 다음날 아침 일찍 이곳을 몰래 빠져나가자고 약속했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고 말았어. 이튿날 아침, 날이 밝기도 전에 나는 옷가지를 다 챙기고 아버지에게 편지를 남긴 채 떠나려고 하는데, 홀연히 어떤 사람들이 문을 두드렸단다. 방문을 확 열더니 들어오는 사람들은 바로 아버지와 백부와 둘째 숙부, 세 사람이었단다. 빈손으로 무장도 하지 않고 긴 도포를 입고 웃음 띤 얼굴을 한 세 사람의 모습을 보고 의아해 했단다. 아버지가 말씀하시길, <너희들의 일을 나는 모두 알고 있다. 이 또한 전생의 인연이지. 지난번 자네가 나를 살려줘 나는 자네의 온정을 받았으니 둘의 결혼으로 친가를 맺어 다시는 칼을 들지 않도록 하세!>
하고 하시더군. 아버지는 그가 또다시 사람을 죽일까 봐 두려워하는 눈치였어. 그는 나를 한 번 바라보고는 아버지를 향해 말했지.
<걱정 마십시오. 저는 일찍이 당신 따님에게 다시는 사람을 죽이지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
아버지가 다시 말했어.
<몰래 도망가는 것은 안되네!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 정식으로 예를 올려야 하네!>
그는 고개를 저으며 믿을 수 없다고 했었지. 아버지가 말했어.
<그 아이는 나의 외동딸일세! 절대로 다른 사람과 몰래 도망가세 할 수는 없네. 만일 그러면 평생 동안 고개를 들지 못할 걸세!> 그는 아버지의 말씀이 맞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아버지에게 속임을 당할 줄이야......!!]
원승지가 입을 떼었다.
[어르신께서 그를 속인 것이 사실입니까?]
온의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아버지는 그를 사랑채에서 쉬게 하고 결혼식을 준비했었지. 그런데 그는 끝내 믿지 않고 집에서 준 술과 안주 등 온갖 음식을 먼저 개에게 먹인 다음 아무 일없으면 먹고 했었지. 저녁에는 음식을 내버리고 석량진에 가서 사다가 먹더군. 어느 날 밤 어머니는 연자탕을 한그릇 가져와서 내게 말하길, <이것을 너의 남편에게 먹여라!>
하시더군. 나는 어떤 영문인지도 모르고 어머니가 그를 참으로 아끼고 사랑한다고만 생각하여 기쁘게 받아 방으로 가져갔었지. 그는 내가 손수 가져온 것을 보고는 즐거워하며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한 모금 마셨단다. 그리고 나와 얘기를 하려다 갑자기 얼굴색이 변하며 일어나 큰 소리로 말하길, <아니! 그대 마음이 이리도 지독하오!>
하길래 난 깜짝 놀라서 왜 그러느냐고 물었었지. 그런데 그는, <그대는 왜 나에게 독약을 주는거요!>
하더구나. 당시 금사랑군이 얼마나 분노하고 있었는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어.......]
원승지와 청청은 이 말을 듣고 모골이 송연해 졌다. 온의는 눈물이 솟다 다시 말을 잊지 못했다. 잠시 적막이 흘렀다. 홀연 정자 밖에서 껄껄하는 괴상한 웃음소리가 들려 와 세 사람은 황급히 고개를 돌려보니 거기에 온씨 5형제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오고 있었다. 뒤에는 삼십 여명이 따르고 있는데 손에는 모두 무기를 쥐고 있었다. 그중 온방산이 큰소리로 외쳤다.
[온의야, 너는 너의 부끄러운 일을 남들이 다 알도록 이야기하다니, 이 무슨 꼴이냐?]
온의는 얼굴이 붉어지며 대답하려 하다가 그냥 참고는 고개를 돌려 원승지를 바라보았다.
[십년 동안 난 아버지와 말 한마디하지 않았어요. 이후에도 난 영원히 말하지 않을 거야. 나는 일찍이 이 집에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었으나 내겐 청청이 있으므로 딴대로 갈 수 있겠어? 나는 항상 그가 아직 죽지 않고, 어느 날 다시 나를 찾으러 올 것으로 믿고 있어. 그때 만약 내가 이곳을 떠나고 없으면 그가 어떻게 나를 찾을 수 있ㅇ어? 그가 이미 죽었다면 나도 아무런 걱정이 없겠지만. 나는 그들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엥요. 당신은 두려우세요?] 원승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않고 그대로 있자 청청이가 얼른 말을 받았다.
[승지오라버니는 두렵지 않으세요?]
라고 물었다. 온의가 말했다.
[그럼 다시 말을 계속 하겠어요.]
온의는 목소리를 높여 계속했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때 방문으로 사람들이 쳐들어 왔단다.
많은 사람들이 칼과 창을 들고 진격해 왔었단다!]
그녀가 정자 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당시 방문 밖에 서 있던 사람이 바로 이분들이에요. 그들은, 그들은... 손에 모두 암기(暗器)를 지녔었어. 아버지는 아직도 나에게 부녀의 정이 남았는지 나만 빨리 나오라고 소리치셨어. 나는 내가 나가게 되면 그들은 즉시 암기를 사용해 그를 죽이려고 한다는 것을 알았지.
<나는 나가지 않겠어요. 우리 같이 죽이면 되잖아요!> 나는 그이 앞을 가로막으며 마음속으로는 오직 그를 보호해야겠다는 일념 밖에 없었어. 나는 정말로 그를 다치지 않게 하고 싶었어. 그런데 그는 이마를 찌푸리며 의자에 앉아 저들과 내가 한통석이 되어 독을 탔다고 생각하며 섭섭해하고 있었지. 반항하지도 않고 그저 말을 듣고 있다가 갑자기 일어나 기쁜 마음으로 말하길, <그대는 연자탕 속에 독이 있는 줄 몰랐었구려!>
나는 그 말을 듣고 들고 있던 국물을 마시면서, <나도 당신과 같이 죽을 거에요!>
하고 했었지. 그러자 그는 얼른 그릇을 떨어뜨렸으나 국물은 이미 마셔 버린 뒤였어. 그가 웃으며 말하길, <이런 비겁한 수법을 쓰다니, 너희들은 수치심도 모르느냐?> 그러자 백부님이 노하며 말하길, <누가 독을 탔다는 거냐? 독을 넣은 것은 영웅호걸이 아니다! 너 스스로 잘났다고 한다면 어디 나와서 한 번 대결해 보자!>
그러자 그는 <좋다!> 하고는 곧 밖으로 나가 그들 5형제와 싸웠어. 그가 큰 소리로 말하길, <연자탕에 비록 독약은 없지만 온씨 집안의 비약인 취선밀(醉仙蜜)을 넣었다. 이것을 마시면 천천히 온 몸의 힘이 빠지면서 죽은 듯이 잠을 자게 되는데 하루 밤낮을 지나서야 비로서 깨어난다. 이 사람들은 아직 나를 죽이려고는 하지 않고 정신이 혼미해지면 나에게 시달림을 주겠지. 그런 너희들이 영웅호걸이냐?>
<이 무례한 놈은 일찍이 죽였어야 되는데 그녀의 도움으로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 그런데 오히려 은혜를 원수로 갚으려 하다니!> 그러자 이번에는 온방시가 노하여 그렇게 말했지.]
청청이 말했다.
[어머니는 십여년 동안 온씨 집에서 먹고 잤으니 네 명의 할아버지로부터 많은 금은보화를 받기도 했어요. 그러나 어머니는 온씨 집안에 빚진 것은 이미 다 갚았어요!]
그러자 온방달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 가문의 추한일을 알리게 하고 싶지는 않다고 하면서 말했다.
[원공, 너는 우리 5형제와 대결할 수 있느냐, 없느냐?] 원승지는 지금까지 온의의 말에 그들의 음모에 분개하며 말했다.
[흥, 다섯 사람이라고 말하지 마시오. 당신들은 열 사람이 함께 덤벼들겠지.
그러나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겠소?]
이에 대해 온의가 웃으며 말했다.
[그날 밤, 그들 5형제는 능히 그 한사람을 당해 낼 수가 없었기에 그에게 취선밀을 먹인 후 힘이 빠지면 오행진을 만들어 비겁하게 5형제가 그 한사람과 대적하려고.......]
온의의 아버지인 온방인이 큰 소리로 말했다.
[의야, 네가 우리 집에서 밥을 먹으면서 그렇게 가문의 비밀을 누설하려고 하느냐?]
온의가 아버지의 말에 개의치 않고 원승지를 향해 말했다.
[그는 급히 다섯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을 쳐서 오행진을 파괴했으나, 비틀거리며 싸울 수가 없었지요.
<당신은 빨리 피하세요. 나는 당신을 영원히 잊지 않을거에요!> 내가 소리치며 그를 불렀지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는 마치 그날 밤처럼 소리를 질렀다. 청청이 깜짝 놀라서 어머니를 불렀다.
원승지가 말했다.
[숙모님, 방으로 가서 좀 쉬세요. 내가 어르신과 이야기를 나눈 뒤 내일 다시 뵙겠습니다.]
그렇게 말하자, 온의는 그의 소매를 붙잡고 애원했다.
[안돼요, 안돼. 내 마음속에 19년 동안이나 쌓인 매듭을 오늘 풀지 않으면 안돼요. 원상공, 내 말 좀 들어주세요.]
원승지는 그녀 말속에 울음이 섞여 있음을 알고 고개를 끄덕였다.
온의는 여전히 그의 소매를 꼭 잡고 있었다.
[그들은 그의 목숨을 노렸어요.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돈이었어요. 그는 그들과 한판 싸우더니, 상처를 입고 견디지 못하고 쓰러져 결국... 결국 잡히고 말았지요. 내가 그이 곁으로 가려고 하자 어떤 숙부님이 나의 발을 걸었어요. 그들은 그에게 보물지도를 내놓으라고 했으나 그는 그 지도는 내게 없으니, 누가 나와 같이 가져오자고 했어요. 그들은 그의 몸을 샅샅이 뒤졌지만 결국 지도는 나오지 않았어요. 이렇게 해서 그들은 그를 놔 주었어요. 약효가 없어지면 그와 대적할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되고, 그를 죽이면 그이보다 지도는 영원히 손에 넣지 못하게 될 것 같아 최후로 아버지는 그의 총명함을 발휘했어요. 그때 그는 이미 기절을 했었고 나도 기절을 해 버렸어요. 내가 깨어났을 때 그들은 이미 그의 팔을 잘라 버려서 그의 무공은 영원히 쓸 수 없게 되어 버리고 지도 찾는데에만 쓸 수 있게 했던거지요. 참으로 영리했지요. 하하, 하하.......]
원승지는 그녀의 눈이 흐려지고 호흡이 가빠지며 말도 이미 정상을 잃어 가는 것을 보고는 말했다.
[숙모님은 역시 방으로 돌아가 좀 쉬는 것이 좋을 것 같군요.] 그러자 온의가 말했다.
[안돼, 좀 있다가 가요. 그들은 죽일거에요. 나는 이 말을 다하지 않고는 죽을 수 없어요. 그들은 그를 끌고 갔어요. 거기에는 공동파의 훌륭한 무사 두 명도 같이 갔었어요. 모두 횡재만을 생각했었지요. 그런데 어쩐 일인지 그를 놓쳐 버렸어요. 아마 그는 그들에게 지도를 주자 그들이 신이나서 감시가 소홀해진 틈을 탔겠지요. 그들도 영리했지만 그이도 바보는 아니었어요. 그들 일곱 사람은 지도를 보자 서로 다투어 5형제가 합심하여 두 사람을 먼저 죽였어요.]
가만히 듣고 있던 온방의가 화를 냈다.
[의야, 너 그렇게 말을 함부로 지껄이느냐! 닥치지 못해!] 그러자 온의가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조심해서 무엇에 쓰게요? 숙부님은 내가 죽는 걸 두려워한다고 생각하세요?]
온의는 다시 고개를 돌려 원승지에게 말했다.
[그들은 그 지도가 가짜라는 것을 까마득히 몰랐어요. 그들 다섯 사람은 남경을 반년 동안이나 헤맸는데 몇 천냥의 은전만 탕진했을 뿐이었어요. 정말 이처럼 재미있는 일도 없을거에요.]
온씨 다섯 형제가 정자 밖에서 얼굴을 찌푸리며 노발대발하고 있었다. 그러나 원승지를 두려워하여 감히 정자 안으로 뛰어들지는 못했다. 온의는 여기까지 말하고 멍해지면서 낮은 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그가 그렇게 사라진 뒤 나는 두 번 다시 그의 소식을 못 들었어. 그의 손이 잘려 이미 폐인이 되었을 텐데....... 그의 고결하고 용감한 성격에 지금까지 살아 있지는 않았을 거에요.]
이번엔 온방달이 소리쳤다.
[원가 이놈아! 비천한 년에게 우리 온씨의 오행진에 대해 이미 들었으니 자신 있으면 나와 대결해 보자!]
온의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만 두세요. 그들과 싸우지 말아요.]
라고 하면서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결국 금사랑군의 억울함을 모든 사람이 알게 되었어요.] 원승지는 일찍이 온씨 5형제와 한사람씩 겨뤄 봤는데 그의 적수가 될 사람이 없었지만 다섯 사람이 일제히 덤비게 되면 격파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처음 겨루었을 때는 서로 원한이 없기 때문에 양보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랐다. 그러나 그들과 대결하고 싶지 않아 머뭇거렸다.
온방의가 말했다
[원가야! 할 수 있겠느냐? 없겠느냐? 아미면 우리들에게 공손히 세 번 절하라! 그러면 너를 놓아주겠다.]
그러자 온방산의 생각은 달랐다.
[이제는 절을 해도 소용없다!]
원승지는 한참 생각하다가 큰 소리로 낭랑하게 말했다.
[좀 조용히 생각해서 결정을 내리겠소! 온의 오행진은 이미 비길 데 없이 우수하고 강호의 내노라하는 무사들도 당하기 어려운 일인데....... 그러나 나는 좀 피로하니 한 시간 동안 쉴 수 있게 해 주시오.]
[한 시간이라....... 너는 10일이나 혹은 반년이 지나도 빠져나갈 수는 없을 것이다! 좋다!]
온방산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
[저놈에게 무슨 계책이 있을라고, 우리가 당장 그를 칩시다!] 온방달이 온방산에게 말했다.
[둘째 동생이 이미 그에게 허락했으니 그를 한 시간 더 살도록 하고 죽어도 원한이 없게 하자꾸나.]
온의가 원승지를 향해 말했다.
[원상공, 그들에게 속지 마세요. 그들은 본래가 흉악해요. 어떤 계책이 있어 당신에게 한 시간의 여유를 준 거에요. 요 몇 년 동안 그들은 오직 보물 찾기에만 급급하였지요. 그들은 어떤 방법으르로도 당신의 팔다리를 잘라 못쓰게 하고, 단지 보물 찾는데에만 이용할 것입니다. 당신은 청청과 함께 빨리 빠져나가세요. 멀리 가면 갈수록 좋아요.]
온방달이 그녀가 자기의 속셈을 말하는 것을 듣고 얼굴색이 변하면서 말했다.
[너희 세 사람은 무얼 생각하느냐? 원가야, 너는 도장에 가서 푹 쉬도록 해라. 움직일 수 있을 때가 행복할 것이다.]
원승지는 좋다고 대답하고 일어섰다. 온의 모녀는 오행진의 악랄함을 알기에 마음속으로 초조할 뿐 어쩔 도리가 없었다. 원승지가 무술 도장에 도착하자 온방달은 사람을 시켜 십여 개의 대초를 켜게 했다.
[이 초가 다 탈 때까지 너는 정신을 가다듬어라!]
원승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도장 가운데 있는 긴 의자에 앉았다. 온씨중 다섯 번째가 의자를 가져와 둥글게 배치하고 그를 중앙에 앉게 했다. 다섯 사람이 눈을 감고 정좌하였다. 이들 외엔 온남양, 온정 등 석량파 중 16명의 훌륭한 무사들은 좀 작은 의자에 앉아 하나의 큰 원을 이루었다. 원승지는 16명의 앉은 형태를 보고는 생각했다.
(이것이 오행진을 보좌하는 것이구나. 오행진 외에 팔괘진을 쳤으니 이것을 파괴하기는 더욱더 힘들겠구나.)
원승지는 의자에 단정히 앉아 사부님이 가르쳐 주신 각각의 무공을 자세히 떠올려 보았다. 그러나 이 21명의 출중한 무사들에게 원으로 공격을 받게 되면 이 몸 하나 보전하기 힘들겠구나, 하고 우려했다.
(이 진을 뚫고 나가려면 굉장히 어렵고 정신력을 가다듬지 않으면 안된다.
목상도사가 전하는 바, 경공으로 진을 뚫고 나가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리고 온의 모녀를 남겨두고 가면 그 두 사람은 죽음을 면하기 어려울텐데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마침 초조해 하는 순간, 머리에 번뜩이며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금사비급 중의 맨 뒷장에 있는 것이었다. 그 장의 무공은 당시에 연마할 수 없어서 다시 깊은 동굴로 들어가 돌 벽의 원형을 보며 드디어 깨달았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그처럼 복잡한 무공은 이해할 수 없었고, 아주 많은 사족처럼 보였였다.
(접전할 때 적의 무공은 뛰어나고 사람수도 많아 사방팔면으로 공격해 보면 조금의 틈도 없을 것이다. 이러한 무공은 확실히 여러 방면에서 공격해 올 때 만들어진 것이다.)
순간, 원승지처럼 몸이 곤경에 빠져 있을 때 금사랑군이 전심전력하여 만들어 낸 권법을 이용하면 확실히 이 오행진을 파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당연히 석량에서 원수를 갚고자 생각했으나 손이 모두 잘려 버려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었을 것이다. 원승지는 속으로 이 무공을 사용하면 오늘의 어려움을 벗어날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그러면서 아직 뵙지도 못한 은사를 대신하여 그의 원산을 풀어 줄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는 여기까지 생각하고는 크게 기뻐하며 눈을 떠 바라보니 탁자 위의 촛불이 거의 다 타 들어가고 있었다.
온씨 5형제는 원승지의 얼굴이 근심에 젖었다가 갑자기 기쁨에 넘치는 것을 보고 그에게 무슨 속셈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단지 오행팔괘진의 위력이 무궁하다는 것만 자랑하며 전혀 개의치 않고 있었다. 동그랗게 둘러앉아 열 개의 눈을 뜨고 엄중하게 주시하고 있으나 그가 도망갈까 두려워하는 눈치였다. 원승지는 다시 눈을 감고 금사비급의 마지막장에 쓰여 있는 무공을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하게 더듬어 보며 최후로 적을 격퇴하는 길은 <쾌도참난마(快刀慘亂魔)>라고 생각했다. 그러자 갑자기 전신에 진땀이 쫙 흐르며 속으로 절규했다.
(안돼! 이후 수십 명이 보검을 사용하여 공격하면 그들을 감히 접근할 수 없게 해서 적진을 난타한 틈을 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내게는 지금 금사검도 없다. 이 한시간 동안 어떻게, 어디서 보검을 구한단 말인가?) 청청은 옆에서 계속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의 이마에서 땀이 흐르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그녀는 아직 봉을 건네줄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원승지는 초가 이미 다 타 들어 가고 촛불이 흔들거리며 꺼질 듯 말 듯 하나 진을 격파할 묘법은 여전히 떠오르지 않아 더욱 초조해 할 뿐이었다. 이때 계집종이 차를 들고 그 앞에 와서 아뢰길, [상공, 탕차를 한 잔 드십시오!]
그는 멍하게 팔을 뻗어 찻잔을 받아 들고 마시려 하는 순간, 화살에 맞아 찻잔이 <쨍그랑!> 하고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원승지는 눈 깜짝할 사이에 청청의 오른손이 오므라드는 것을 보고, 이 화살을 그녀가 쏜 것임을 알았다.
그리고는 마음속으로 놀라며 생각했다.
(정말 위험했구나! 내 어찌 이렇게 바보 같았을까? 그들이 또 똑같은 방법으로 나에게 취선밀을 먹이려 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까!) 온방오는 자기의 계획이 청청에게 탄로 났다는 것을 알고 매우 화가나 마구 욕설을 퍼부어 댔다.
[저런 못된 계집 같으니라구! 죽도록 키워 놨더니 온씨의 덕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년!]
청청은 그에 조금도 동요됨이 없이 말했다.
[온씨 집안은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빼앗지도 않으며 살인방화도 하지 않으셨지요?]
그 말에 화가 난 온방호는 후다닥 뛰어 올라와 청청을 때리려 하자 온방달이 말렸다.
[동생, 진정하게. 이 조그만 계집애에게 신경 쓰지 말게나!] 이때 원승지의 얼굴에 다시 기쁜 빛이 나타났다. 그러자 청청은 수건을 민첩하게 던져다. 그 바람에 초가 흔들거리며 촛불이 꺼졌다. 그와 동시에 원승지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좋소! 지도를 바랍니다. 지금 승부를 거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온방달이 이를 받았다.
[네가 이기면 금덩이를 다 가져가고, 지면 더 이상 말할 필요 없겠지?] 원승지는 만일 자기가 지면 당연히 목숨을 보전할 수 없음은 물론 이기더라도 그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을까 염려돼 말했다.
[당신들이 금덩이를 이곳에 내 놓으면 내가 진을 뚫고 나간 다음 가져가겠소!]
온씨의 다섯째는 곧 죽을 놈이 말이 많다고 못마땅해하며 금사랑군과 같은 도사도 온씨 오행진에 잡혔는데 저 같은 피래미놈이 감히 탈출할 수 있을까 보냐고 거드름을 피웠다. 어쨌든 다섯 형제는 서로 상의하여 그들 가문의 능력을 그에게 보여 주기로 했다. 온방달이 가솔에게 분부하여 촛불을 바꾸게 하고 청청에게 말했다.
[금덩이를 모두 가져오너라!]
청청은 이미 이렇게 될 줄 예측한 바 황금을 모두 그에게 줘 버릴 걸하고 후회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단지 금괴를 모두 포장하여 책상 위에 놓았을 뿐이었다. 온방달이 왼손으로 책상 위에 있는 금개를 열자 수십개의 금덩이가 땅바닥에 쏟아져 나와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는 냉소하며 말했다.
[온씨 가문이 비록 가난하기는 하지만 이 몇 천냥의 금덩이 따윈 소용이 없다. 원가야, 네가 우리의 이 오행진을 파괴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라!] 다섯 번째가 <후!> 하고 소리치며 무기를 들어 원승지 주위를 에워쌌다.
원승지는 속으로 깜짝 놀랐다.
[그들은 방안에도 사람을 배치해 봤을 텐데, 이 진을 어떻게 뚫지?] 온방시가 그의 말하는 것을 듣고, [방안에 사람이 있느냐? 있으면 모두 내려와라!]
하고 큰소리로 외치자 천장 위에 있던 사람이 <하! 하! 하!> 하고 큰 소리로 웃으며 내려왔는데 그들은 이십 여명이나 되었다. 그 중 제일 앞에 선 사람이 용유방의 우두머리 영채(榮彩)였다. 바로 그자였다.
원승지는 잠시 놀라면서 청청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이 약간 변하면서 입술을 깨무는 것이었다.
온방달이 말했다.
[영형, 이런 밤에 어쩐 일로 저희 집을 왕림하였습니까? 아, 방암의 여칠선생도 오셨군요.]
그러면서 영채 뒤에 서 있는 노인한테 예를 갖추었다. 그 노인도 예를 갖추며 인사했다.
[형제들, 모두 건강하시오? 참으로 오래간만입니다.] 영채가 웃으며 말했다.
[다섯 분은 참으로 복도 많으시지! 거기다 무공도 강하고 지모도 뛰어난 조서를 얻으시고, 거이게다 내 아들까지.......]
온씨 형제는 그들고 청청의 관계를 까맣게 몰랐었다. 거기다 석량파와 용유파는 평소 왕래가 있었다니.... 강적이 눈 앞에 있는데 또 적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온달방이 말했다.
[영형, 우리 집 아이가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를 편애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만약 그 애가 사람을 죽였으면 목숨을 받치게 하고 돈을 꾸었으면 갚아 드리겠소이다. 어떠시오?]
영채는 놀라며 속으로 생각했다.
(항상 오만하고 무례했던 사람들인데 오늘 따라 이렇게 말이 잘 풀리다니? 이들이 여칠선생을 무서워하고 있는 것일까?)
그러면서 잠깐 원승지를 쳐다보더니 더욱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말했다.
[무공이 뛰어난 훌륭한 사람이 여기에 있었군. 그는 여칠선생도 대작할 수 없으니, 나는 역시 이 기회를 잘 이용해야 겠소이다! 우리 용유방은 귀파와 평소 다툼이 없었는데... 그러나 사노대는 이미 죽어 살아올 수 없게 되었지.
그것은 그가 무술을 잘 익히지 않았기 때문이야. 그런데 이 금들은.......] 눈을 땅바닥에 있는 금괴에게 돌리면서 말했다.
[우리 용유방을 따라 몇 백리를 오는 도중 힘도 들고....... 사람도 죽였으니, 우리 모두 강호에서 살았기 때문이야.]
온방달은 그가 여기까지 말한 것을 듣고는 계속 얘기하지 않는 것은 그는 복수보다는 황금에 더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황금은 모두 여기에 있으니 형께서 모두 가져가도 괜찮소이다.] 영채는 그가 대담하게 말한 것을 보고는 처음엔 비꼰다고 여겼으나 그의 얼굴색을 보니 그런 악의는 없는 것 같다고 느꼈다. 그리고 강한 어투로 말했다.
[온선생, 만약 금의 반절을 주어 우리파 형제들의 죽음을 위로하는 것으로 하면 고맙기 그지없겠소이다.]
그러자 온방산이 외쳤다.
[가져가라!]
그 말이 떨어지자 영채는 두 손을 모아 예를 갖추었다.
[그럼 고맙게 받겠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마자 그의 뒤에 서 있던 힘쎈 장사 몇 사람의 손이 금덩이에 닿자 갑자기 그들의 어깨를 밀쳤다. 그래서 제대로 서지도 못한 채 앞으로 몇 발자국 밀려갔다. 고개를 들어보니 거기에 원승지가 서 있는 것이 아닌가. 그가 말했다.
[영선생님, 이 금들은 츰왕의 군비인데 선생이 가져가시면 온당치 못하지요!]
츰왕의 명성은 북방에서는 널리 알려졌지만 강남과 강호에 있는 사람들은 그다지 알지 못했다. 영채는 여칠선생에게로 고개를 돌려 웃으며 말했다.
[저 자가 츰왕의 이름으로 우리를 겁주는데요!]
여칠선생은 손에 크게 이상한 담뱃대를 가지고 있었는데, 한 모금 빨았다 뿜었다 하면서 원승지를 바라보았다. 원승지는 그의 무례함을 보고는 마음속으로 화가 났지만 그 기품이 무림중의 큰 인물이라고 느껴져 예를 갖추어 말했다.
[선생님은 여(呂)씨이시지요? 저는 처음으로 이곳 강남에 와 미처 몰라 뵈었습니다.]
여칠선생은 연기 한 모금을 곧장 원승지의 얼굴에 뿜었다가 다시 들어 마셨다. 그것은 백사처럼 한데 모여져 흩어지지 않았다. 원승지는 그걸 상관하지 않았는데 청청이 오히려 화가 나서 한마디하려고 했다. 그러자 온의가 어깨를 가볍게 꼬집으며 말을 말라고 말했다. 청청이는 고개를 돌려 욕해주고 싶은 마음을 억지로 참았다.
여칠선생이 담뱃대를 벽에다 탁탁 치며 재를 털고 는 다시 담뱃대에 담배를 쑤셔 넣었다. 이때 온씨의 다섯째도 그 광경을 보고 견디기 어려웠으나 그가 무림에서 명성을 떨친지 오래되었고, 젊은 시절 그는 학형권(鶴形拳)으로 수많은 적수를 격파하였으며, 담배쌈지는 점혈(點穴)병기로 창칼을 버리게 한다고 들은 바 있어 어쩌지 못했다. 그러나 도대체 무공이 어느 정도인지 누구도 알지 못했다. 이런 상황으로 봐 온씨 다섯째는 원승지와의 대결을 그만 두자고 말하고 싶었다. 그들이 이기면 당연히 좋지만 그렇지 않으면 최소한 기운이 좀 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여칠선생이 품속에서 부싯돌과 부싯지(紙)를 꺼내 불을 켜고 있는데 담배에 불이 채 붙기도 전에 지붕 위에서 어떤 사람이 큰 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빨리 우리 금을 내 놔라!]
말이 끝남과 동시에 한 소녀와 건장한 젊은이가 함께 뛰어 내렸다. 그들의 뒤를 따라 50대의 남자가 나타났는데 그는 장사꾼 같은 옷차림이었다. 왼손에는 주판을 들고 오른손엔 붓을 들었는데 매우 이상한 모습이었다. 그가 천천히 지붕 위에서 내려왔다. 그런데 무공이 도대체 어느 정도인지 알 바가 없어 궁금했다.
원승지는 그 소녀가 바로 안소혜(安小慧)라는 것을 알아보고 기쁘기도 하였고 걱정스럽기도 하였다. 기쁜 것은 도울 사람이 온 것이었으나 걱정스러운 것은 다른 두 사람의 무공이 어느 정도인지 미지수이기 때문이었다. 눈 앞의 적수는 석량파 외에 용유방과 여칠선생등이 있는데 새로 온 두 사람의 무술이 안소혜와 비슷하다면 도리어 그들을 도와줘야 하니 오히려 장애가 될 것 같아서였다.
이때 온씨 제자 중에서 웬놈이냐고 묻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그에 개의치 않고 그 소년은 큰 소리로 호통쳤다.
[어서 우리의 금을 내 놓아라!]
그 소년은 그렇게 호통을 치다가 금괴가 땅에 놓여져 있는 것을 보고는, [어허, 여기에 있었구나!]
하며 허리를 굽혀 줍기 시작했다. 원승지는 눈쌀을 찌푸리며 맘속으로 저 소년은 매우 미련하구나, 생각하면서 높은 무공이 없을 것 같아 안타까웠다.
온남양은 그가 허리를 구부려 금괴를 줍는 것을 보고 발길을 날려 그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이때 안소혜가 급히 소리쳤다.
[최오라버니, 조심하시오!]
그러나 그 소년은 이미 몸을 슬쩍 돌려 피했다. 그리고는 두 손바닥으로 받아쳤다. 온남양은 피하지 않고 역시 두 손바닥으로 마주쳤다. <딱!> 소리와 함께 네 손바닥이 부딪치면서 두 사람은 각기 몇 발자국씩 뒤로 주춤했다. 그 소년은 또 앞으로 나서는데 그 상인 비슷한 사람이 외쳤다.
[희민(希敏)아, 천천히.]
원승지가 안소혜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최씨 성을 가진 사형이 그녀와 함께 이 금을 호송하였다. 그런데 두 사람의 의견이 엇갈려 중도에서 갈라지게 되어 엉뚱하게도 청청이 빼앗아 가게 됐다고 해다. 그렇다면 이 소년은 최추산의 조카 최희민이 아닌가. 또한 큰 사형이란 자는 동필철산반(銅筆鐵算盤) 황진(黃眞)이다. 자세히 보니 그의 오른손에 가지고 있는 붓대가 반짝반짝 빛을 발하는 것이 틀림없는 동(銅)으로 만든 것이었고, 왼손의 주판은 반들반들한 것이 철로 만든 것이 틀림없는 것 같았다. 이것을 확인한 그는 기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그는 급히 꿇어앉아 절을 하며 예를 갖추었다.
[소제 원승지는 형님께 무릎 꿇고 문안을 올립니다.] 그 사람은 바로 황진이었다. 그는 두 손으로 원승지를 일으켜 세우며 자세히 뜯어보았다. 그는 기쁜 소리로 말했다.
[아, 아우야. 네가 이렇게 젊고 훌륭한 사람이 되었구나. 뜻밖에도 이곳에서 너를 만나다니!]
[형님, 사부님께서는 지금 어디 계십니까? 그분께서는 지금 건강하신지요?] [은사님께서는 지금 남경에 계시며 잘 지내신단다.]
안소혜가 이때 다가와 아뢰기를, [승지오라버니, 이분이 바로 내가 말하던 최사형이에요.] 원승지는 그녀에게 머리를 끄덕여 보였다.
안소혜는 원승지의 등에 지푸라기가 붙어 있는 것을 보고 떼어 냈다. 원승지는 미소를 지어 감사의 뜻을 보여 주었다.
최희민과 온청청은 이 장면을 보면서 매우 불쾌함을 나타냈다. 황진이 그를 보고 호통을 쳤다.
[희민아, 너는 왜 이렇게 예의가 없느냐? 빨리 사숙에게 절하지 못하고!] 최희민은 원승지가 자기보다 몇 살이나 아래인 것을 보고 속으로 매우 아니꼬와 했다. 그는 천천히 걸어와 무릎을 꿇을 자세를 갖추자, 원승지가 두 손으로 막으며 말했다.
[너무 황송합니다.]
최희민이 잘됐다고 생각하며 절을 하지 않고 머리만 숙여, <작은 사숙님> 하고 인사를 할 뿐이었다. 황진은 또 호통을 쳤다.
[무어야, 작은 사숙님? 네놈이 몇 살 더 먹었다 해도 윗분은 윗분이야. 나는 네놈보다 늙었는데 왜 나에겐 사부라 하지 않느냐!]
최희민은 그제서야, [숙부님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하였다.
여칠선생은 그들이 사형, 사숙하며 끝없이 예의를 갖추는 등 옆 사람들에겐 아랑곳하지 않는 것을 보고 더는 참을 수 없어 눈을 부라리며 천정을 쏘아보았다.
[온 놈들은 누구냐?!]
그가 그렇게 외치자, 모든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이 사람의 목소리는 괴조(怪鳥)소리 같이 귀청이 찢어지는 것 같고 쉰 소리에 쩌렁쩌렁 금속성이 섞여 있어 듣기가 매우 거북했다.
최희민은 그의 태도가 오만한데 화가 치밀어 올라 고함을 쳤다.
[도대체 금을 돌려 줄 것이냐, 아니냐? 만약 네놈이 대답을 못하겠거든 할 수 있는 놈을 나오라고 해라!]
여칠선생은 또한번 꽥꽥, 이상한 웃음을 두 번 웃더니 머릴를 돌려 영채에게 말했다.
[네가 이 어린애에게 말해 줘라. 내가 누구인지를.]
그러자 영채는 큰소리로 말했다.
[이 분은 세상이 다 아는 여칠선생님이셔. 네놈이 놀라 미칠 것 아니냐! 어린놈이 이렇게도 무례하다니]
최희민은 여칠선생이 어떤 사람인지 몰랐기에 놀라 미치질 않았다.
[내가 네놈이 무슨 여칠인지 여팔인지 상관할 바 없지 안나? 우리는 금을 가지러 왔을 뿐이다.]
온남양은 그 어린 놈이 까부는 행동거지를 보고 참을 수가 없어서, [금을 가져가겠다고? 그러면 먼저 네놈의 재주가 어떤지 한 번 보자! 먼저 나를 이기고 나서 말해라!]
하며 상대방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훌쩍 뛰어 오더니 한 주먹을 내던졌다. 최희민은 피할 새도 없이 곧바로 어깨를 맞았다. 대노한 그는 한 주먹 받아 쳤는데 그게 바로 온남양의 배를 때렸다. 두 사람은 아픔을 참아 가며 서로 눈을 부릅뜨고 다시 싸우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퉁탕퉁탕 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몇 대씩의 주먹을 얻어맞았다. 두 사람의 치는 방식은 비슷했다.
방어에 소홀하고 진공에는 용감하였다.
원승지는 속으로 탄식을 하였다.
(큰 사형이 가르친 제자는 이렇게도 엉망이군. 유능한 적수를 만나 몇 대씩 얻어맞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사형은 그를 잘 일깨워 주시지 못했을까?) 그는 다행히 덩치가 건장하여 몇 대 맞아도 끄덕하지 않았다. 정신없이 싸우는 중 그는 오른손을 뻗는 척하자 온남양이 위로 피하였다. 이때 그는 왼손 주먹이 위로 치솟아 온남양의 턱을 쳤는데 툭 소리와 함께 그는 땅에 쓰러져 까무러쳤다.
최희민은 득의양양하여 사부에게 한 눈을 보냈다. 틀림없이 사부의 칭찬을 받을 줄 알았는데, 그의 얼굴에 노기를 띠고 있음을 보고 이해할 수가 없었다.
소혜는 최희민의 입술이 부어 오르고 오른쪽 귀에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보고 손수건을 꺼내어 닦아주었다.
[왜, 오라버니는 피하지 안으셨어요? 미련하게 맞기만 하시나요?] 하고 말하였다. 최희민은 대답하기를, [왜 피해! 피하면 그를 명중시킬 수 없잖아!]
이때 여칠선생이 이상한 목소리로 말했다.
[바보 같은 사나이 하나 때려 눕히고 무엇이 그리 득의양양해 하느냐? 네놈이 이 금괴를 가져가겠다고?]
그는 갑자기 몸을 날려 금괴 덩어리 위로 와서는 오른손에 잡은 담뱃대로 다른 금덩이 하나를 똑똑 건드리며 말했다.
[네 놈이 발로 차든지 손으로 때리든지, 내 발 밑에서 이 금괴 세 덩이만 빼 낼 수 있다면 이 금괴를 다 너에게 주겠다.]
이 말이 떨어지자 주위 사람들은 그가 너무 큰소리친다고 생각하였다. 최희민의 무예는 그리 높지 않다 하더라도 팔 힘은 센데 담뱃대 하나로 금덩이를 누루고 있는 것은 사람을 너무 얕잡아 보고하는 행동이었다.
최희민은 화가 났다.
[네놈이 말한 것을 후회해서는 안된다.]
여칠선생은 앙천대소하며 영채에게 말하기를, [너 들어봐라, 저 놈이 내가 후회할까 봐 두려워하고 있어.] 영채는 따라서 쓴웃음을 지을 뿐 속으로 내심 의심하고 있었다.
[좋아, 내가 왔다!]
최희민은 그렇게 말하며 세 발자국 건네 뛰어 담뱃대로 누르고 있는 금괴를 향해 오른발에 힘을 가해 힘껏 돌려 뺐다.
원승지는 저처럼 힘껏 찬 것이 적어도 2, 3백근의 힘은 될텐데 여칠선생의 무공이 아무리 높다 한들 담뱃대 하나로 금괴를 눌러 움직이지 않게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마술 같은 술수가 있기 전에는.
최희민의 다리가 와 닿자 여칠선생은 담뱃대를 슬쩍 흔들더니 그의 무릎에 슬쩍 갖다 댔다. 그러자 최희민의 다리 하나가 깜짝할 사이 저려 오면서 발이 제자리에 가기도 전에 늘어졌다. 그리곤 곧 꿇어앉아 버렸다. 여칠선생은 연달아 두 손을 으므며 한참동안 이상한 웃음을 짓다가 말하기를, [고마와라. 어린 동생이 이렇게 예의가 바르니.......] 안소혜가 깜짝 놀랐다. 그는 달려가서 부축해 홍진 앞으로 데리고 왔다.
[황사백님, 이 영감쟁이가 간계를 쓰고 있어요. 사백님께서 맛을 좀 보여 주셔야겠어요!]
최희민은 큰 소리로 꾸짖었다.
[네 놈이 변변찮은 무술로 사람을 상하게 해! 늙은 녀석! 네놈은 영웅호걸이 아니다!]
황진은 손으로 그의 허리를 짚고 허벅지를 한 번 찍어 막힌 혈맥을 풀어 주며 말했다.
[너의 간계에 내가 속아넘어갔으니, 너의 간계를 탄복한다. 탄복해!] 그러나 그는 여칠선생의 수법이 이렇게도 신속한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황진은 절남(折南)일대에도 이 정도로 점혈을 잘 쓰는 사람이 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쓰는 병기 중 왼손으로 쓰는 철주판은 전문 적수의 병기를 묶어 버리는 것으로 오른손의 동붓대는 역시 점혈에 쓰는 것이었다. 그는 손으로 주판알을 튕기면서 말했다.
[이번은 적어만 놓겠다. 우리는 현찰로 교역을 하지 외상은 안한다. 여칠선생, 당신은 이제 빚을 갚아야 하지 않겠소?]
그는 동붓을 내밀며 제자의 면목을 되찾으려 했다.
이때 원승지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사제로서 앞서야 해!)
[형님, 제가 먼저 해치우겠습니다. 제가 안될 때 형님께서 해치우십시오!] 황진은 그가 정통 무공을 통달하였다 하더라도 아직 이른 것 같았고 더구나 여칠선생의 상대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부님께서 늘그막에 받아들인 제자이기 때문에 틀림없이 총애를 받았을 것인데 그가 잘못되면 사부님의 마음을 아프게 할 것이 아닌가! 이것은 최희민 보고 출전하라는 것과는 달랐다.
[아우, 그래도 내가 출전해야 돼.]
그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원승지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형님, 그들에겐 무공이 높은 사람이 많아요. 이 다섯 영감들은 매우 무서운 오행진을 갖고 있어 조금 있으면 더욱 악랄한 술수가 나올 것입니다. 형님은 저희들의 주장이시니 그래도 아우가 나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황진은 그가 꼭 나서겠다고 고집하는 것을 보고 속으로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젊은이의 혈기를 죽이고 싶지 않았다.
[아우, 그러면 조심하게!]
원승지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 발자국 앞으로 내디디며 여칠선생에게 말했다.
[저도 한 발 차 보겠는데 괜찮겠습니까?]
여칠선생과 모든 사람들은 아연해 했다. 조금 전에 분명히 미련한 소년이 쓴맛을 봤는데 죽을둥 살둥 덤비니 말이다. 여칠선생은 그가 최희민보다 더 어린것을 보고 더욱 개의치 않았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좋아, 우리는 말을 먼저 해 놓아야겠어. 네가 나에게 큰 절하는 것 나는 받기가 미안한데.......]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담뱃대로 금덩이를 누르고 있었다.
원승지도 최희민과 똑같이 세 발자국 걸어가서 오른발을 얼어 옆으로 찼다.
[숙부님, 그러면 안돼요. 늙은이가 다리에 점혈할 것입니다.] 최희민이 다급히 말했다.
온씨 5형제들은 원승지가 비록 어리지만 무예는 출중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최희민의 전철을 다시 밟는 것을 보고 의아해 했다.
그때 그는 다리의 혈맥을 잠그어 놓아 점혈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은 다 원승지의 오른쪽 다리를 보고 있었다. 그의 발이 거의 금괴까지 갔을 때 여칠선생은 담뱃대를 역시 번개처럼 빨리 내밀어 그의 다리를 찍었다.
그런데 누가 알았으랴? 그의 이 한발이 속임수라는 것을....... 상대방의 팔이 움직이자 그의 발은 벌써 돌아왔고 여칠선생은 한 번에 찍지 못하자 담배 삼지를 땅에 떨어뜨렸다. 원승지는 오른쪽 다리를 반바퀴 움직여 담배쌈지를 피해 살짝 걷어올리자 이미 금괴는 걷혀 올라왔다. 그때 그의 오른발은 쉬지 않고 옆으로 걷어찼던 것이다.
여칠선생도 수법을 바꾸어 담뱃대로 그의 등허리를 힘껏 내리쳤다. 그러나 원승지는 몸을 굽혀 우측으로 비스듬히 다가서며 왼손으로 걷혀 올라온 금괴를 탁 치자 그것은 오른쪽으로 날아갔다. 이와 동시에 왼발은 여칠선생이 밟고 있는 두 금괴를 쓸어 찼다. 이렇게 되자 금괴는 획 날아가 버렸고 여칠선생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서서 기둥을 잡고 설 수 밖에 없었다. 원승지는 두 손에 각기 금괴 하나씩을 쥐고 마주치면서 다른 금 하나를 또 집어 올렸다.
[저는 이 금덩이들을 세 개만 갖겠습니다. 여선배님의 말씀은 결코 헛소리는 아니셨겠지요?]
이 몇 가지 수법이 극히 신속 민첩하여 사람들은 똑똑히 볼 틈도 없었다.
두 사람이 갈라질 때 원승지는 이미 금괴 세 개를 손에 쥐고 있었다. 청청은 꽃이 홀짝 피듯이 웃었고 황진은 놀라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였다. 안소혜와 최희민은 갈채를 보내고 있었다. 석량파 사람들조차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여칠선생은 늙은 얼굴이 붉어지다 못해 자주색으로 변했다. 그는 아무런 말도 없이 왼손바닥으로 원승지를 내리쳤다. 그리고 절반 가량 돌린 오른발 뒤꿈치는 거꾸로 상대방의 정강을 내리쳤다. 이것은 학형권 중의 괴상한 수법으로서, 두 손바닥이 학의 두 날개가 펄럭이는 것 같고, 다 다리는 폈다 구부렸다 또는 길게 짧게 움직이는 것이 백학이 싸우는 것 같은 형상이다. 그는 담뱃대를 오른팔 소매에 집어넣고 손바닥을 뒤집어 날렸는데 대단히 민첩했다.
원승지는 이렇게 이상한 권법을 본적이 없어 경솔하게 달려들지 못하고 멀치감치서 그를 돌고 있었는데 돌수록 점점 빨라졌다. 여칠선생은 그가 감히 가까이 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요놈이 비록 행동이 민첩하기는 하나 무공은 별로일 것이라는데 미치자 비웃음이 나왔다. 그는 <하하!> 웃으며 소매에서 담뱃대를 꺼내어 크게 한 모금 빨아 흰연기를 내뿜었다.
원승지는 몇 바퀴 돌면서 대략 그의 장법(掌法)의 비법을 파악하게 되었다.
그는 여칠선생이 담배를 피우며 경시하는 것이 바로 그 징조라고 믿었다. 그러면서 갑자기 훌쩍 뛰어 그의 콧대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여칠선생은 놀라면서 담뱃대를 들어 막았는데 원승지의 주먹이 손바닥으로 변하면서 담뱃대를 잡아 버렸다. 여칠선생은 힘껏 잡아 당겼는데 원승지는 벌써 이 수법을 알아채고 그가 잡아당기는 순간 오른쪽 갈비뼈 쪽이 비어 있는 틈을 이용, 손가락을 펴서 푹 찔렀다. 바로 천부혈(天府穴)이 찍힌 여칠선생은 오른쪽 몸이 시큰거리며 쥐가 나서 담뱃대를 놔 버리고 말았다.
원승지가 옆으로 슬쩍 쳐다보는 순간, 청청이 웃으며 자기를 보고 있음을 감지했다. 그는 아예 그녀를 재미있게 해주리라고 마음먹고 담뱃대를 거꾸로 돌려 여칠선생의 콧수염에 갖다 댔다. 담뱃대의 담배는 그가 금방 한 모금 크게 빨았으니 잘붙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담뱃불에 수염을 태워 푸른연기 한가닥이 위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황진이 껄껄 웃으며 외쳤다.
[아우야, 참으로 대단하구나! 여칠선생은 수염으로 담배를 피우고 계신다!] 원승지는 입을 벌려 담뱃대를 힘껏 불어대니 담배와 담뱃재가 함께 튀어 나와 여칠선생의 얼굴에 가 닿았다. 황진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달려가 몇 번 짚고 밀어 여칠선생의 혈맥을 풀어 주었다. 그리고 담뱃대를 빼앗아 그의 손에 쥐어 주었다.
여칠선생은 멍해 있는데 사람들은 웃을 듯 말 듯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화가 나서 얼굴색이 까맣게 변해지더니 담뱃대를 땅에 내던지고는 몸을 돌려 뛰어 나갔다. 영채는 여칠선생, 하며 따라가 그의 소매를 부여잡았다. 그러자 힘껏 밀어 제치는 바람에 그만 비틀거리고 말았다. 여칠선생은 발을 멈추지 않고 멀리 가 버렸다.
[사부님, 노인네가 싸움에서 졌는데 왜 담뱃대를 버렸을까요?] 최희민은 그렇게 묻자, 황진은 정색하며 대답했다.
[노인네가 담배를 끊었겠지.]
최희민은 머리를 벅벅 긁으며 왜 싸움에 졌는데 담배를 끊어야 하는지를 알 도리가 없었다. 그는 사부에게 다시 묻기가 무서워 소혜를 쳐다보니, 그는 홀로 여칠선생이 줄행랑을 치고 있는 쪽을 응시하며 깔깔 웃고 있었다.
석량파 사람들은 원승지의 무술을 보고도 그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몰랐다. 용유방 일행들은 원래 여칠선생을 천신으로 받들고 있었는데, 한 젊은이가 그를 대적하여 이렇게 대패시키는 것을 보고 모두 동요했다. 이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이상하게 여긴 사람은 황진이었다. 그는 원승지가 목인청의 제자였던 것을 대강 알고 있었지만 그의 무술이 화산파의 절묘한 <철지결(鐵指訣)>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부는 만년에 이르러서는 새로운 무술을 창안해 내지 않았기 때문에 이 제자의 무예를 한 번 보고서는 명백히 알 수가 없었다.
[방금 젊은이께서는 금괴 세 개만을 요구하신다고 하셨는데, 금괴를 보내고 여기서 .......]
그는 두 손으로 절을 하고 최희민에게 말했다.
[검사해 보시오.]
최희민은 몸을 굽혀 황금을 집어들었다. 영채는 금빛 찬란한 황금이 다른 사람의 손아귀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노했으나, 원승지가 옆에서 손을 들고 서 있는 바람에 어쩌지도 못했다. 그러나 강호의 규칙은 <본 사람이 임자>이나, 용유방은 이 황금 때문에 인명만 손상되었고 따라서 시간만 버린 셈이었다. 드디어 반을 나누어 삼등분 하니, 그들은 너무나 적은 양을 손에 쥐게 되었다. 그들은 최희민의 무술을 얕잡아 보고 왼쪽 팔꿈치로 그의 양어깨를 밀쳤다. 최희민은 몇 걸음 뒤로 물러나서 노기 띤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당신들 정말 끝장을 보고 싶어?]
황진은 영채의 몸놀림을 보고 부하들이 그의 적수가 되지 못함을 감지했다.
[희민아, 그만두거라!]
그는 주먹을 싸쥐며 말렸다.
[재물을 얻게 되었으니 축하합니다! 귀댁의 가제는 어디입니까? 주인 어른은 어떤 장사를 하시지요? 아마도 사방에서 제일 유명하고 재물은 3감에 달하겠지요?]
그는 상인 출신이었다. 천성이 천박하여 적을 만날 때에는 언제나 터무니없는 장사 철학을 늘어놓는 사람이다.
영채가 소리쳤다.
[누가 당신과 농담이나 하자고 했소? 영자 채자 밑에다 용유방의 맹주란 걸 모르시오. 난 아직도 사형의 가르침을 청하지 않았소.] [아, 그러시오? 미천한 것의 성은 황금 황자이며, 진은 품질은 상등인데 가격은 저렴하다는 뜻에서 취한 것입니다. 금 한냥외에 감히 뭘 더 요구하겠습니까?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공평무사할테니 아무쪼록 주인어른께서 도와주십시오.]
영채는 다 듣기도 전에 점점 더 화를 냈다. 상대방의 형상이 초췌한 것을 보았지만 여전히 방심하지 않고 말했다.
[창을 가져와!]
용유방의 형제가 즉각 대창을 가져왔다. 황진은 칠성보를 밟고 우뚝 서서 소리쳤다.
[우리는 황금을 요구하지 않을 수 없어!]
온씨 5형제는 그의 몸놀림을 보고, 영채는 절대 그의 적수가 아님을 알았다.
온방의, 온방오가 동시에 소리쳤다.
[금을 가지기는 그리 쉽지 않을걸.......]
황진은 그가 맹렬한 기세로 다가오는 것을 보고는 오른쪽으로 몸을 비껴 <경덕봉편(經德棒鞭):채찍의 일종>을 휘둘렀다. 온방의, 방오 두 형제는 오행진법을 써서 한 번씩 치고는 물러났다. 온방달, 방산 형제가 다시 나왔다. 온방산은 오른손을 휘두르며 황진을 가격했고 온방시는 그의 등을 쳤다.
황진은 비록 조소를 던졌으나 움직임은 매우 신중했으며, 여전히 한 사람씩을 힘겹게 상대했다. 그러나 눈 깜짝할 사이 다섯 사람에게 포위되어 버렸다.
다섯 사람이 덤벼드는 것이 마치 수십 명이 덤벼드는 것과도 같았다.
(이것은 어떤 수법일까?)
그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어떻게 이처럼 복잡하게 공격해 올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당장 이 포위에서 벗어나야겠지만 벗어날 수가 없었다.
영채는 황진이 포위를 뚫고 나올 방법이 없음을 보고 크게 기뻐하며 그와 뒤를 찌르도록 했다.
소혜가 크게 놀라서 소리쳤다.
[황사부님, 조심하세요!]
황진은 목인청 도사의 대제자이며, 무예로 말하자면 화산파의 것을 전승한 사람이라, 온씨 5형제가 한꺼번에 덤벼들어도 역시 그의 적수가 되지는 못했다. 더구나 하찮은 영채 따위가 어떻게 대항하겠는가? 등 뒤에서 철창의 바람소리만 듣고도 손을 돌려 창 끝을 잡을 정도다. 방금 원승지가 여칠선생의 담뱃대를 한 번 긁은 것처럼 황진은 수십년 닦아 온 무예로써 기선을 제압했다.
그는 가볍게 영채를 끌고옴과 동시에 지팡이로 온방산을 쳤고, 온방의 배후에서 그에게 일격을 가했다.
[아이쿠!]
영채와 여섯 명이 동시에 나가 떨어졌다. 용유방의 형제들은 황망히 엎드렸다. 용유방의 부두목, 영채의 대제자, 둘째 제자들은 두목의 실수를 보고는 일제히 덤벼들었으나 얼마되지 않아 세 사람도 연달아 황진의 발 아래로 떨어졌다. 부두목은 오른쪽 팔이 부러지고 중상을 입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시 덤벼들지 못했다.
황진이 소리쳤다.
[두목과 부두목! 이 사람이 주인이니 너희들의 몫은 포기하지오. 목숨 바치지 말고!]
그가 온씨 5형제를 한참 치고 때리고 있는데 문득 여섯의 인형이 난무하는 것이 보였다. 때로 황진이 포위를 뚫고 나왔지만 이내 그들에게 둘러싸였다.
황진은 조급해져서 소리쳤다.
[내가 혼자서 이들 다섯놈을 상대하고 있으니 쉽게 오지는 못할 것이야.] 온씨 5형제는 황진이 이렇게 굳세게 문을 지키고 있는 것을 이상히 여겼다.
황진은 적이 싸울수록 조급해 함을 알아차렸다. 때로 한 사람이 달려들어 발로 차면 옆으로 비켜서, 몸 뒤로 맹렬히 가했다. 어떤 때는 두 손으로 육박해 오면 뒤로 물러나 발로 차서 다시는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적들의 무예 또한 무궁무진했다. 황진은 위기를 느끼자 온 신경을 곤두세워 피하고는 즉각 동필(銅筆)과 철산반(鐵算盤)을 꺼내들고 한 사람씩만 대항했다. 그의 생각에, 이것은 공평한 일은 아니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동필과 철산반을 날리자 그들은 차례로 쓰러져 갔다.
온방달은 휘파람으로 신호, 온정과 온남양 등 장사 다섯 명을 불렀다. 5형제는 창을 빼 들거나, 단도를 휘두르거나, 강철 몽둥이를 휘두르며 덤벼들었다.
이번 싸움은 방금 전의 주먹 싸움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이제 <장사꾼 황진>이 당하게 될 판이었다.
최희민은 사부의 위기 앞에서 자신의 힘으로 구제할 수 없는 것을 알았지만, 포효와 같은 기합을 넣고 단도를 빼든 채 포위망으로 돌진해 가려했다. 그러나 그가 두 세 발자국 떼어놓기도 전에 갑자기 어떤 사람이 나타나 그의 어깨를 나꿔챘다. 최희민은 칼을 휘둘렀다. 그 사람은 재빨리 피하더니 몸을 날려 그의 어깨 위의 무게 때문에 발을 떼어놓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어깨 위의 사람이 말했다.
[사부께서는 어떻게든 빠져 나올 수 있을 터이니 서두르지 마시오.] 여섯 명이 한바탕 싸우는 것을 지켜보며 어려운 난제라고 생각, 미간을 찌푸려 보았지만 어쩐지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안소혜가 그에게 와서 말했다.
[승지 오라버니, 빨리 황사부님을 도와주세요. 그들 다섯이서 황사부 한 명에게 덤벼들잖아요. 빨리 황사부님을 도와주세요. 그들 다섯이서 황사부 한 명에게 덤벼들잖아요.]
하고 계속 말했다.
원승지는 대답 대신 그를 물러나게 했다. 소혜는 그가 나가 대적치 않는 것을 탓하며 입을 삐죽거렸다.
한편, 청청은 눈 앞에 전개되는 싸움에 내심 기뻐하고 있었다.
여섯 사람의 싸움은 갈수록 치열해 졌다. 황진은 매번 철산반을 가지고 상대방을 막아냈다. 상대방은 용케도 피했다. 그들의 싸움은 긴박한 것이었으나, 금속성의 소리는 조금도 나지 않았다. 다만 칼 휘두르는 소리와 소맷자락이 바라에 흩날리는 소리만이 휭휭 들릴 뿐이었다.
원승지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소혜에게로 갔다.
[소혜야, 나의 무례함을 지나치다고 생각마라. 나는 방금 어떤 일에 몰두해 있었는데 이제야 생각났어]
소혜가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서운해요. 빨리 가서 사부님을 구해 주세요.]
원승지가 씩 웃었다.
[내가 너의 주문에 응하지 않은 것을 서운해 하지마.] [당신은 정말 분별이 없으시군요. 어떤 문제가 있죠? 싸움을 끝내고 다시 생각할 수는 없나요?]
[내가 생각한 것은, 이 전법을 어떻게 하면 파괴할까 하는 것이었어. 나는 저들 다섯 명의 무기가 전에 사형의 동필과 철산반과 부딪힌 것을 본 적이 있거든.]
소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정말 괴상한데?]
최희민은 원승지의 말에 감탄한 듯 물었다.
[사숙님! 그렇다면 어떤 방법이 없을까요?]
[저 전법은, 원형이 혼연일체가 되어 결점을 도출시키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쌍방이 격돌하게 되어도 허점을 찾을 수가 없지. 이 포진을 깨뜨릴 방법은 오직 저들 다섯 사람의 다리 방향을 혼란시키는데에 있어. 저들 중 한 사람의 걸음걸이를 어지럽게 하거나 혹은 헛디디게 하면 이 포진은 깨뜨릴 수가 있을 거야.]
최희민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수긍했다.
[저들은 매우 단련된 자들인데, 저들의 눈을 가리지 않고서야 저들을 어찌 혼란 시킬 수 있겠어요?]
원승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들이 단련되어 있다는 것은 사실이야.]
그리고 소혜에게 말했다.
[너의 옥비녀 좀 빌려주겠어?]
소혜는 머리에 꽂고 있던 옥비녀를 뽑아 그에게 주었다. 비녀는 밝은 빛 속에서 푸른빛을 발하고 있었다. 원승지는 그것을 받아 들고는 돌연 소리를 질렀다.
[대사형, 무토생을목(戊土生乙木), 진궁을 밟고 이위를 달려요!] 황진은 대뜸 그 말을 알아차리지는 못했으나, 온씨 형제들은 괴이하게 생각했다.
[우리들의 오행진법의 비밀을 저 자가 어떻게 알았을까?] 원승지가 또 소리쳤다.
[병화극경금(丙火剋庚金), 진궁을 밟고 이위로 나와요!] 황진은 저들과 오랫동안 맞붙어서 강공으로 나가기도 하고 교모한 유인 작전도 써 보았지만 도저히 그들의 포위망을 뚫을 수가 없었다. 그는 이미 이 포진이 오행진이라 불리며, 오행생극(五行生剋)의 무진한 진리가 있음을 알아 차렸다.
상생(相生)은 오행설에 목(木)에서 화(火)가, 화(火)에서 토(土)가, 토(土)에서 금(金)이, 금(金)에서 수(水)가, 수(水)에서 목(木)이 생함을 말한다. 그리고 상극(相剋)은 오행설에서 목은 토를, 토는 수를, 수는 화를, 화는 금을, 금은 목을 이김을 이르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재빨리 움직이며 공격도 날카로워졌다. 힘껏 대항해서 포진을 틈을 뚫을 수는 없다. 그런데 원승지의 고함을 듣고 마음을 그는 이미 정했다.
[좋아! 한 번 시도해 보자!]
그는 곧 진궁을 달려 이위로 나왔더니 과연 한 개의 틈이 생겼다. 그는 곧장 뚫고 밖으로 나오려 했다. 원승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건위로, 건위로 나와요!]
건위에는 온방산, 온방시 두 사람이 버티고 있었다. 기회를 놓칠 수가 없다고 여기고 황진은 두 사람에게 맹렬히 달려 들었다. 두 사람은 갈라져서 양쪽으로 포위해 왔다. 틈을 메우려는 온방달과 온방오는 아직 메우지 못했다.
황진은 급히 자세를 가다듬고는 오른쪽으로 동필을 날리고는 왼쪽으로는 철산반을 던지면서, 몸을 날려서 원승지 일행의 옆으로와 섰다.
온씨 형제는 그가 오행진을 빠져나오는 것을 보고는, 전에 없었던 일이라서 아연실색하였다. 다섯 사람은 동시에 물러나서 일렬로 섰다. 온방달이 의아해서 물었다.
[그대는 우리들의 오행진을 뚫고 나오셨습니다. 또한 그대의 무술도 비범하십니다. 그대는 화산파가 아니신가요? 목인청 선배님과는 어찌 되십니까?] 황진의 무술은 정통파였다. 원승지의 복잡다다한 것과는 아주 달랐다. 그들은 황진과 몇 합을 겨뤄보지 않고도 그의 파벌을 알아 챈 것이다. 황진은 파안대소(破顔大笑)하며 대답했다.
[목선생님은 나의 은사이십니다. 어찌 우리 제자들이 그분의 체면을 더럽힐 수 있겠습니까?]
[신검선원과 그의 제자들 과연 고명하십니다.]
[별 말씀을 나는 온씨 형제들을 싸워 이기지 못했고 여러분들도 나를 놓치셨으니 결국 피장파장이지요. 그렇다면 이 금괴를 어떻게 하겠어요?] 다시 영채를 향해 말했다.
[영형, 당신의 수완은 뛰어나시나 황금은 당신의 몫이 될 수가 없습니다.] 영채는 무술과 파벌에 있어서 큰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눈을 크게 뜨고는 황금을 바라보았다. 실로 마음이 아팠지만 부끄러움을 숨긴 채 쓸데없이 말 몇 마디를 되뇌일 뿐이었다.
[장광설을 더 이상 늘어놓지 말라. 언젠가 나의 손에 함락될 날이 있을 것이다.]
황진이 웃으며 대답했다.
[가격을 특별히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영채는 황진이가 자기와는 싸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원승지와는 사형제 사이이며 그가 여칠선생을 격파시켰음을 알고 있어서 일전에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가 제자들을 데려오자 분위기가 금방 바뀌었다.
[방금 그들 여섯 명이 싸울때 슬그머니 빼돌려도 됐을텐데.] 온방달과 용유방 일당들이 오고 간 것을 이해하지 못한 영채가 황진에게 말했다.
[선생의 무술은 과연 걸출하십니다. 그러니 나의 체면을 생각해서 황금 절반만 돌려줍시다.]
그는 화산파의 명성을 떨치게 된데다가 원한을 맺고 싶지가 않았기 때문에 쾌히 승낙했다.
[이 황금이 형제들의 것이긴 하지만 세상이 불공평하고 돈벌이도 시원치 않으니 당신들이 진정 원한다면 가져가도 상관없소이다. 그러나 이것만은 알아두시오. 이기고 지는 것이 병가지 상사라면, 이득과 손해도 장사의 상사라는 것을. 그리고 이 황금은 츰왕의 군비라는 것도 명심하시오. 이제 이것의 반을 부하들에게 들려서 보내겠소이다. 그럼 나는 어떻게 처리할까요?] 온방의가 대답했다.
[전부 가지신다면 어쩔 수 없겠지요. 그러나 우리 둘이 해결합시다.] [가격을 말해 보시오. 차분하게 흥정해 봅시다.]
온방의가 말했다.
[흥정할 것도 없지요. 첫째, 물건의 다소를 불문하고 금괴와 맞바꿀 것을 가져오시오. 이것이 우리들의 규칙입니다. 물건이 도착하면 쉽게 교환할 수 있지요.]
황진은 이것이 체면을 차리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았다. 상대방이 금을 교환할 의사가 있는 것은 이미 알았으니 더 이상 시간을 끌 필요가 없었다. 그는 곧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원형의 분부시라면 따르지요. 내일 아침 일찍 형제를 구주로 보내서 물건을 가져오게 한 후, 다시 연회를 마련해서 여러분을 모시겠습니다.] [그럼 됐습니다. 둘째는 원승지를 우리 휘하로 넘겨주시오.] 황진은 내심 당황했다. 이미 금을 돌려주려고 했는데, 그리고 자신은 그들의 체면까지 세워 주려 하는데 벽력같은 요구를 해 오다니! 말도 안되는 요구였다. 그는 그들과 원승지가 어떤 관계인가는 몰랐으나, 금사랑군과 온가 사이에 비밀이 있다는 것쯤은 알아 차렸다. 즉 중요한 것은 금사랑군이 감춰 둔 지도를 찾으려는 것일 것이다. 5형제의 무술이 뛰어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오행진의 오묘함에 자신이 있다 하더라도 그를 제압할 수 있음을 확신한 황진은 웃으며 말했다.
[우리 원사제는 밥을 아주 많이 먹어서 당신들이 그를 붙들어 둔다는 것은 아주 큰일일 겁니다. 아마도 여러분의 식량을 크게 축낼 것이기 때문이죠.] 온방달이 차갑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그는 방금 오행진의 허점을 지적해 냈소. 그에게 비결이 있을 것이니 한 번 시험해 보는 것이 어떨까?]
원래 온씨의 오행진에는 다섯 가지의 포진법이 있는데, 황진이 대적한 것은 을목진법(乙木陣法)이었다. 아직 쓰지 않은 기묘한 술법들이 네 가지나 더 남아 있는 것이다.
그는 생각했다. 황진이가 아까는 요리조리 간신히 빠져나갔지만 이번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원승지도 먼저는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실마리를 찾아냈었지만, 자신이 포진에 걸리면 꼼짝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황진은 이 전법의 묘수를 맛보았다. 그러나 자신의 십년 무술로도 뚫고 나오지 못했던 것을 사제가 어떻게 응대한 것인지 흥미로왔다.
[당신들의 진법은 대단히 뛰어납니다. 더욱이 그 우수성을 방금 보여주셨는데, 어찌하여 당신들 손자뻘 밖에 안되는 젊은이에게 고통을 주려는 것이오?] 사실 그는 스스로 나약한 척했지만 그들에게 빚을 갚아 주고 싶었다.
온방산은 차갑게 대답했다.
[화산파의 명성은 이미 떨쳐져 있고, 더구나 오행진을 파해한 마당에 꽁무니를 뺀다면 이후부터는 강호에서 행세할 수 없을 것이외다.] 최희민은 이 말에 대노하여 황진의 몸 뒤에서 뛰어나오며 소리쳤다.
[누가, 우리 화산파가 너희들을 두렵다고 했느냐?]
[당신 또한 화산파였지요? 허허, 그렇다면 자네가 나와 보게나.] 최희민이 뛰어가려하자 원승지가 그를 만류하면서 낮은 목소리로 달래었다.
[최형, 내가 먼저 나설터이니, 내가 밀리면 와서 나를 도와 주시오.] 최희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나의 도움이 필요하면 <희민>하고 불러 주십시오. 즉시 나설 테니까. 최형이라고 부를 필요는 없습니다. 사숙님!]
원승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혜가 옆에서 갑자기 웃었다.
최희민은 눈을 번득이며 물었다.
[어째서 웃는 거지?]
[아무것도 아녀요. 좀 우습네요.]
최희민이 다시 캐물으려 할 때였다. 원승지는 이미 옥비녀를 든 채 옆으로 나갔다.
[석량파의 오행진이 이처럼 사납다는 것을 후배들은 평생 볼 수 없을 것이오.]
온방의가 대답했다.
[이 젖내나는 애송이가......!!]
[맞습니다. 저의 학식이 보잘 것 없고 더구나 어른들께서 저를 휘하에 두시려 하나, 저는 원하는 바가 아닙니다. 다만, 이 기회를 빌어 어른들의 오행진을 배우고자 합니다.]
희민은 다급히 말했다.
[사숙님! 그들이 하는 말은 모두 사형을 잡아두려는 속셈이니 마음에 둘 것 없어요!]
소혜가 또 웃었다. 원승지는 최희민을 향해 말했다.
[그들은 우리가 젊다고 얕보는 것이지.]
그리고는 이어 온씨 형제들에게 말했다.
[저의 무예는 미천합니다. 그리고 화산파에 속한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말석(末席)에 불과하니 부디 어른의 오행진을 배우게 해 주십시오.] 사람들은, 그의 어조는 나약하고 겁에 질려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그러나 안색을 보니 여유가 만만한 것을 알고는 도대체 그의 전의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황진은 은근히 조바심이 났지만 사제를 가로막지는 않았다.
[음, 이 흥정은 볼만하겠는 걸!]
온씨 형제들은 그의 무술을 가볍게 여기지는 않았다.
그들은 손짓을 하고는 온방의와 온방신은 오른쪽으로, 온방시와 온방오는 왼쪽으로 몸을 돌려 포진했다. 곧 원승지는 그들 속에 갇히게 되었다. 원승지는 잠깐 망연자실하는 듯 말했다.
[지금 시작하려는 것입니까?]
온방달이 차갑게 말했다.
[자, 너의 무기를 내밀어 봐라.]
원승지는 손에 옥비녀를 흔들며 말했다.
[어른들께서 후배의 무례함을 용서하셔야겠습니다. 옥비녀로 상대하겠습니다.]
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그의 대담무쌍함에 놀랐다. 옥비녀로 그들을 대항한다는 것은 스스로 죽음을 재촉하는 일이나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황진은 이미 그를 말릴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동필과 철산반을 꽉 쥐고 있다가 위험스러워지면 즉시 피하려고 마음먹었다. 최희민과 소혜에게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
[그는 워낙 강해서 우리로서는 중과부적(衆寡不敵)이야. 기회를 보고 있다가 내가 명령하면 너희들은 밖으로 나가야 한다. 우리와 원승지는 끝이야.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 그를 도와 줘서는 안된다.]

- 1권. 끝 -



원제: 벽혈검(碧血劍) / 김용(金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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